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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싸래한 단편소설]10일간의 죽음

문득, 자신이 낙오자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 가운데서, 친구 가운데서, 시끄러운 군중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안아줄 사람이 어느 곳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이는 자신이 외롭지 않은, 사회가 자신을 받아주는 삶을 동경한다. 기댈 수 있는 다른 이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며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랑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보든지 상관없다. 이전보다 세상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것 같지만 상관없다. 자신이 찾은 삶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10일간의 죽음은 이런 삶이 죽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오랜 프랑스 생활에 일본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일과 자기과시에 빠진 무관심한 부모 가운데서 처절한 낙오감과 상실감을 느끼던 16살의 소녀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보르도에서, 자신과 닮은 낙오자 마크를 만나게 된다. 가업에서 도태되고, 자신의 아내에게도 떨어져 나온 마크는 그녀에게는 운명과 같은 사람이었다. 모든 곳에서 낙오되어 살아오던 그녀에게 누구보다 자신을 잘 품어줄 한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원초적으로 탐닉했다. 그들은 서로로 인해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얻었다.. 소녀는 마크를 사랑했다. 아니,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작품에서 언급되듯 그들은 이인조(二人組)’였다. 그들은 둘로만 이루어진 사회를 꾸렸다. 둘만의 을 살았다. ‘낙오자였던 사실은 어째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낙오자라 불리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들이 서로를 탐닉하고 서로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들은 세상에서 더욱 멀어졌다.

 

 

소녀의 삶은 원하던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소녀가 사랑을 갈구했던 이유는 낙오자가 아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세상을 원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외면하려 해도 소녀가 마크를 사랑하면서 소녀는 더욱더 세상에서 멀어졌고 그건 소녀가 갈구하던 삶을 얻지 못하는 것이었다. 소녀가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 소녀도 마크도 사회에서 낙오된 상대에게서 떨어져 나와야 했다. 그것이 소녀의 새로운 을 마감하는 죽음이라고 생각되더라도 그렇게 해야 진정 행복해 질 수 있었다.

 

 

소녀는 사람을 진정 죽이려 하는 자신에게서 낙오자로서 완성되는 자신을 보았다. 그것은 지금의 삶은 소녀를 완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호텔에서 두문불출하며 그동안 살아온 사랑했던 마크와 있던 자신의 삶을 죽였다. 죽어갔다. 둘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닌 정말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는, ‘낙오자메구미는 죽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서있는 실존하는 사회에서 다시 사랑을 찾기 위해 문을 열었다.

 

 

 

우리는 때때로 죽어도 괜찮다’. 자신이 사랑하는 삶이 자기가 바라던 삶과 다르다면 죽을 필요가 있다. 죽는다는 표현이 과격하다면 졸업이라고 해도 좋다. 뭐라고 부르던 자신이 원하던 삶과 다른 방향으로 자신이 나아가고 있다면 그 삶을 정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는 욕구는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다. 모두가 이를 원하고 계속해서 찾아간다. 그리고 이 욕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시도하는 과정 자체를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미유키처럼 사회와의 결속감을 느끼는 삶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곳에서 최고의 명예를 쌓고 싶은 이도, 자기 손으로 작은 것이라도 만드는 삶을 최고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는 방법은 사람의 수만큼 많고, 사람들은 완성시켜가는 삶을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생각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아집을 가진 이들을 보곤 한다. 한때 운동가였던 극우인사들, 자신의 작품을 비난하는 이들을 거부하고 숨어드는 작가들. 지금껏 노력했고 사랑했던 삶이 비틀려 잘못되어 버렸다는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죽일 기회를 잃고 하루하루 자신이 바랬던 삶은 이 곳이라며 자신이 바라던 것을 외면하고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에쿠니 가오리는 사회에서 낙오되기 싫었던 열 여섯 어린 소녀가 낙오되지 않기 위해 붙들었고 사랑했던 한 외국인과의 로맨스가 지독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새로운 삶을 사려는 소녀가 삶을 어떻게 죽여갔는지를 담담한 문체로 보여주며 독자에게 말한다. 자신이 그토록 찾았고 사랑해 마지않았던 삶이 잘못되었다면 10일간 호텔 방에서 죽어가도 괜찮다고. 그렇게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잘못됐지만 찬란했던 삶을 애도하고 나면, 사람은 새로이 삶의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마크가 사랑했던 ‘가토는 호텔방에서 죽었다. 그 곳에는 이제 한층 성숙한 메구미가 태어났다. 당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면 당신은 사랑했던 삶과 함께 죽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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