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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사진첩/[도시촌놈여행기]오사카,도쿄

[오사카/교토여행]도시촌놈여행기 10.(完) 알아가다.

①  먼지와 세월 속에서도

역시 든든하게 밥을 먹으니 기분이 확 전환됐다. 오전 내내 따라다녔던 아쉬움도 어쩌면 배고픔이 극대화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여전히 하늘은 흐렸지만 마지막 날은 경쾌하게 가야만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앞으로 7~8시간 남짓 남은 여행, 한 번 시작해보자.

사실 철도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가 아무리 랜드마크라 해도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오사카에서는 그를 증명하듯 역사는 한 번도 위에서 바라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왕 교토역 옆에서 밥을 먹었는데 교토역을 둘러보지 않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교토에서 보는 현대식 건축물에 대한 관심도 있고 말이다.

▲밖에서 본 교토역, 역보다는 버스의 복잡함이 눈에 띈다.

처음 도착해서 본 바로는 왕십리나 청량리 역과 뭐가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버스와 열차의 환승을 맡는 교통 중심지라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무지막지하게 크기도 했지만 이런 느낌은 한국에서도 꽤 많이 봤으니 말이다. 물론 정말 오랜만에 보는 현대식 통유리 건물이라는 것은 이질적이었다. 계속해서 목조와 기와의 아름다움만 봐와서 그런지 거울처럼 비치는 유리 건물은 철판같이 차가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안에서 본 교토역, 생각보다 높고 웅장한 유리 지붕[각주:1]이 눈에 띈다.

그러나 안에 들어와 본 교토역은 1층부터 모든 층이 뻥 뚫려 유리 성안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밖에서는 꽤 현대적인 건물이었지만, 안에 들어오니 완전히 현대적인 느낌이었다. 역시 다른 유적들에 비하면 조금 못하다곤 생각이 들지만, 층층이 자리잡고 있는 먹거리와 백화점들은 충분히 이 곳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여행객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트인 쇼핑가만큼 쇼핑하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교토역 스카이가든에서 본 전경. 흐린 것이 아닌 스모그였던 모양이다.

교토역 최상층으로 올라가니 교토 전체를 관람할 수 있는 스카이가든이 나를 반겼다. 물론, 상쾌하게 반기지는 않았다. 왜인지 먼지와 구름이 뒤섞여 잔뜩 흐린 교토는 어찌 보면 음울하기도 한 정경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태를 잃지 않는 여러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크게 보이던 토지의 오층탑[각주:2]은 분명히 그 옛날, 교토라 불리지 않고 헤이안이라 불리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 모습 그대로 기세를 잃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내 삶은 과연 먼 훗날, 발전된 사회 속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교토는 어두침침하게 먼지와 세월을 먹고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 가운데에서 나뭇빛 빛나는 탑들은 그 빛을 지울 수 없었다. 나도 저 탑들처럼 살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더 많은 탑들을 찾기 위해 먼지로 자욱한 교토의 모습을 응시했다.

②  세계문화유산의 축제

본디 계획대로라면 교토 남부를 돌 생각이었지만, 지도를 보고 있자니, 교토 서부 넓은 곳에 펼쳐져 있는 세계문화유산들이 역시 눈에 밟혔다. 역시 안되겠다. 혹자는 명성에 비해 볼 것이 없다고들도 하지만 그럼에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급하게 지도를 찾아 버스를 잡아탔다.

교토 서부는 말이 교토 서부지, 북부와 서부를 통틀어 놓은 곳이었다. 지금껏은 적당히 걸어다닐만한 거리였지만 이번 유적들은 교토의 귀퉁이라 버스도 많지 않고, 유적들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이미 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교토 서부 중 가장 중심지와 가까운 니조죠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해가 지기 전에 가장 알차게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결국 많은 욕심을 버리고 가장 중요하고 인정받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가지 만을 보고 돌아오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리라.

▲세계문화유산, 니죠죠(二条城)[각주:3]. 외벽으로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교토 서부의 첫 세계문화유산, 니죠죠에 도착하니 바로 보인 것은 큰 해자와 3m는 되어보이는 흰 빛깔의 벽이었다. 마치 절대 안을 보이지 않으려는 각오로도 보였다. 참 이상한 성이었다.

