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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의 서재] 밀실살인게임 시리즈_답하고 싶은 질문들


'밀실살인게임'. 일본의 추리작가 우타노 쇼고가 지은 세 권의 시리즈 소설이야. 3권의 플롯은 놀라울 정도로 같으면서도 파격적이야. 

'복수, 금전, 치정같은 이유 없이, 단순히 내 지적 쾌락을 위해서 아무도 풀지 못할 트릭을 고안하고 살인하고 문제를 낸다. 그리고 그렇게 출제한 문제를 똑같이 지적 쾌락을 위해 어떤 죄책감도 의무감도 없이 해결한다.'

정말로 플롯은 이게 전부야. 심플하고, 놀라울 만큼 냉랭하지. 자칭 추리마니아들은 각자의 얼굴을 가리고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로 분장하여 화상채팅으로 누가 더 뛰어난 추리력을 가졌는가를 출제자는 실제로 죽여서, 그리고 나머지는 만들어진 살인사건을 감상하며 추리하지.

플롯이 단순하니 이야기의 갈등도 거의 없지. 죽이 맞는 사람끼리 즐기는 일이니 그 행위의 도덕적인 책임을 묻지도 않고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는 이렇다 할 등장인물 간의 점점도 잘 생기지 않지. 결말 또한 여운이 남지도 파격적이지도 않아.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한 정말로 사람에 따라서는 심심한 결말이지. 소설의 완성도로 따지자면 절반 이상에서 점수를 까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어. 

앞일이 뻔히 보이는 스토리, 자신의 삶과 비교해보기에는 너무 맛이 간 주인공들. 소설로는 어쩌면 낙제점일지도 모르는 이 책은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고, 나 또한 이 책을 사랑해. 모든 문제를 배제하고 트릭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뭐 그것도 맞는 말이겠지.  추리소설을 읽는 모든 이들이 느끼게 되는 갈증을 이 책은 잘 해소시켜주거든. 추리는 그야말로 지성과 지성의 피말리는 싸움과, 서로간의 물러설 수 없는 가치관을 두고 일어나는 날카로운 서술이 매력이라 생각하고 즐기는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어느 순간 트릭을 위해 어거지로 끼워 맞춰지는 신파, 어느 순간 드라마의 조연이 된 추리 같은 것에 학을 떼게 된다고. 그러다보니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런 점을 계속해서 꼬집고, 해소시켜주는 굉장히 시원한 작품일 수 밖에. 그리고 이 이유는 정말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과 함께 큰 시너지를 일으켰고, 이 책을 손에 들 수 밖에 없는 큰 이유가 돼.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단순히 흥미본위로 읽게 되는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섬뜩한 매력을 보여줘-이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사랑하고- 물론 당연히 또라이 같고, 그 면이 섬뜩하지. 온갖 말할 수 없을, 생각하기도 힘든 트릭들을 사용하면서 장난치듯이 사람을 죽이고 과시하는 모습에서 오싹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거야.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다 보면 느끼는 본질적인 질문이 하나 있어. '과연 이들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한 권이 끝날 때마다 주인공들은 어떤 식으로도 파국을 맞고, 게임은 사실상 종료가 되지. 처음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스러졌지만 이후 녹화본이 유출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이들을 따라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그 중에서 특히 뛰어난 한 그룹이 주인공이 되게 되지. 이후 3편 또한 마찬가지고. '이들은 과연 어떻게 생겨나고 늘어나게 되는걸까.'

작가는 또 한 권이 지나갈 때마다 눈에 띄게 한 가지 씩 사용되는 기술을 늘리며 주인공들의 진보를 보여줘. 처음에는 그저 화상채팅, 이후에는 이들의 영상이 공유되고, 이들 사이에서도 정보를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유하지. 이후 세 번째 편에서는 단순히 공유를 넘어 그저 바라보고 있던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중계하는 개인방송의 모습까지 띄게 되지. '이들은 왜 이렇게 발전하는가.'

왜 과연 이들은 태어났고 늘어났고 발전하고 있는걸까? 소설 속 이야기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냐고?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계속해서 무너지고 파멸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나타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왜 이들을 따라하는 걸까. 어째서 동조하게 되는 걸까. 어째서 사람이기를 포기하게 되는 걸까. 멈추게 할 수는 있는 걸까.

복잡하고 막막하지.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더 섬뜩하고. 과연 그런 이유가 있기는 한 걸까? 아니면 그들의 동기마냥 그런 것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이 등장인물들이 모두 잔인하기 짝이 없는 추리소설 마니아이기 때문일까? 게임 때문일까? 아니면 성적 불평등 때문일까? 끝없는 질문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복잡하게 머리를 지나가. 그리고 이내 그 답을 도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이들의 정체는 별다를 바 없는 이들이고, 이들의 희생자는 그보다 더 별다를 바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야. 처음에는 그런 무서운 날이 도래할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했었지. 그런 신문 사설도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은 왜 그런 이들이 생겨났는지 막을 수는 있는지를 걱정하는 세상이 왔지. 매일 내 주변의 번듯한 내 친구가 인터넷 안에서는 각종 혐오 발언에 인증을 뱉어내고, 내가 믿던 누군가는 내 등 뒤에서 칼을 꺼내며 그걸 업로드하는 세상. SNS에서는 자해의 가까운 행동을 중계하고 맘 맞는 이들끼리 모여 저급하고 섬뜻한 얘기를 낄낄대는 세상. 지금은 그런 세상이 됐지.

어릴 때, 세상이 기술의 발전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여기저기서 봤던 것 같아. 그 때는 어떻게 기술이 발전한다고 인간성을 상실하냐며  비웃고는 했던 일이 기억나. 지금도 비단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소설을 보면서 떠오른 질문으로 소설 너머 창문으로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 있자면 그럼 어째서 그런가라는 황망한 물음과 답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세상이라고 우리는 말해.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이 '소설같지 않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지 않은 이유도, 명분도 없는 잔인한 세상이 눈 앞에 펼쳐져 있기에. 나는 오늘도 이 책을 사랑해. 이 책을 책같지 않다고 혐오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내가 자네한테 던진 질문에 조금 더 그럴 듯하게, 아니 궤변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답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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