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닌 장소들이 장소들이라 '천황'이라는 용어가 많이 나옵니다. 이는 천황이라는 직함이 황제나 천자와 같은 왕정부터 내려온 그들의 고유명사로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굳이 천왕이나 일왕등으로 억지로 낮추지 않고 사용했음을 양해바랍니다.
① 과거를 유람하다
헤이안 신궁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쯤 내려갔다. 긴가쿠지 주변은 돌 만큼 돌았으니 이번에는 교토 동부다. 계산된 교토 일주를 위해서는 긴가쿠지 주변부터-동부-남부-서부를 시계방햐으로 돌아야 했다. 오늘과 내일이 남았으니 오늘 적어도 교토 동부를 제대로 봐야했다. 4시가 가까웠다. 슬슬 해는 넘어가고 있었고 많이 걸어서 다리는 욱신댔지만 조금만 힘을 내보기로 했다.
동부의 가장 끝 자락에 내렸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주요 명물들을 훑으며 내려가면 처음 도착했던 한큐 카와라마치 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세웠지만 참 아름답고 깔끔한 동선이라고 자화자찬하며 이번 목적지에 대한 이런 저런를 검색하는 동안 절의 입구를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보니 그 곳에는 또 다르게 지나치게 큰 법당이 있었다.
▲33개의 칸으로 나뉘어졌다 하여 붙은 이름,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 이게 절반만 담긴 것이다. 1
오늘 정말 큰 것들을 다양하게 본다 싶었지만 산쥬산겐도는 극단적으로 컸다. 아니 길었다. 서른세칸의 건축은 절이든 일반 가옥이든 찾아보기 힘든 건축양식이거니와, 멀리서 보면 조약돌마냥 잘게 깔려서 기와가 아닌 것 같기도 한 지붕은 흔히 말하는 기와의 요철도 보이지 않게 덮여져서 본 길이보다도 길게 보였다. 뭐 특별한 의미를 세우지 않아도 이 특이한 건축양식만으로도 주요한 유적이 될 수 있겠다 느꼈다.
▲본당의 내부에는 1,000개의 천수관음상이 발 디딜틈 없이 빼곡히 금박을 칠하고 늘어서 있다.
이런 특이한 건물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들여다 보니 왠걸, 안은 더 기가 차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법당에 하나만 있어도 괜찮을만한 금색의 천수관음상이 눈을 의심할만큼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그 앞에는 이들을 지키는 역사상도 어림잡아도 열개가 넘게 배치 되어있어있었다. 이렇게 많은 불상이 한 곳에 들어차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33칸에 늘어서 있는 천수관음과 역사들은 각각 얼굴이 달랐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자기가 만나고 싶은 이의 얼굴이 저 중 숨어있다고 하는데, 찾아볼까 하다가 비슷비슷하고 미묘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어지러웠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였으리라.
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이 밖도 안도 기준치를 벗어난 기이한 법당은 그 기묘함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꺼려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천수관음을 천개나 가져다 놓을 정도면 얼마나 피하고 싶었던 재앙이 천 년전에 많았던 것일까 싶었다. 지금도 끝없는 화산의 위협과 지진으로 위험한 나라이니, 천년 전에는 더더욱 심했을 것이다. 그들의 절박함이 천개의 천수관음상에 서려있는 듯 해서 어쩐지 안쓰러워졌다.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쯤 올라갔다. 오후가 되면서 살짝 날이 흐려져 산책할 기분이 안나기도 했고, 체력도, 시간도 부족했다. 이왕 산 버스패스도 열심히 써야했고 말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오색찬연한 기모노의 향연이었다. 1200년을 훌쩍 넘긴 교토 최고의 사찰, 기요미즈데라(清水寺)로 올라가는 산도, 기요미즈자카(清水坂)의 기점이었다.
▲기요미즈데라의 산도, 기요미즈자카. 관광객의 활기가 흘러넘친다.