보통 성이라 하면 높게 치솟고 무너지지 않는 요새처럼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주변에 사는 이들에게 위압감과 숭배감을 주려는 시각적인 의도도 있는 양식이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이라면 크고 높게, 다가오지 못하게 짓는다.

그러나 니죠죠는 다가가기가 어렵지도 않은 평지에, 그것도 최대한 안이 보이지 않게 겹겹이 가려두었다. 이것을 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숭배보단 파고들어 무언가를 훔치고 싶게 생긴 모양새였다. 무언가 가리려 하면 할수록 파헤치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곳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높이, 겹겹이 쌓아둔 것일까, 무엇을 숨기려 한 것일까. 마치 유적을 파헤치는 고고학자의 마음이 된 듯, 높이 쌓인 벽을 지나 정문을 지났다.

▲니죠죠의 입구를 지나 나오는 바로 뒤로 보이는 감시초소, 반쇼(番所)[각주:4]

안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3m 짜리 벽이 나를 막아섰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목조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일본식 벽이라는 점과, 금칠이 사방에 되어있어 이 곳의 주인[각주:5]이 얼마나 지체 높은이인지 가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뒤로는 보통 지체 높은 이들이나 살 법한 저택이 반쇼, 감시초소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돌벽과 기와벽, 그것을 넘으면 삼엄한 감시초소. 역시 성이라기보단 요새, 던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니죠죠의 사랑채와 같은 건물, 니노마루고텐(二の丸御殿).

반쇼를 지나자 꽤 복잡하고 중후하게 지어진 건물이 등장했다. 니노마루고텐, 들어오면서 본 지도를 기억해보자면 두 번째 해자보단 밖에 있으니 손님을 맞는 주인이 지내는 사랑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을 따라 한껏 복잡한 신조(神鳥)의 조각과 금도장이 된 대문으로 들어가자 길고 긴 복도가 등장했다. 그저 한국의 대청마루처럼 일직선으로 된 것도 아닌 각자의 방들이 지그재그로 배치되어 복도가 반드시 꺾이게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였다. 심지어 마룻바닥은 소리도 삐걱거렸다.[각주:6]

모든 것이 암살자가 목표를 노리지 못하게 만든 듯한 의도적이고 집요한 배치였다. 한국의 궁궐에서도 암살 대비책의 양식은 보였지만 이토록 집요하진 않았다. 분명 한 나라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사는 성이었음에도, 이들은 마치 언제나 전쟁 중, 암투 중인 것처럼 신경질적이었다. 이들이 정치형태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이었는지 엿보는 듯 했다. 어두침침하고 조용한 복도를 걷자니 내가 암살자가 된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니노마루고텐의 뒤로 숨겨진 니노마루 정원, 그리고 한 번 더 해자로 가려진 혼마루(本丸).

그렇게 니노마루고텐을 기웃거리며 나와 뒤로 향하니, 한 폭의 산수화같은 정원이 등장했다. 말만 그럴 듯한 것이 아닌 정말로 강이 산골에서 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자연의 한폭을 그대로 들고 온 듯한 정원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충분히 느껴졌다. 햇빛이 비취는 가운데 니노마루고텐에서 이 정원을 보며 차를 마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절경이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해자 뒤로 한 번 더 삼엄하게 벽을 둘러 숨겨져 있는 혼마루는 니노마루고텐과는 또 다른 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적당히 소박하게 꾸며진 정원과 복잡하지 않고 생활에 편리한 고택은 마치 이 앞을 모두 돌파한 이는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모든 것이 통상의 개념과는 달랐다. 성이라는 기존의 개념과는 다른, 전쟁이 아닌 암살자를 철저히 배제하는 양식은 굉장히 특이했고, 최고권력을 쥔 듯 했지만 어느 하나 눈치를 살피지 않을 곳이 없는 권력자의 고뇌도 엿보였다. 그 건물의 양식들은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고 고유의 멋이 있었지만, 이런 성을 지으면서까지 안으로 숨어들어야 하는 권력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선 약간의 회의감도 들었다.

