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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사진첩/[도시촌놈여행기]오사카,도쿄

[오사카/교토여행]도시촌놈여행기 7. 내가 왔기에 느낄 수 있다.

*다닌 장소들이 장소들이라 '천황'이라는 용어가 많이 나옵니다. 이는 천황이라는 직함이 황제나 천자와 같은 왕정부터 내려온 그들의 고유명사로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굳이 천왕이나 일왕등으로 억지로 낮추지 않고 사용했음을 양해바랍니다. 

①  평범한 길 한자락에서 철학을 마시다

잊혀지지 않을 조용하고 치밀한 아름다움을 마음에 새기고 긴가쿠지를 떠났다. 다시 산도를 지나 철학의 길 입구에 섰다. '철학의 길(哲学の道)'라는 오래된 나무간판은 벌써부터 이 앞으로 1.8킬로미터의 철학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여로가 있다고 알리는 듯 했다.

철학의 길은 일본의 대철학자 중 한 명인 니시다 기타로[각주:1]의 사랑을 잔뜩 받은 그의 산책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칸트처럼 언제나 같은 시간에 이 곳을 걸으며 사색을 즐겼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철학자의 발자취가 남은 길이라니, 어떤 길에서 그는 범접하지 못할 사상을 정리했을지 여러모로 상상이 되었다.

그리고 철학의 길을 걸으면서 느낀 감상은, 내가 한 상상 중 가장 심심하면서도 평범한 상상이 맞았다는 것이다. 그저 그의 머릿 속에 가득 찬 그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 가장 평범하게 작고 조용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 그 상상이었다. 그만큼 대철학자가 걸은 길이라기엔 대단한 특색이 있진 않았다. 그저 2킬로가 안되는 개천을 낀 소로길일 뿐이었다.

▲철학의 길은 평범했다. 평범하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정말 별 것도 없는 이 소로길이 너무 아름다웠다. 심지어 철학의 길이 자랑하는 벚꽃도 아직 피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직 11시도 안 된 아침. 바람은 아직 쌀쌀하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오직 따스한 봄, 은은히 내리쬐는 햇살과 이제 슬슬 열기 시작하는 작게 늘어서 있는 잡화점들, 조용히 흐르는 개울만이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너무 평범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평범한 안내문도, 몽우리가 막 피려고 하는 벚꽃도 아름다울 뿐이다

그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을 즐길 수는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단지 집에 붙어 있는 벚꽃축제 광고도 느낌 있었고, 그와 다르게 아직 이른 시기라 다 피지 못한 벚꽃도 아름다웠다. 산책하는 노부부도 아름다웠고, 고양이 팬시제품들을 파는 상점은 이것저것 펼쳐보기 좋았다. 아 ,이런 산책만으로도 좋구나. 여행은.

평범하게 길을 걸으며 초봄의 정취를 느끼다보니 어느새 철학의 길 한복판이었다. 11시 언저리쯤 되었을까.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플만 했다. 일어난 게 6시가 안된 시간이었고, 맛없는 야끼소바로 아침을 떼운 것도 벌써 3시간은 되어갔다. 이런 저런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걷다 보니 지치는 지도 홀린 듯 여기까지 왔다. 홀리는 것도 좋지만, 이젠 뭔가 영양을 보충할 시간이다. 이 주변에 밥집은 없어도 끝내주는 카페는 있다고 들었다. 

과연, 둘러보다 보니 소문의 그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꽤 큰 고택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철학의 길 특유의 조용함 덕에 왠지 몰래 들어가는 것처럼 살짝 들어가게 되었다. 안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 최고의 정원을 보고 온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소나무와 석등, 여러 꽃나무들이 자리잡은 정원을 지나 카페의 문을 열었다.

그래도 내부는 현대적일 것이라는 비관적 상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바닥은 모두 다다미였고, 방석과 상이 가지런히 열을 맞춰 정돈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첫 손님인 듯, 준비를 하던 종업원이 나와서 안내했다. 밖이 전부 보이는 창문이라 별로 고를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볕이 좋은 곳에 앉았다. 요지야 카페[각주:2]의 오늘 첫 손님으로 이런 풍경을 두고 대접받다니, 역시 일찍 오고 볼 일이다. 