기모노, 기모노, 기모노. 온갖 종류의 기모노가 거리에 가득했다. 전통 과자들의 냄새와 전통 공예품은 이 곳이야말로 일본의 전통을 사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호객을 하는 듯 했다. 이런 전통적인 느낌이 못내 반가웠다. 체인점은 보이지도 않았고 점포 각자가 각자의 전통 공예품을 내놓고 있었다. 기모노 또한 점포별로 종류가 달랐다. 우리의 전통거리라 하던 인사동은 옛저녁에 체인점의 물결에 집어삼켜지고 전통은 사라진 것과 비교하니 어쩐지 씁쓸하고, 이 활기가 부러웠다.
얼마쯤 언덕을 걸어올라갔을까, 상점들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웅장한 붉은 문과 같은 붉은 색으로 높게 쌓아올려진 탑. 기요미즈데라에 도착했다.
▲기요미즈데라의 입구, 니오몬(仁王門). 뒤로는 기요미즈데라의 삼중탑이 보인다. 2
사람은 오후인만큼 많았지만, 그 모두를 수용할만큼 기요미즈데라는 광활했다. 동시에 모든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넉넉한 간격을 두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어우러지니 너무 자연스래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어디를 가도 6할이 넘는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고 있으니 이 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2017년의 기요미즈데라인지, 천 년전의 기요미즈데라를 유람하고 있는 것인지 싶을 정도였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옆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기와로 만든 옛 거리가 보였고, 절벽 위로 아찔한 난간을 자랑하는 기요미즈데라의 본당이 보였다. 드디어, 본당이구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본당 안에는 별 것이 없었다. 크고 넓찍하긴 했으나, 이 곳에서 모시는 불상은 1년에 한 번 공개되는 것이기도 한 만큼, 불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문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나야 빌 만한 것도 없으니 그 유명한 난간에서 교토를 바라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 쪽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헤이세이 대보수로 인해 사방이 지지대로 막혀서 전망이 좋은 곳은 찾기 힘들었다. 아쉽고 또 아쉬웠다.
본당을 지나 나오니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밑으로 내려가는 길은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한 물,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가 있다고 했지만 아직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러 매체, 우표 등에서 보여지는 본당의 정경을 보고 싶었다.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것은 애당초 잘 믿지 않았고 말이다. 3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니 돌로 만든 토리이가 있었다. 절 안에 신사가 있었다. 한 순간 당황했다. 신사는 신토의 종교건물이고, 이 곳은 데라(寺), 절이었다. 그 당황스러움 뒤로 일본에는 본디 나라시대부터 신불습합(神佛習合) 4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럼에도 역시 직접 보자니 당황스럽긴 했다. 이런 것도 오기 전까진 지식으로만 존재했을 것이다. 일본 특유의 종교행태에 새삼스래 놀라며 신사를 둘러봤다. 5
▲기요미즈데라 안에 자리한 지슈신사(自主神社). 신불습합을 직접 보게 되다니. 6
지슈신사의 내부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연애 성공을 기원하는 인파가 가득 기도를 올릴 뿐, 정말 작은 신사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기요미즈데라의 가장 내부에 있는 법당, 오쿠노인(奥の院)에 도착했다. 이 곳도 평범하다면 평범한 절의 법당이었지만, 이 곳에서야말로 내 아쉬움이 풀릴 수 있었다. 눈 앞에 기요미즈데라 본당의 모습이 탁 펼쳐졌다.