▲킨카쿠지(金閣寺)로 들어가는 길. 연둣빛 새순이 봄을 알린다.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다시 달려 30분, 교토의 끝자락으로 달려갔다. 교토에서, 아니 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절, 킨카쿠지(金閣寺/금각사)를 내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대문호이자 우익인사[각주:7]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소설 '금각사'로 유명하고, 절 전체가 금으로 뒤덮여있는 것으로 더욱 유명한 절이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보면 그렇게 별 것 없다고 말하고, 교토에 가도 굳이 볼 이유가 없다고 그 관광에 가치에 의문을 표하는 절이긴 하지만, 역시 놓치고 가기엔 아쉬웠다. 지금 안 가면 앞으로는 더욱 안 갈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킨카쿠지[각주:8]의 정경. 연못 위에 오롯이 황금빛 건물이 떠있다.

수목원처럼 빽빽한 숲을 따라 나있는 길을 지나가 보니 수많은 인파 사이로 금빛으로 빛나는 건물이 솟아있었다. 연못 위에 거짓말 같이 샛노란 성이 떠 있었다. 실제로 떠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물에 비친 모습이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UFO같이 기이하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모습이었다.

지나치게 아름답다.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름답기로는 긴가쿠지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웅장한 것으로도 교토의 다른 많은 유적에 비해서는 부족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금[각주:9]으로 이루어진 누각은 환상속에서나 나올 듯 했다. 킨카쿠지의 찬연함은 사람의 욕망을 건드리는 환상의 찬연함이리라. 나만 해도 '조금만 긁어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킨카쿠지의 뒤에서 본 연못의 모습

킨카쿠지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한바퀴를 둘러 가보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킨카쿠지의 자세한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 연못이다. 처음에는 연못의 모습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정면에서 볼 땐 금각사를 보조해주는 정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킨카쿠지에서 바라보자 일본에 와서 본 것 중 가장 큰 정원이 나를 맞아주었다.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봄의 연못은 그 자체로 정원이 되어 산세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움을 색다르게 보여주었다. 그 자체로 킨카쿠지의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어쩌면 이 광경이 세계문화유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금으로 만들어진 전각도 훌륭하지만, 욕망의 곁에서 욕망은 잊지 않되 눈에 두지 않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자세를 가지면 어디에서나 자랑할만한 호젓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가지게 된다. 참 아름다운 삶의 자세 아닌가. 삶의 자세를 이렇게 풀어내는 광경이야말로 진정 유네스코가 지키고자 했던 유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쪽에서 더 서쪽으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긴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이번 여행의 사실상 마지막 종착지, 료안지(竜安寺)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4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다른 곳보다 빨리 문을 닫는 료안지까지 잘 갈 수 있을지 다급한 마음이 앞섰다.


▲료안지(龍安寺)로 들어가는 길, 금각사와는 다른 경건한 돌길과 대나무들이 눈에 띈다.

료안지로 들어가는 길은 정갈했다. 반듯하게 맞춰진 돌길과, 그 주변을 매끈하게 장식하는 자갈들은 사색과 종교적 답을 찾기 위해서만 마련된 길 같았다. 종교를 막론하고 이 곳을 걷고 있으면 마음이 정돈되지 않을까, 대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바람은 풍경소리와 같아 점점 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료안지는 무엇을 또 내게 알려줄까. 방금 전까지의 다급한 마음은 금새 사라지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료안지[각주:10]의 정수, 방장(方丈)에서 바라보는 카레산스이 정원

료안지에 들어서자마자 넓게 펼쳐진 마루와 그것보다 넓게 펼쳐진 자갈의 바다가 물결쳤다.. 긴가쿠지의 탄성 이후로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다. 바닥 하나 안보이는 자갈의 바다, 정원에는 나무 하나 없이 자갈과, 바위로 만들어진 섬만이 존재했다. 

일본하면 오밀조밀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정원이다. 긴가쿠지에선 그 극치를 이미 보았다. 그런데도 료안지는 달랐다. 분명히 오밀조밀하고 철저히 계산이 되어있긴 했다. 돌들은 그냥 조약돌의 연속인데도 바위섬을 중심으로 파문이 일어나는 무늬가 그려져있었고, 다른 곳들은 살살 파도가 치는 듯 횡으로 선이 그려져있었다.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들어야 이런 무늬를 조약돌로 만든단 말인가.