▲요지야 카페의 정원이 보이는 다실, 모두 좌식이다.[각주:3]

▲요지야카페의 대표 셋트, 모나카세트. 820엔.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계속 서서 피곤한 다리를 풀어주고 있자니, 주문한 셋트가 나왔다. 요지야의 엠블럼이 그려진 말차 카푸치노와, 아이스크림, 모나카가 담겨진 셋트였다. 간소했지만 정갈했다. 팥도, 차도, 아이스크림도 모두 좋아하는 메뉴에 이런 좋은 정취까지 선물 받으니 마음에 안 들 수 없었다.

맛 또한 기름종이를 만드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말차 카푸치노는 서로의 맛이 어우러져 둘의 쓴 맛을 서로 감싸주었다. 아이스크림은 보통 녹차 아이스크림은 아니었다. 못해도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 같았다. 역시 녹차는 어디든 잘 어울린다. 커피에도, 아이스크림에도. 모나카를 먹으려 보니, 아뿔싸. 정신도 못차리고 그저 팥이 있길래 먼저 팥을 떠먹어버렸다. 팥없는 붕어빵 급의 모나카 껍데기만 남았다. 에이 어쩌겠는가, 아쉬운 대로 먹어야지. 지금도 이런데 더 안쉬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싶었다.

디저트가 맛이 아무리 있다해도 이 카페의 백미는 정원의 정취를 차와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다다미방에서 밖이 보이는 정원을 감상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고, 어느 하나 떨어지는 것이 없으니 더 바랄 것도 없었다. 마치 나만을 위해 준비된 듯한 정원을 만끽하며 커피를 마시다보니 불현듯 아까부터 고민하던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데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왜인가'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사실 그냥 이 길은 정말로 평범했던 것이다. 내가 이 곳이 아름답고 느낀 이유는 여행을 와서 내가 직접 경험했기에 깨달은 것 아닐까.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이 곳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이 곳은 나에게 아무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을 것이다. 철학의 길은 그저 평범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로길이었을테고, 이 모나카도 그냥 모나카였을 것이다. 유명세와는 다른 이야기로 내가 직접 왔기 때문에 평범한 길이고 디저트이지만 어떤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길이고 디저트인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철학적으로는 꽤 가치있는 이야기 아닐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이래서 '철학의 길'이구나 싶었다. 왜 평범한데도 아름다운지도 알 듯 했다. 니시다 기타로가 옆에서 같이 차를 마시는 듯 했다.[각주:4]

절경이로다, 절경이로다[각주:5]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이 절로 떠올라 좀 오래 카페에 앉아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 주변이 소란스워 보니 12시도 훌쩍 지나가 많은 이들이 점심을 먹고 이 곳을 들렀다. 계속 있어도 좋지만,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철학의 길을 따라 내려갔다.

▲철학의 길 끝자락, 에이칸도(永観堂). 가을에 교토를 들르는 분들은 놓치지 마시길.

단풍으로 유명한 에이칸도의 표지판으로 철학의 길은 끝이 났다. 시간만 있다면 내일도, 그 다음날도 다시 오고 싶었다. 아쉬운 일이지만 발을 멈출 수는 없다. 에이칸도도 이래저래 들러봤지만 단풍이 없어서 그런지 그렇게 인상 깊게 소개할 만한 것은 없었다. 천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자랑하는 늙은 절을 지키듯이 둘러져 있는 나무들이 모두 단풍이 예쁠 것 같은 이파리를 가졌다. 가을에 교토에 들른다면 다시 들르자고 아쉬움을 달래고 발걸음을 옮겼다

▲에이칸도(永観堂)를 지나면 난젠지(南禅寺)의 좌측문이 나온다.

에이칸도를 빠져나오니 작은 쪽문이 나왔다. 왜인지 아스팔트도 깔려있고 바로 직전까지 가정 집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서도 내가 난젠지에 들어왔다고 못 느낄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난젠지 경내가 에이칸도까지 연결되어있을만큼 크고 내가 들어간 문은 그 많은 문 중에서도 작은 문에 속하는 것이었다. 긴가쿠지도 그렇고, 일본은 절들의 문이 다 이렇게 작은 건가 하는 오해를 할 뻔 했다.