▲기요미즈데라 본당의 모습. 보수공사로 다소 가려져있다. 7
투박하지만 멋졌다. 아름답다나, 깊은 울림이 있다기보단 그 자체로 멋있는 굵은 선이 있었다. 지붕은 기와가 아니었는데, 이 지붕의 양식이 전형적 동양건물의 기와의 올록볼록한 선이 아닌,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매끈하면서도 굵은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테라스는 거의 허공에 떠있는 수준이었다. 내가 저 위를 아무런 감흥없이 지나다녔구나 생각하니 신기할 정도로 아슬아슬해보였다. 8
기요미즈데라 본당의 멋진 선의 움직임을 보자니, 오늘 하루 정말 많은 극한의 감정들을 만났다 생각했다. 정교한 아름다움의 긴가쿠지, 이질적이고 장엄한 난젠지, 거대한 헤이안신궁, 길고 꽉 찬 산쥬산겐도, 마지막으로 굵고 멋진 기요미즈데라까지. 각자 그 특색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보여주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 순간 꿈을 꾸다 깨어난 느낌 같았다. 꿈결같은 과거의 그림자에 빠져 배 타듯 유람하다 이 곳에 정박한 듯 했다. 이제,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가 여행을 계속해봐야지.
② 거리 속 전통과 인파에 휘말리다
다시 한바퀴를 돌아서 니오몬 앞으로 돌아왔다. 이 곳에서 니오몬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오른쪽으로 돌아나가 한 5분쯤, 저녁놀이 시작되는 전통거리를 사람을 헤집으며 내려갔다. 오른쪽으로 지금까지의 내리막과는 다른 조금더 가파른 경사의 계단으로 시작하는 길이 나왔다. 사람들이 이쪽 거리로 뿜어져 나오기도, 계단이 있는 거리로 빨려들어가기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색색의 우산이나, 찻잔, 다다미들이 가판대에 늘어서 있었다. 기요미즈자카보다 좁지만, 좁기만 한게 아니라 알차게 진열도 된 듯 했다. 일본 전통 쇼핑가, 산넨자카(三年坂)가 날 환영했다.
▲좁은 거리에 사람과 상점이 잔뜩, 산넨자카(위)와 니넨자카(아래)는 북적였다.
거리는 사람 향취로 일렁였다.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두 이 곳에 모인 이유는 일반 도회지에서는 찾기 힘든 옛 일본의 모습을 품에 안고 돌아가기 위해서리라, 그 기대에 부응하듯 모든 거리가 전형적인 '일본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신발, 우산, 심지어 저금통같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천 년 전, 오백년 전의 모습을 본따 만들었다. 눈에 띄는 것마다 선물용으로 가져가고 싶을만큼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아, 머리가 살짝 띵했다. 배가 고픈 수준을 넘어선 듯 했다. 한창을 요동치더니 잠잠하게 에너지만 빠져나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럴만도 하지. 아침은 맛도 없는 야끼소바를 먹다 말았고, 점심은 모나카 한쪽, 아이스크림 한스쿱이었으니까 말이다. 당으로 어떻게 움직이긴 했지만 절대적인 열량부족이다. 요지야 카페를 나선 이후로는 어디 앉아보지도 못했다. 그런 와중에 여기저기서 물엿 냄새, 단팥 냄새가 퍼졌다. 전통의 거리이니 만큼 화과자의 천지다. 눈에 띄는 곳 중 가장 달콤한 냄새를 내는 당고집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끌려들어갔다.
▲미타라시 당고, 500~600엔 정도에에 서너 꼬치를 담아준다.
가게 안은 식탁도 없이 벽에 가까이 붙은 의자에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먹고 있었다. 향긋한 물엿내음이 가게 안을 메웠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미타라시 당고를 시켰다. 방금 솥에서 꺼내져 만들어진 따끈한 당고에 물엿을 한국자 바르고, 콩가루를 정갈하게 담아내줬다. 이것도 늘 여러 작품에서나 봐왔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콩가루를 적당히 묻히고 한 입 떡을 물어봤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원래부터 떡을 과자보다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떡은 적당히 짭잘하면서 물엿은 지나치게 달지 않고 뭉근하고 부드러웠다. 거기에 콩가루를 묻히니 짠맛과, 단맛과 고소한 맛이 서로 제대로 어우러져서 맛을 끌어올렸다. 세 꼬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입도 충분히 달았고, 몸에 힘도 움직일 정도로 다시 돌았다. 전통 디저트의 좋은 점은 이것이다. 맛은 행복하지만, 적당량 이상 못 먹게 디저트 자신이 막는다는 점.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벌써 당뇨에 가까워졌을지도 모르겠다.