▲료안지의 정원을 바라보는 관광객, 모든 관광객들이 이와 같이 정원에 넋을 놓게 된다.

하지만 그 치밀함은 꽉 차있는 치밀함이 아니었다. 텅 빈 치밀함이었다. 이런 정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진 못하지만, 긴가쿠지처럼 보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이 가득차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의 모든 감정이 물에 넣고 흔들듯이 쓸어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 가운데 부정적인 감정은 흙이 씻겨내려가듯 흘러내려가고, 맑은 긍정의 감정만이 남았다.

이 정원이 무엇이기에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른다. 종교적인 이유도, 미학적인 이유도 잘모르겠다. 지금껏 여행을 하면서 나름의 답을 내리며 감상했지만, 료안지만큼은 내 언어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일 것이라 생각했다. 푸른눈의 백인도, 상기된 듯한 흑인도, 나와 같은 한국인도 모두 그 눈에 각자의 생각을 담고 있었고, 료안지의 정원에서 그 생각을 씻고 있었다. 

그 눈에 비친 정원은 모두 다르기에 난 료안지를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었고, 단지 나도 마루에 앉아 내 생각을 씻을 뿐이었다. 다른 곳에선 느끼지 못할 조약돌의 바다에서.

▲료안지의 뒤로 펼쳐져 있는 호수, 언제부터 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았을까.

얼마쯤 있었을까, 석양이 길게 걸렸다. 곧 어두워지겠지. 마음의 흙을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료안지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료안지의 뒷편에는 꽤 큰 호수가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그대로의 호수였다. 가장 아름다운 석양의 때, 마지막이라 그런 걸까, 눈물이 찡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카타와레토키, '너의 이름은'에서 봤던 듯 싶던 바로 그런 호수와 풍경이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특별할 건 없던 풍경일지도 모른다. 청평이나 가평쯤 가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간이 만든 가장 감정을 씻어내는 공간을 지나 인간의 손이 하나도 안 닿은 곳을 본다는 것이 너무나 특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무 감정도 생각도 없이 깨끗이 풍경을 바라 본 것이 언제일까 싶었다. 

인간이 정한, 가장 인간이 남겨야만 하는 유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연달아 본 세 개의 문화유산들은 그들이 그저 아름답다거나, 유니크해서 그 이름을 달고 있음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인간의 삶의 자세를 가장 닮은, 인간이 살아야 할 자세를 보여주는, 가장 인간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건물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문화유산의 축제. 그 유산들이 속삭이는 이야기와 풍경은 아직도 내 귀에 맴돌고 있다.

③ 에필로그

▲다시 한 번 먹는 다른 가게의 교토식 파르페. 시라다마[각주:11]가 참 맛있다.

교토, 카와라마치를 걸었다. 점심을 먹은지도 꽤 되었고, 이대로 디저트를 안 먹고 일본을 떠나는 것도 아쉬운 일이라 무작정 다시 한 번 아무 곳에나 들어가 파르페를 시켜보았다. 시라다마가 얹혀진, 말차파르페. 쌉싸레한 녹차 아이스크림과 떡의 조합은 내 입맛에 잘 맞아들었다. 아무 맛도 없는 묵이 너무 아래에 많이 깔려 있던 건 흠이었지만 마

▲잇푸도의 돈코츠라멘, 국물은 이치란이라면, 챠슈는 잇푸도다.

오사카로 돌아와 저녁거리로 다시 한 번 라멘을 찾았다. 아무래도 미련이 많이 남았나보다. 어제는 울며 먹어서 맛을 음미할 시간도 없었고. 잇푸도(一風堂)는 추억 때문에 들르게 되었다. 강남에 있던 지점에 많이 가서 먹었었다. 정말 진하고 한국의 개량이 없는 일본의 라멘 맛이어서 좋아했는데, 사업을 철수하는 바람에 못 먹은지가 꽤 됐었다.  

