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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덕사상사-도덕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일본도덕사상사

 이에나가 사부로 지음

예문서원 

 325p


일본도덕사상사는 특이하다. 도덕을 말하지만 일반적인 도덕을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될 수 있는 한 학자들에게 의해 연구되어온 도덕적 철학사상을 배제했다. 그 빈자리에 그 당시의 시대를 움직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채워 넣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올바른 행동대신, 한 시대를 살아가던 주요 계층의 현명한 처신, 영리한 처세법을 부각한 것이다. 보통 도덕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이름을 붙이자면 세부적인 문화에 가까운 것을 도덕이라고 부르고, 부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 이에나가 사부로가 이 책으로 외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저자의 의도는 머리말에서부터 명확하다. ‘지금까지의 도덕사상사에서는 역사를 움직이는 대중과 동떨어진 고립적인 도덕사상이 부당하게 중시되어온 경향이 있었지만, 우리는 반대로 지금까지 부당하게 경시되어 온 무명의 민중사상이 당연히 차지해야할 공정한 지위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이 말은 생각하지 않았던 개념을 두드려 깨운다. 그렇다. 우리가 도덕이라 부르며 배워온 사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상인가?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학술적 논의가 활발한 도덕적 사상은 우리의 삶을 닮고 있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그 당시 민중의 사상, 그 당시 삶의 모습을 비춘 사상을 우리는 배우지 않았다. 우리가 배우는 도덕이란 개념은 우리가 사는 것에서 옳은것이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들, 대사상가들의 말들을 우리는 자연스레 가장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규범으로 인식했지만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철학자들, 우리의 인식을 이끌던 소위 도덕의 영도자들의 눈은 우리에게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완전한 인간상을 상정하고 있었다. 플라톤은 철인(哲人)’이라는 이상국가의 지도자를 세우고 마땅히 사람을 이끌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다. ‘철인은 교육에 교육을 거쳐 완벽히 정제된 도덕적 완성체였다. 플라톤은 이런 이가 다른 도태된 사람을 이끄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완전히 평등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철저한 능력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이 이상국가는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에도 대단히 진보적이다. 하물며 고대 그리스인에게 이 도덕적인 인간에 대한 감상은 어땠을까? 과연 현실에 닿는, 그들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도덕이었을까?

아니다. 또 한 번 답은 아니다이다. 고대 아테네는 민주주의였지만 그 민주주의는 완벽한 인간을 선별하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아테네는 작은 도시국가였고, 언제나 도사리는 전쟁의 위협, 전멸의 공포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민주주의적 과두정이 필요했다. 그들의 사회는 몇 십 년 동안 위대하고 결점 없는 도덕적 완성체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없었다. 플라톤의 철학은 그 당시 아테네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몇 천 년을 넘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힘들다. 이런 도덕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도덕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 실존하지 않는 세상. 토머스 무어의 대표작의 제목인 이 단어는 소수의 뛰어난 이들의 사상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도덕적 사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사상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사상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용하기에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가 그 시대의 대표적 사상이라고 배우는 것들로 그 시대의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이해할 수 없다. ‘대표적 도덕 사상을 배움에도 그 시대의 도덕관념을 알기 힘든 것은 어찌 보면 역설적이고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저자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에나가 사부로가 진정으로 제기한 문제는 소수의 사상가가 정립한 사상이 현재와 어울리지 않아서라는 관점의 차이만이 아닌, 이상향적 사상을 현재에 억지로 맞추려 하다 일어나는 비극에 있다.

그 시대를 이끄는 사상가들의 사상은 진취적이다. 그 시대를 살면서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라 지나치게 이상적이면서, 그 시대상과 맞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의 도덕 사상이 지배층, 엘리트층에게 수용이 되고, 엘리트층이 이를 국가적 실행에 옮기려 하는 순간 그 시대를 살아가는 도덕과의 괴리가 일어난다.