▲난젠지의 법당. 법당이 이 정도로 묵직한 것을 본 적이 있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팔트가 끊기고 옛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변이 탁 트이고 엄청나게 큰 건물이 등장했다. 난젠지의 법당이었다. 컸다. 커도 너무 컸다.[각주:6]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느낀 감정이었다. 건물의 전체를 찍는 게 힘들 정도로 큰 법당은 아기자기하고 치밀하지 않았다. 반대로 오래된 느티나무를 볼 때 느끼는, 가만히 몸을 기대고 싶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긴가쿠지는 극한의 아름다움으로 그 곳에 있는 이들을 머무르게 한다면, 난젠지는 몸을 맡기고 기대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것 같은 듬직함으로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마력이 있었다.

▲멀리서 본 난젠지 법당의 전경, 화로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보통 오는 이들이 평안을 비는 화로도 굉장히 멀리 놓여져 있었다. 법당이 높고 크기에 그 것을 모두 보며 복을 빌기 위해서였겠지만, 화로 근처에서 난젠지 법당을 보고 있자니 '복은 이 정도 거리에서 빌고 돌아가라'고 말하는 듯도 했다. 더 가까이 가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난젠지의 그림자폭에 자신을 숨길 것 같았으니까, 일찌감치 거리를 두게 하려고 화로를 이렇게 멀찍이 두지 않았을까. 상상뿐이었지만, 그만큼 난젠지의 법당의 묵직함은 새로웠다.

▲난젠지에서 꼭 들려야 한다는 수로각. 고대 유적과 같은 느낌이 난다.

법당을 왼쪽에 두고 야트막한 오르막을 향하니 그 곳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유적이 등장했다. 로마의 수로교를 본따 만든 수로각이었다. 교토의 식수원을 그대로 끌고 오는 수로로 이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완전히 다른 서양의 양식은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게 원래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난젠지의 무게감을 완성시키는 듯 했다. 얼룩덜룩 색이 바라고 곳곳에 이끼가 핀 이 물의 다리는 난젠지에 그림자에서 흐르는 안도감을 완성시켜 교토 곳곳으로 흘려보내는 듯도 보였다.

'절경이로다'. 보통 기가 막힐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때 나올만한 단어 선택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이 난젠지에 숨어있던 한 대도(大盜)의 입에서 나왔다. 어젯 밤, 난젠지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건물이기에 절경이냐는 말이 나올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와서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어디선가 신령한 사슴신[각주:7]이나, 오무[각주:8]라도 살 것 같은 이 곳은, 인간이 압도당하는 듯한 자연을 보는 것 과 같았다. '절경이로다. 절경이로다.' 그 절경 아래에서 한 여성이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 또한 절경이었다.

③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한다

절경이 주는 차분함을 담고 스트레칭을 한 후, 교토 중앙쪽으로 몸을 틀었다. 시곗바늘은 3을 지나치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이었다. 신사라 하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고, 나라가 나라이기도 해서였다. 아무래도 신사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야스쿠니(靖国)'신사가 떠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보지 않는다면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신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제 3자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야기로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신사 중 하나인 헤이안 신궁은 껄끄럽더라도 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은 진짜 존재하는 그들을 알기 위해서도 있었으니까.

)

▲헤이안 신궁의 토리이[각주:9]. 교토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헤이안 신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을 끼고 걷다 강을 건너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마자 아무리 신경이 둔한 사람이라도 눈을 둘 수 밖에 없는 새빨갛고 큰 토리이를 마주했다. 난젠지가 숨겨둔 묵직함이라면, 이 토리이는 만천하에 당당히 공표하는 듯한 거대함이었다. 못잡아도 10미터는 충분히 넘을 것 같은 이 토리이 뒤로 큰 차로와 공원으로 이루어진 산도(참배로)가 이어졌다. 표지판을 보아하니 주변에는 동물원, 도서관, 미술관 등의 다양한 문화시설이 존재했다. 어떻게 보면 이미 신사 안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곳은 하나의 문화를 소비하는 공간같이 보였다. 죽은 이와 산 자의 문화가 좀 거리가 있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도시 한복판에 죽은 이를 위한 신사가 있는 것도, 그 곳이 문화를 즐기는 곳으로 변모한 것도 말이다.