밖으로 나와서 니넨자카(二年坂)를 지나며 여러 상점을 둘러봤다. 첫 해외여행인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할 선물을 고르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런데 배가 어느 정도 차서인지, 이제서야 제대로 봐서인지, 그렇게 사람들에게 선물할만큼 세련된 선물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60대는 넘는 이들에게 어울릴만한 선물들이 잔뜩이었다. 이런 걸 어머니나 여자친구에게 줄 수는 없었다.
▲교토 최대의 번화가 중 한 곳인 기온거리.
니넨자카에서 벗어나자 조금 넓찍하고 더 번화한 상가 거리가 등장했다. 기온(祇園)이었다. 교토 최대의 번화가 중 한 곳이다. 흘끗 봐도 산넨자카,니넨자카에 비하면 다양하고 세련된 상품들이 많았다. 산넨자카나 니넨자카는 70퍼센트 정도로 옛 향취를 섞었다면, 기온은 전통적인 면을 60~50퍼센트 정도만 섞은 상품들이 많아 적절하게 옛스러우면서도, 20~40대가 선호할만한 상품들이 많았다.
조금 둘러보다 보니, 우산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었다. 이제 곧 봄비가 내릴 것이다. 언제든 화사할 만한 우산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우산이 많았다. 수납할 수 있는 지퍼가 달린 우산 주머니가 우산 끝에 매달려 있었다. 예쁜 것도 편리한 것도 충분한 것 같았다. 기온 거리에 있는 장신구들도 눈이 끌렸지만, 역시 남자는 남자라 어떤 것이 예쁘게 어울릴지 알 수 없었다. 다음에는 꼭 같이와서 쇼핑을 해보리라.
일본에 와서 꼭 먹어야겠다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파르페였다. 아무래도 오사카까지 가긴 늦을 것 같아 아쉬운대로 교토에서 먹자고 생각하고 파르페를 파는 카페를 찾아봤다. 가장 유명한 곳은 사료츠지리(茶寮通路里) 9라고 써있어, 가이드에 써진 대로 가봤지만 저녁이 다 되어 웨이팅이 잔뜩이었다. 밥도 먹어야 하는데 파르페로 밥 때를 놓칠 순 없으니 다른 조금 한적한 파르페집을 찾아봤다. 정갈하고 넓찍한 카페 한 곳이 눈에 띄었다. 파르페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민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전통과 인파가 가득한 거리에 휘말려 흔들대다 보니 다리가 금새 피곤해져서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10
▲교토식 안미츠 파르페. 보통 파르페에 들어가는 구성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리를 주무르며 최대한 피로를 떨치려 노력하는 사이 파르페가 나왔다. 교토에서 파는 파르페들은 보통 책에서나 오사카의 디저트샵에서 파는 타르트와는 다른 모양으로 담겨있었다. 사실상 안미츠를 파르페 형식으로 만들었다 봐도 괜찮았다. 처음 먹는 파르페가 변형식이라니, '뭐든 처음 경험할 땐 오리지널'이라는 음식의 지론이 조금 깨지는 순간이었다. 11
그러나 그 맛은 일품이었다. 팥이나 묵의 질감을 싫어하는 사람이면 호불호가 갈릴 맛이었지만 팥빙수도 없어 못먹는 입맛에는 푹 고아낸 팥과 아이스크림을 베이스로 씹는 질감이 좋은 우뭇가사리 묵과 화과자, 과일이 섞여 속에 부담없이 가볍게 다가왔다. 파르페라기보단 안미츠를 먹은게 되었지만 안미츠 파르페, 어디서 먹기 힘들고, 만드는 곳도 없을것이리라. 맛있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③ 보다 쓰러지다(見倒れ)
이후에도 계속되는 전통 상점가를 따라 시죠도리, 기야마치도리, 카와라마치도리, 테라마치도리를 확실한 목적 없이 구경하고 다녔다. 몸은 피곤했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사람들의 말과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교토의 번화하면서도 차분한, 옛것과 지금의 것이 섞여 조화를 이룬 분위기를 몸으로 느끼고 같이 숨쉬는 것이 좋아 떠나기 싫었다.