단순히 미래적 도덕사상이라면 문제가 덜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실현이 불가능한 절대적인 이상으로서의 도덕인 경우 문제가 커진다. 민초로서 국가의 사상을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이상을 실천하기도 힘들다. 결국 억지로 그 당시의 도덕을 구부러트려 이상적 도덕에 맞추게 되며 인간성이 상실된 변질적 도덕이 탄생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아니다. 공산주의. 모두가 벌어 모두가 나누는 평등한 이상국가적 도덕은 70년 전을 휩쓸었다. 많은 국가가 이 이상적 도덕에 지지를 보냈고, 그들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다. 문제는 이 공산주의가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억눌러야만 가능한 절대적인 이상으로서의 도덕이었다는 것이다. 국가는 준비가 안 된 민중의 도덕 가치관을 끼워 맞추려했고, 거부하는 이들을 죽이는 것도 다반사가 되었다. 결국 그 체제 아래 남은 민중들은 진정한 의미의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없었다. 죽지 않기 위해 그 도덕에 무미건조하게 순응하고 그 도덕을 지지하는 소수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거름으로 스러졌다. 이미 마르크스가 내세웠던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변질적인 도덕만이 남았다. 그 변질적인 도덕을 위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저자는 일본 또한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소수가 만들어낸 무사도는 어느새 국가 전체의 도덕이 되었고, 이는 실현이 힘들 정도의 자기희생이 있어야만 했다. 결국 변질된 무사도, 단순히 민중의 삶을 의미 없는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가미카제로 대표되는 변질적 도덕이 되었고, 이 변질적 도덕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미담으로 포장되어 현대 일본에 남아 민중을 옥죄고 있다.

이는 일본인의 도덕이 아니다. 일본의 시대적 도덕이 아니다. 이에나가 사부로는 그렇기에 이 특이한 일본도덕사상사를 집필했다. 미담으로 포장된 변질된 도덕이 아닌, 진정 일본인으로 그 땅에서 살아간 이들의 도덕을 적기 위해, 시대를 앞서나간 도덕, 이를 강제로 받아들이게 해 변질된 도덕을 당연한 도덕적 가치로 교육하는 것을 거부하고 시대를 직시하는 교육을 위해 펜을 들었다.

저자는 단순히 펜을 든 것만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교과서에 그들이 미담으로 만들려던 왜곡된 도덕의 배설물인 난징대학살’, ‘731부대등을 역사교과서에 새기고, 있는 그대로의 도덕을 교육하려 했다. 그러나 1962년 문부성은 이를 부적절하다며 검열했다. 그는 이후 32년 동안 이미 변질되어 버린 도덕을 미화하려는 국가권력과 싸워왔으며 결국은 위법판결을 받아내었다. 그는 행동으로서 그 시대의 도덕의 주인공은 민중임을, 그것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음을 몸소 증명했다.

이 시대의 도덕의 주인공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런 외침이 담긴 도덕사상서는 1953년에 나온 이 책 이후로는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도덕사상서가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도덕이 아닌, 과하게 미화된 변질적 도덕을 가치로 여기고 출판해내고 있다. 이는 비단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또한, 이런 식의 시도를 가진 도덕사상서는 굉장히 드물다. 이 나라가 지나친 이상적 도덕의 주입과 그 변질로 인한 피해자, 그것도 일본과 북한에 의해 짧은 시기에 두 번이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제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음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지나치게 민감한 민족주의, 조선부터 이어진 변질적 유가적 도덕, 정치체제가 바뀔 때마다 번갈아 힘을 받는 종교적 도덕은 현대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가치가 아니다. 이상적이기도, 구시대적이기도 한 도덕이다. 이를 반 강제적으로 국가적, 국민적 정서 차원에서 받아들여야하는 도덕적 가치로 여기게 하는 것은 우리 또한 우리가 증오하던 이들을 따라가는 모습이 될 가능성을 언제나 안고 있음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도덕의 주인공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단순히 이 만을 중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 것은 더 이상의 사상적 진보를 포기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저 이에나가의 외침을 무시하기엔 우리의 역사가 그 변질이 얼마나 위험한 비극을 낳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한번쯤 언제나 옳다, 중요하다 배웠기에 당연했던 그 관점에서 벗어나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길을,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확인할 가치는 충분하다.

일본도덕사상사
국내도서
저자 : 이에나가사부로 / 세키네 히데유키역
출판 : 예문서원 200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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