이치란과는 다르게 잇푸도는 모든 곳이 왁자지껄했다. 술잔을 기울이고, 주방과 말을 나누고 그룹끼리 앉아 회식을 하고, 사람 사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렇기에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도, 외로움도 좀 덜 수 있었다. 일본인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섞인 이 느낌, 홀로 여행이 외롭기는 해도 전혀 이방인 취급당하지 않는 이 감정 때문에 늘 홀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아닐까.

잇푸도는 면발과 챠슈로 승부하는 라멘집이다. 이치란은 돼지골육수를 제대로 우린 극치를 보여준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면과 챠슈가 쫄깃한지를 잇푸도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결국은 기권했다. 어느 곳이든 다시 와서 몇 번은 다시 먹어봐야 미세한 우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언젠가 또 일본으로 여행을 갈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쥬소의 이름 모를 타코야키집에 들렀다. 타코야키를 굽는 점원은 걸쭉한 간사이 방언으로 내게 안부를 물었다. 춥지는 않냐고, 늦은 시간까지 수고했다고. 1대 1의 사람다운 대화는 3박 4일동안 많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방인으로 여기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도쿄사람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알 수 없는 억양의 시골 청년으로 보였을까.

타코야키와 츄하이[각주:12]를 들고 숙소로 가는 길. 식당에서 듣는 왁자한 목소리들과, 타코야키집의 점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가져가는 것일까.

그렇다. 나는 일본을 알아갔다. 일본이 우리와는 많이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것 만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학부생이던, 보통의 한국인이던, 외국인, 특히 일본인과는 미묘한 거리감을 느낀다. 과거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들 인간부류와는 섞이기 힘들 듯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직접 만난 일본은, 일본인은 그들 나름의 삶의 자세를 탐구해나갔고, 그것을 남기길 원했다. 헤이안시대 저 멀리에 살던 사람부터 쥬소의 한 타코야키 집 점원까지. 그들은 또 다른 인간이었고, 나는 그들을 알아갔다. 그들과 위화감 없이 섞였다. 

'여행이 무엇이 좋은가'라고 묻는 도시촌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떠나기 전까진 그랬으니까, 억울했다는 감정 빼면 돈 낭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을 마무리 하고 나서 난 확실히 얘기할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문화양식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당신을 아무런 다른 지표없이 사람으로만 대우하는 것을 느끼는 것' 그것을 느끼는 것만으로 여행은 할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아마 한 번 느끼고 나면 여행을 두 번 다시 안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촌놈은 여행을 처음 떠났고, 여행에 중독되었다. 작은 여행이던, 큰 여행이던, 어느 지역을 여행하던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내게 이야기 할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할거냐고. 나는 언제나 좋다고 말하겠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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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000장의 유리로 이루어져있고, 1층부터 16층까지 완전히 뻥 뚫린 구조다. [본문으로]
  2. 사진의 우측에 솟아있다. [본문으로]
  3. 08:45~17:00, 성인 600엔, 중고생 350엔. [본문으로]
  4. 당시에는 100명의 무사가 24시간 경비를 펼쳤다. [본문으로]
  5. 이 곳의 주인은 에도막부의 최고 지배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 후손 쇼군들이었다. [본문으로]
  6. 우그이스바라, 휘파람새마루라 불리는 양식으로 밟을 때 의도적으로 삐걱이는 소리가 나게 만들었다. [본문으로]
  7. 어느 정도의 우익이었냐면, 자위대 궐기와 천황 숭배를 외치며 할복자살을 할 정도였다. [본문으로]
  8. 09:00~17:00, 성인 400엔. 입장권 대신 부적을 준다. [본문으로]
  9. 복원 시 20kg의 금을 썼다고 한다. 원상태는 그보다는 적은 금이었따고 하나, 그럼에도 충분히 많았을 것이다. [본문으로]
  10. 08:00~17:00, 성인 500엔. 버스 시간을 고려해서 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 [본문으로]
  11. 당고에도 쓰이는 하얀 경단떡. 짭조름하면서 쫄깃하다 [본문으로]
  12. 3~5도 정도의 낮은 도수를 가진 상큼한 과일맛 소주. 호로요이가 대표적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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