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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싸래한 단편소설]미아나비-어린나비가 미아나비에게 아카시아 꽃이 만발인 봄의 한복판이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오히려 알록달록 오색 꽃들이 폈던 때보다 요즘 나비가 많이 보인다. 나비는 꽃 내음을 따라 혼자 유유자적 날아다닌다. 한 꽃 무더기에 잔뜩 붙어서 꿀을 빨아먹는 벌들과는 다르게 나비는 자신의 꽃을 찾아 날아다닌다. 그 중 바람에 휩쓸려 길을 잃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떨어져 나온 나비들이 있다. 미아나비라고 부른다. 도시 한 구석 조용하고 몽환적인 집이 있었다. 그 곳에는 여대생과 중년 남자 둘만이 거닐었다. 두 사람은 그림을 많이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생활에 그림만 있는 듯 보였다. 일에도 관심 없고, 그럴싸한 야망에도, 돈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느릿하게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의 그림을 좋아하고, 서로의 삶.. 더보기
[쌉싸래한 단편소설]담배와 악마-악은 언제나 선과 함께 여기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악마가 한 나라에 몰래 변장하고 들어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냈다. 풀었을 때는 많은 보상을, 못 풀었을 때는 목숨을 달라는 극단적인 거래 또한 있었다. 인간은 이 위기를 생각도 못할 재치로 벗어나고 악마에게 많은 보상마저 받았다. 이 후 거래에서 패배한 악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스핑크스 이래로, 아니 그보다 이전부터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악마 혹은 괴물이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불가능한 문제를 내고 이를 인간이 지혜롭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때로는 전설, 때로는 우화로 인류와 계속해서 함께 해왔다. 그만큼 새로울 것도 없고, 의미를 뽑아내려 해도 해낼 것이 없는 것이 이 종류의 이야기다. 이런 낡아서 먼지가 쌓인 이야기가 격변하는 근대 일본에 다시 나타났다. 근대 일본문.. 더보기
[쌉싸래한 단편소설]KISS-잘못붙인 이름의 첫사랑 당연하게도, 연애를 해봤다면 첫사랑의 기억 또한 있다. 그리고 첫사랑을 겪었다 말하는 많은 이들이 첫사랑은 평생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만큼 애절한 기억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또 다른 반대편에선 미숙한 한 때의 치기였다고 말한다. 그렇게 첨예하게 맞붙는 주장들은 아니지만 왜 그렇게 다른 반응이 나오는지 묻는다면 답할 말이 많지 않다. 그 이유를 시마무라 요코는 단 한 번의 입맞춤으로 제안한다.왕따를 당하던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하루미라 하는 그 아이는 시골에서 이질적이었다. 표준어를 고수하고, 그 나이의 아이들에 비해서 색기가 있었다.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당연하게도 눈에 확 띄지만 무리와 따로 노는 아이는 가혹한 따돌림의 표적이었다. 그렇게 하루미는 장점일 수 있는 이유들로 또래 집단에서 왕따를 .. 더보기
[쌉싸래한 단편소설]그녀의 실수 -자신을 잃어버린 그녀들의 얼굴에-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한다. 친구는 어디에 취직했다느니 하는 그런 말이 귓속에 맴돌 정도로 타인에 의해서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도 언제나 누군가와 비교하며 비교 대상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이 사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인류가 먼 인류부터 발전해 왔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그녀의 실수’에 등장하는 두 여자들도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왔다. 한 여자는 촌티 나는 동기를 친구라는 명목으로 늘 옆에 두고 비교하며 자신이 그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다른 한 여자는 그런 친구의 세련됨과 그 세련됨에 이끌린 주변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이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하며 세련된 그녀와 계속 관계를 이어갔다. 여기까지는 나쁠 것이 없다. 모두가 그런 삶을 .. 더보기
[쌉싸래한 단편소설]10일간의 죽음 문득, 자신이 낙오자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 가운데서, 친구 가운데서, 시끄러운 군중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 어느 곳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이는 자신이 외롭지 않은, 사회가 자신을 받아주는 삶을 동경한다. 기댈 수 있는 다른 이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며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랑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보든지 상관없다. 이전보다 세상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것 같지만 상관없다. 자신이 찾은 삶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10일간의 죽음’은 이런 삶이 죽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오랜 프랑스 생활에 일본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일과 자기과시에 빠진 무관심한 부모 가운데서 처절한 낙오감과 상실감을 느끼던 16살의.. 더보기
[쌉싸래한 단편소설]자차이의 추억-시대의 부산물에게 보내는 위로 어느 나라에나 흥망성쇠는 있고, 세계화가 되면 될수록 세계는 같은 역사를 걸어왔다.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일어나고 호황 속에서는 무시해도 될 만큼 잘 산다는 이유로 온갖 추잡하고 무책임한 일들이 쌓이고, 불황이 되면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면서 감당하기 힘든 파도를 만들어낸다.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이 시대를 몸으로 받아내는 한 개인에게 당연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 때는 다들 그랬다.’ 고 말해봐도 당연할 수 없다. 우리에게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 ‘자차이의 추억’은 ‘그 때는 누구나 그랬다’는 말로 잊혀지는 시대의 부산물과 같은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다. 어느 나라가 빛나는 한 때가 없었겠냐마는 일본의 80년대는 그 중에서도 손 꼽는 시기였다. 지.. 더보기
일몰 3.4 하늘에 금빛 모래사장이 어른거린다 아득히 깊은 밤바다가 그 위를 덮친다 모래는 그 자리에 붙어있기보다는 밤바다가 그를 때려 흩는 대로 서있는다 밤바다가 자랑스래 그의 자리를 삼켰을때 그는 밤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서 화안히 알알이 바다를 비춘다. 늘 그랬듯이 창문에 모래가 내린다 더보기
넘치다 3.2 그대여 넘치는 것에 의미를 두지 마라 주워 담겠다 그만큼 채워 넣겠다 바닥을 긁으면서 되뇌지 마라 그대여 그대의 그릇 안에 아직도 많은 양의 물이 남아있고 쏟아질 만큼 흘러들어오니 부디 그대여 넘치는 물을 붙잡지 말고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 만큼 당신에게 아낌없이 주려는 그 이를 잊지 말고 웃으며 바라보아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