▲헤이안 신궁의 대문격인 오우텐몬(応天門). 어딜 봐도 새빨갛다.

참 새빨간 곳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새빨갛다. 예로부터 붉은 색은 잡귀를 쫓는 색이라 했지만 다른 절이나 보통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신사와 달리 당최 빨갛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건물들이 모두 빨갰다. 빨간색에 눈이 아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마음의 평안과 거리가 먼 종교시설이라니. 다시 한 번 고정관념을 깨는 화려함에 놀랐다. 굳이 크게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도 않고 오로지 헤이안 천도를 단행한 간무 천황[각주:10]을 모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굳은 다짐같은 느낌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신궁은 생동감이 넘쳤다. 많은 이들에게 이 곳은 삶의 한 부분이었다.

참 깊은 맛 없이 화려하기만 한 이 곳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산 사람'들이었다. 교토에서 가장 큰 신사, 일본에서도 유명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 신사는 그만큼 많은 이들이 와서 그들의 운세를 뽑아보고, 기도를 올리며, 웨딩사진을 찍기도 했다. 신사 내부는 수많은 언어와 목소리의 색깔로 가득했다. 이들의 공기를 수놓는 목소리의 색깔들은 강제로 화려하게 만든 죽은자의 공간을 붉은 색에서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였다.

개인의 운세가 적힌 오미쿠지(おみくじ)를 마치 벚꽃처럼 화려하게 묶고[각주:11] 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수다스럽게 떠드는 일본인들을 보며 이들에게 신사란 어떤 공간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신사는 문화공간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그 가운데서 운세를 점친다. 길이면 기쁘게 다시 복을 빌고, 흉이면 나무에 묶고는 다시 복을 빈다. 그러곤 길이던 흉이던 상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나와 산도에 준비된 미술관, 박물관등의 문화를 즐기며 스트레스 없이 다음날을 준비한다. 일본인에게 신사란 죽은이를 참배한다는 명목을 빌어 빡빡한 시간을 빼 친한 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문화공간으로 보였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적어도 이 신궁에서 본 일본인들은 그렇게 보였다.  

그랬구나, 그렇기에 현대에도 신사는 없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신사의 영험함을 믿는다던가 진지하게 모든 사물에 신이 들어있다고 믿는 이들은 매우 적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죽은자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좋은게 좋은거니까. 정말로 와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분명 목적 자체가 정치적이고 불건전한 신사들이 많지만, 그것이 일본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를 이 곳에 직접 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한참 빗나간 어림짐작만 머릿속을 어지럽혔을 것이다.

역시, 어떤 평범한 것이라도, 얼마나 신비한 절경이더라도, 알지 못하는 다른 문화도 내가 사는 곳에서만 상상해서는 알 수 없다. 느낄 수 없다. 여행의 중요함이, 소중함이 이렇게 또 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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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70~1945. 신칸트주의와 일본 불교의 융합적 사상을 펼친 철학자다. [본문으로]
  2. 기름종이로 여성들에게 유명한 그 요지야의 카페가 맞다. [본문으로]
  3. 자리는 많지 않다. 꽉 앉아도 7~8 테이블 될 것이라 생각한다. [본문으로]
  4. 사실 니시다 기타로의 사상도 어찌보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훨씬 깊은 사유를 가진 사상이지만. [본문으로]
  5. 가부키, <산몬고산노키리>에서 전설적 대도 이시카와 고에몬이 난젠지에서 외친 말. [본문으로]
  6. 이렇게 큰 사이즈를 자랑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본디 난젠지는 카메야마 덴노의 별궁이었기 때문이다. 경내가 큰 이유도 모두 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문으로]
  7. 시시가미,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 [본문으로]
  8.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괴생물 [본문으로]
  9. 신사 입구에 자리한 구조물, 한국 릉에 자주 볼 수 있는 홍살문과 비슷하다. [본문으로]
  10. 이 헤이안 시대의 건물은 고건물들의 홍수인 교토에서 꽤 신식에 속한다. 간무천황의 헤이안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해 1895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11. 오미쿠지를 묶는 행위는 안 좋은 운세를 신에게 떠맡긴다는 의미로 지금까지 전래되어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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