▲기온 거리를 빠져나올 쯤 만난 카모강(鴨川), 교토 특유의 정취가 강물을 따라 흐른다.
하지만 역시, 지치긴 지쳤다. 너무 많은 아름다움, 극치의 것들을 보고 걸어다니는 알찬 여행이었지만, 분위기에 취해 적어도 10키로미터를 발로만 걸어다녔다. 날은 아침만큼 밝지 않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 우중충했다. 혼자 온 여행이라 탄성도 소리 없는 탄성이었고, 사실상 말한 것은 주문을 할 때, 패스를 살 때가 아니곤 한 마디도 없었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내 감상을 공유하고 웃을 수 없다는 것은 꽤 괴롭다는 것을 느꼈다. 12
오사카는 발달된 식문화로 먹다 쓰러지고(食い倒れ), 고베는 신발 공방이 많아 신다 쓰러지며(履き倒れ), 교토는 화려한 기모노가 많아 입다가 쓰러진다(着倒れ)는 오래된 말이 있다.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교토에서 보다 쓰러졌다. 지나치게 많은 것에 빠져들어 얼마나 지쳤는지도, 기분을 어떤지도 정리하지 못하고 돌아다녔고 저녁이 다 된 지금 결국 탈진한 것이다. 누구도 아는 이 없는 교토 한복판. 더이상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고 눈을 새로운 것에 두는 것이 피곤해진 여행객 한 명이 비틀대고 있었다.
돌아갈 때는 돌아가도 먹고 돌아가자. 푹 고아낸 돈코츠 라멘이 먹고 싶었다. 일본에서 처음 맛보는 라멘을 먹기엔 지금보다 나은 때가 없을 것이다. 골목을 돌아 사람들이 막 줄을 서기 시작한 이치란(一蘭)라멘에 도착했다. 말 한마디, 누구를 구경할 새도 없이 그저 반쯤 기절한 듯 안으로 들어갔다.
20분쯤 대기했을까, 자판기앞에 도달했다. 메뉴는 오로지 돈코츠 라멘하나 뿐이었다. 진한 돼지뼈 육수의 향기가 여기서부터 느껴졌다. 일본 전역에 퍼져 있고, 일본인도 외국인도 모두 즐겨 먹는다는데 신뢰를 더하는 모양새였다. 돈코츠 라멘에 챠슈를 추가 13하고 세부적인 맛을 조절하는 종이를 점원에게 받아들었다. 여러가지 맛을 0부터 5중 조절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으로 모두 체크하고 점원이 안내하는대로 이동했다. 14
▲내부는 칸막이로 막혀 주방도, 옆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독서실을 생각나게 하는 인테리어의 1인석만 주루룩 늘어서 있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라멘의 맛만 음미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라 보였다. 물은 테이블마다 디스펜서가 있고, 추가할 것이 있으면 종이에 써서 앞에 놓고 버튼만 누르면 된다. 점원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 일본인들 특유의 방해받는 것, 무의식 중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인테리어였다.
▲앞에 있는 뚫린 곳으로 정갈히 배달된 라멘, 라멘과 나만 있는 시간이다.
