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이 감정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감정은 없다. 자신의 손아귀에는 아무 것도 없고,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있는 다른 이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계속해서 곁눈질 하게 되고 그들을 미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길 잃은 증오는 결국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돌아오게 된다. 무능력함을 탓하며 서있는 동안 다른 이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고 그 모습을 보고 나면 더더욱 움직일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열등감은 사람을 그 자리에 묶어두고 만다.
이렇게 열등감의 악순환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작가 타니무라 시호는 ‘미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모든 것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신의 안 좋은 점을 찾는다. 자신의 장점이 될 수 있는 피부색이나 순수한 이미지도 이내 나쁜 것으로 취급해버린다. 이런 모습은 점차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남이 보지 못하게 숨기고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 ‘콘조’조차 그 비교의 대상에 들어가 고백은 생각도 못하고 거리를 두고 마음만 태우고 있는 열등감에 가득 찬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서 화가 날 정도이다.
그런 미쿠에게 스카이다이빙이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다가왔다. 스카이다이빙을 못 뛰겠다고 뒤로 빠진 것으로 미쿠 탓으로 돌려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에 탓을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쿠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아끼는 콘조의 안전에 대한 걱정을 하기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자기를 비교했다. 그녀는 스카이 다이빙을 하는 콘조가 자신보다 잘났다는 생각에,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 자신보다 예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이 상황에서 만난 한 사람이 전혀 느닷없이 미쿠의 삶을 흔든다. ‘맥스’다. 맥스는 시종일관 우스꽝스럽다. 일흔은 다 되보이는 늙은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카이다이빙 강사를 하겠다고 술주정 마냥 얘기하며 돌아다니다가 시저 샐러드나 한 사발 잔뜩 퍼서 먹고 있는다. 그를 써주겠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그를 쓸모 없는 무언가로 생각하고 무시하고 있다. 정말로 그는 다른 이에 비해서 열등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젊고 멋진 이들에 비하면 그는 초라했다. 그러나 그는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언제나 하늘에서 뛰어내릴 수 있도록 단련하고 있었다. 미쿠에게 그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모두에게 무시당하면서도, 그리고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는 멈춰 서지 않았다. 왜? 왜 그는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은 것일까?
돌이켜보면 그녀는 그 신기한 충격을 사우스의 서퍼들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잘하지 못했다. 서퍼들은 프로에 비하면 한참 못하는 수준이었다. 맥스도 젊은 강사들에 비하면 당연히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절망하지도, 비교하지도 않았다. ‘분명 처음부터 보는 것이 다른 것이겠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에 몸을 싣는 것이 좋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좋았다. 그 위치에서 보는 풍경이 좋았던 것이다. 그 걸 더 잘하는 사람을 볼 필요는 없었다. 자기가 뭐가 모자라는지 볼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그 순간, 그들이 느끼는 그 감정에 충실했고, 그것으로 행복하기엔 충분했다.
콘조가 비행장으로 향하려는 모습을 보자 미쿠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콘조의 옆에 있고 싶다. 콘조와 같은 하늘을 날고 싶다. 그 생각이 그녀를 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나 자신이 잘 할 것인지, 지금 이 행동이 잘 한 것인지, 5분전이었어도 계속해서 멈춰서 생각하며 숨어들었을 미쿠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얼마나 콘조 옆에 있기에 모자라다고 하더라도 콘조의 옆에 있고 싶다는 것을.
열등감은 치명적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쇠사슬보다 단단하게 사람을 옥죈다. 그런 가운데, 이를 풀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을 독려하는 책들도 쏟아져 나온다. 궁금해져서 요즘에는 어떤 책들이 나오는지 서점을 둘러봤다. 성공, 성공, 성공. 성공하기 위해서 바꾸라고 독려하는 책들의 홍수였다. 그러나 ‘성공하기 위해’라는 말만큼 열등감의 감옥을 늪지대로 만드는 말도 없다.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하니까. 잠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다 안도하다가도 성공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자신을 보고 나면 일어설 수 없다.
그 가운데 미쿠가 본 보통보다 못한 이들이 보여준 삶의 자세는 개운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오로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다. 성공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단지 그 순간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서 그들은 그들의 몸을 단련하고 누가 뭐라해도 바다로, 하늘로 나갔다. 지금도 많은 이들은 성공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외치며 자신의 열등감을 뜯어내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들다면 그 수많은 책과 방법들 사이에서도 힘들다면 하와이 노스쇼어의 스카이다이빙 비행장에서, 사우스의 해변에서 미쿠와 함께 맥스와 서퍼들을 보며 되물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그들은 그럴 수 있을까? 파도가 다른 걸까, 몸이 다른 걸까?’
분명, 보고 싶은 것이 다른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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