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이 만발인 봄의 한복판이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오히려 알록달록 오색 꽃들이 폈던 때보다 요즘 나비가 많이 보인다. 나비는 꽃 내음을 따라 혼자 유유자적 날아다닌다. 한 꽃 무더기에 잔뜩 붙어서 꿀을 빨아먹는 벌들과는 다르게 나비는 자신의 꽃을 찾아 날아다닌다. 그 중 바람에 휩쓸려 길을 잃고 자신이 살던 곳에서 떨어져 나온 나비들이 있다. 미아나비라고 부른다.
도시 한 구석 조용하고 몽환적인 집이 있었다. 그 곳에는 여대생과 중년 남자 둘만이 거닐었다. 두 사람은 그림을 많이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생활에 그림만 있는 듯 보였다. 일에도 관심 없고, 그럴싸한 야망에도, 돈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느릿하게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의 그림을 좋아하고, 서로의 삶을 사랑하는 서로를 좋아했다.
이 두 사람같은 나비 같은 이들이 있다. 모두가 달려드는 것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위해 날개를 흔든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앉아서 조용히 몸을 기대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향취를 잔뜩 맛본다. 겉으로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들은 그 이외에 욕심을 가지지 않고 바람따라 좋아하는 것만 찾아 하늴없이 날아다닐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세상에서 평범하게 추구하는 삶을 외면하면서 살 수 없다.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하고 고개를 숙이고 가짜 웃음을 지어야한다. 처음에는 이런 삶을 외면하려 몸을 흔든다. 그러나 다치지 않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세월의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휩쓸리던 나비는 잠시 날갯짓을 멈춘 새 돌아가야 할 곳을 잃어버리고 만다. 미아나비가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목적을 잃고 헤매는 미아나비였던 중년 남자는 자신이 사장으로 번 돈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삶을 위한 집을 만들었고, 자신과 비슷한, 아직 꿈을 잃지 않고 가진 여대생 스즈와 함께 작고 아담한 그들의 꽃밭을 만들었다. 그들 둘만의 꿈과 같은, 꿈에 그리던 삶이었다. 그들은 수풀로 숨겨진 비밀의 화원에 숨어 세상의 바람을 피했다. 미아나비 니시자키 유우조는 스즈와 함께 유우로서 캔버스 위 그림에 집중했다.
미아나비였던 유우와 미숙한 나비 스즈의 꿈에 그리던 장소와 시간은 급작스런 유우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유우조가 아닌 유우로서 꿈을 좇던 제2의 인생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혼자 남겨진 나비, 스즈는 억울했다. 미아나비로서 이제서야 자신을 찾았고. 소중한 삶을 찾았는데 허무하게 죽게 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우의, 한 미아나비의 뒤를 쫓아가니 다른 사실이 눈 앞에 드리웠다. 현실에 타협한 자신이 바라지 않던 삶이었지만 유우는 유우조로서의 삶도 소중하게 여겼다. 동시에 스즈와 함께 있는 나비로서의 삶도 소중히 여겼다.
그는 미아나비였다. 단순히 잘못된 길에 들어서 목표를 잃어버린 것뿐 만이 아닌, 그렇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어떤 것도 포기하지 못하게 소중해 죽을 때까지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지, 어느 삶이 정말로 행복한지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고 헤맨 미아나비였다. 그리고 그 미아나비는 자신과 같아질 것 같은 어린 나비, 스즈를 데려왔다. 그는 어린 나비에게 헤매지 않고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랬다. 유우의 작은 집은 자신의 못 이룬 세상살이의 바람을 피하는 공간 뿐 만이 아닌, 자신과 같은 나비가 자신과 같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도피처였다.
그런 모든 걸 알지만, 스즈는 그 집에서 살지 않았다. 그녀는 직장에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도 현실과 타협하며 그녀도 미아나비가 되어가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삶속에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있다. 유우의 작은 집에서 머무는 것이 답이 아님을 알기에 그녀는 결국 세상에 섞인 채로 주말마다 다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
수많은 어린 나비들이 풍파에 휩쓸려 미아나비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될 때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이 아끼는 이를 볼 때도 있다. 유우가 그 수많은 이들을 보고 걱정한다. 자신 같은 미아나비가 되지 않을지. 차라리 세상에서 도망쳐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묻는다. 머뭇거리는 어린 나비들을 대신해 스즈가 대답한다.
“괜찮아 유우.”
어린 나비는 바람에 쓸리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조금 비틀거리지만 자신의 꽃을 향해 날갯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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