이내 라면이 도착하고 점원이 90도가 넘개 인사를 하며 발을 내렸다. 앞으로 구경이라도 할 수 있던 공간조차 막혀버렸다. 어쩔 수 없지, 라멘만 음미하라고 했으니 라멘만 음미해보자.
맛은 훌륭했다. 예전부터 라멘은 그 다양한 풍미들을 좋아해 서울에서도 이름난 곳들을 돌아다녀봤지만, 체인점인 이치란 한 곳의 맛을 따라오는 곳이 하나가 없었다.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맛이었다. 오로지 돈코츠에 집중한 육수는 다른 것 없이 사골 이상으로 진하고 걸쭉할 정도였고, 염지가 잘 된 챠슈는 면을 싸 먹기 좋게 얇았다. 면도 어디 덜 익은 곳 없이 부드러운 목넘김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라멘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무도 옆에 없이 홀로 길을 헤멘지 3일째, 입을 연 적도 없이 오로지 먹고 걷고 사진찍기만을 반복했다. 너무 행복한 여행이었지만, 너무 외로웠다. 외로움을 더 이상 풀 곳이 없는데 탈진하고, 사방이 막혀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없어지니 감정이 폭발했다.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슬픔이 고개를 들었고 눈물은 아무리 닦아도 계속 나왔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분명 좋았다. 내 취향의 것들만 보고 다닐 수 있었고, 싸울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싸우더라도 한 명의 동행이 너무 필요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여행을 하고 싶었다. 같이 기억을 공유하고 같이 떠들며 웃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기온 거리에 행위 예술가 한 명이 있었다. 온 몸에 하얀 칠을 해 석고상처럼 보였다. 그는 멍하니 있기도 했지만, 관객이 모이고 관심을 가지면, 그들과 소통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이들은 그를 구경만 할 뿐 그와 소통하려 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인파 중 이질적인 석고상 하나가 있었다. 그를 보며 마냥 즐겁게 셔터를 누르지 못한 보다 지쳐 쓰러진 여행자 하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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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118미터, 1164년 창건. 요금 600엔, 중고등학생 400엔. [본문으로]
- 778년 창건, 성인 400엔, 중학생 이하 200엔. [본문으로]
- 오토와노타키에서 내려오는 물이 학업, 건강, 사랑을 나타내는 길한 물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가이드에 이어서 부풀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냥 세 줄기 모두 길한 물 정도라고. [본문으로]
- 일본 토착종교, 수많은 신들을 모신다. 어떤 사람이던 죽으면 신으로 모셔질 수 있는 종교. [본문으로]
- 신토의 신과 불교의 부처가 어느 정도 같은 맥락의 신이라고 해석하며 같이 모시는 융합적 종교형태 [본문으로]
- 연애와 결혼의 전당으로 유명. 모시는 신이 인연을 맺는 신인 오쿠니누시노 미코토라고 한다. [본문으로]
- 현재는 지붕을 보수하는 관계로 완전히 본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2020년까지 공사한다고 하니, 참고할 수 있길 바란다. [본문으로]
- 히와다부키라고 부른다. 노송나무 껍질을 벗겨 씌우는 일본 전통방식. [본문으로]
- 완전하다라는 어원을 가진 파르페는 그 어원만큼 한 컵에 다채로운 디저트를 쌓아 담아내는 종합적인 디저트다. [본문으로]
- 특선 츠지리 파르페가 유명하다. 1,383엔. [본문으로]
- 일본의 전통 디저트 중 하나. 팥과 콩을 소를 만들고, 과일과 우뭇가사리 묵을 넣어 만든다. [본문으로]
- 체력을 위해 독자들은 버스를 애용하기 바란다. 교토의 버스는 편리하고, 패스는 저렴하다. [본문으로]
- 790엔, 곱빼기는 980엔, 면사리는 190엔과 130엔 [본문으로]
- 챠슈 250엔, 반숙계란 130엔, 파 120엔/490엔, 밥 200엔/250엔 등으로 다양한 추가를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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