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도, 연애를 해봤다면 첫사랑의 기억 또한 있다. 그리고 첫사랑을 겪었다 말하는 많은 이들이 첫사랑은 평생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만큼 애절한 기억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또 다른 반대편에선 미숙한 한 때의 치기였다고 말한다. 그렇게 첨예하게 맞붙는 주장들은 아니지만 왜 그렇게 다른 반응이 나오는지 묻는다면 답할 말이 많지 않다. 그 이유를 시마무라 요코는 단 한 번의 입맞춤으로 제안한다.
왕따를 당하던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하루미라 하는 그 아이는 시골에서 이질적이었다. 표준어를 고수하고, 그 나이의 아이들에 비해서 색기가 있었다.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당연하게도 눈에 확 띄지만 무리와 따로 노는 아이는 가혹한 따돌림의 표적이었다. 그렇게 하루미는 장점일 수 있는 이유들로 또래 집단에서 왕따를 당했다.
코우스케는 하루미가 눈에 밟혔다. 혼자 우는 하루미가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하루미는 곁에서 도와주는 코우스케가 고마웠다. 그게 자신을 동정하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음에도 하루미는 동정의 결과로 나오는 코우스케의 행동이 소중했고, 코우스케가 좋았다.
키스. 단순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 그리고 하루미에게도 코우스케에게도 낯선 방법으로 하루미는 코우스케에게 자신의 마음을 나타냈다. 결과는 실패였다. 코우스케는 자신의 순수한 동정이 하루미를 향한 사랑으로 비춰져 오해 받는 것이 싫었다. 감정은 엇갈렸다. 코우스케와 하루미의 관계는 이렇게 첫사랑도 아닌 짝사랑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것이 정말 짝사랑이었을까? 코우스케는 20대가 되어서야 자신과 하루미의 관계가 동정과 짝사랑의 어긋남이 아님을 알게 됐다. 세상에 나온 코우스케는 자신을 향한 호의의 대부분이 손익을 따지는 관계임을 알았다. 친구라는 신지는 코우스케가 그라비아 모델 ‘하루나’로 성공한 하루미의 동창이란 사실에 어떻게 더 하루나와 알고 지낼 수 있을까 계산하며 코우스케를 대한다. 후유카는 자신에게 푹 빠진 코우스케가 자신의 말에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묘한 우월감으로 코우스케를 곁에 두기만 하고 있었다. 사회에 나온 자신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자신과 가까워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신지를 통해 ‘하루나’가 된 하루미를 사인회에서 만났고, 며칠 후 방송에 출연한 하루미는 자신과의 첫키스를 잊지 않고, 꾸미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말했고, 사인회에서 다시 만나서 좋았다는 얘기까지 했다. 코우스케는 그런 하루미를 보며, 자신의 예전 그 감정이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그 동정은 미숙한 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은 감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자라며 사랑을 많이 할수록 보이는 것이 사랑을 계산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과의 데이트에서 자신이 어떤 것을 얻고, 이만큼 해준만큼 자신은 이만큼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심리,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심리가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결국 이 모습은 ‘연애는 이 사람과 해도 결혼은 다른 사람과.’ 같은 식의 생각으로 뻗어 나갈 정도로 자란다.
하지만 첫사랑은 다르다.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정의를 내리기도 힘든 나이에 불현듯 찾아오는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그 아이의 행동이 눈에 밟혀서, 계속 생각나 그 아이 곁에 있는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손해가 있더라도 말한다. 그 것이 어떤 때는 실패로 이루어지기는 해도 무모할 정도로 첫사랑은 당당하다.
하루미는 코우스케를 사랑했다. 계산하지도 않고 포장할 이유도 없는 순수한 첫사랑이었다. 실패한 그 과정도 자신이 손해를 볼 것을 알았음에도 당당한 고백의 키스를 했다. 많은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코우스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코우스케는 자신의 행동이 확실한 ‘동정’이라고 생각했다. 왕따 당하는 하루미가 불쌍해서 곁에 있어주고 조금씩 도와줬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코우스케의 ‘동정’은 사랑이었다. 하루미가 느낀 계산 없이 상대방이 신경 쓰이는 그 감정 그대로였다. 단지 코우스케는 이름을 잘못 붙였을 뿐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르던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자신을 동정해주는 이도, 정말로 사랑해주는 이도 없었음을 알게 되고, 하루미가 아직도 자신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음을 느낀 코우스케는 그제서야 추억 속 감정의 이름을 고쳐 썼다. ‘다시 오지 않을 첫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자는 잊지못할 아련한 사랑으로, 다른 이는 한 때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얘기한다. 시마무라 요코는 그 둘 사이에 서서 손을 맞잡고 아련하며 따스하게 얘기한다. 긍정하던 부정하던, 자신을 생각해주던 이가 있었고, 자신도 언제나 신경 쓰여서 옆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면, 어떻게 이름을 붙여도 그것은 사랑이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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