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랬을 테고, 이 글을 쓰는 서두는 대개 비슷했을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렸을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잘 몰랐었다. 라는. 어쩌면, 지금 이 서두도 누군가 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것은 아무래도 괜찮은 일이다. 어린 왕자가 나에게 준 선물은 결국에는 그것이다.
참 알 수 없는 동화였다. 내용 자체는 분명 흥미로웠다. 아주 작은 별에서 장미에게 질려 다른 별을 여행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 결국 죽음과 같은 모습으로 사라지는 이야기.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B612는 뭐고, 그래서 이렇게 짧게 죽어버리는 어린 왕자는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결국에는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과, 상자 속 어린양 정도만 이미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23살이다. 지금의 나는. 젊은 나이다. 아직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나이고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 만큼 사회에 찌들었고, 한 순간이라도 더 이 세상에 녹아드려 노력해왔다. 애늙은이 소리를 중학생 시절부터 듣기 시작했으니.
무의식적으로 나는 내가 찾고 싶었던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없으니까 공허하고, 사람이 주위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도 치명적으로 고독했다. 그 이유를 여기저기서 열심히 찾고 이름 붙여 규정지으려 노력했다. 그 와중에는 우울증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그렇게 규정지어서 뭐가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하나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나만의 상황에 내가 이름을 붙여봐야 그것은 비정상이고, 별종일 뿐이니까. 더 괴롭고 외로워질 뿐이었다.
첫 장을 다시 폈고,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을 그린 주인공이 내 앞에 있었다. 누구도 그 것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남들이 원하는 방식만 충족하고, 자신의 그림은 깊이 깊이 숨겼다. 나와 다를 바 없어 보인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을 말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하며, 내가 가진 것을 꽁꽁 숨겼던 내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의 앞에, 단지 상자를 보고도 양이 있다며 행복해하는, 빛나는 황금 밀밭과 같은 색의 머리를 가진 아이가 한 명, 나의 앞에도 한 명 나타났다. 자신의 얄미운 장미를 버리고 별들을 전전하였다고 한다. 왕도 허영쟁이도, 자칭 부자도, 지리학자도, 가로등지기도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에는 그런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았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들은 왕자에게는 아무런 뜻도 없고 이해도 못할 이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의 친구를 만났다. 여우라고 한다. 이제는 모두가 잊은 ‘길들여지는 법’을 알고, 그렇게 대해주었으면 한다고 한다. 천천히, 너 자신에게 의미 있는 존재를 만들라고 말한다.
줄거리를 죽죽 말하기는 싫은데, 계속해서 말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을 쓰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멈추지 못한다. 내 작은 친구가 나에게 전해 준 이야기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그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소설이 너무나도 슬프다. 대사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너무 슬프다. 단지 슬픈 것을 보아서가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도 깨끗하고, 지금의 나를 투명하게 비추어주고 있어서 그렇다. 모든 구절 하나 하나가 다 내게 너무나 소중하지만, 내가 그와는 너무나도 반대로 살고 있어서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모른척 하고도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어린 왕자를 내 친구로 부를 것이다. 단지 모든 것이 그가 말한 것과 반대라고 해서 내가 그와 영원히 아무 관계도 아닌 채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 나는 그에게 중요한 친구가 될 것이고, 그도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것이다. 그의 친구 여우처럼.
여러 말을 할 수 있다. ‘세상의 말들로 나를 규정짓지 않을 것이다.’ 라든지, ‘가장 소중한 건 내가 느끼는 것이다.’ 라든지, 더 나아가면 작가인 생텍쥐페리까지 불러와서 2차 세계대전과 내 친구의 연관성을 들먹이면서 내 친구의 이야기의 위대함을 열심히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이 작은 친구는 내가 무언가를 재단하고, 내 삶을 자신의 이야기로 부정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결국 뭘 말하고 싶은지 묻고 싶을 것이다. 거창하게 자신의 삶도 늘어다 놓고 그래서 이 책으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나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도 아직 어리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렇기에.
단지, 나는 내 삶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아름다워 하면 된다. 그가 그의 얄미운 장미가 그만의 소중한 장미였던 것처럼, 내 삶도 결국 어린 나만의 소중한 장미로 의미가 있을 것이니.
맨 처음 한 말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꽤 많은 사람이 저렇게 도입했을 것이고, 저 고뇌는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책과 이야기 가운데,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소중하고, 그래서 이 작은 친구는 내게 소중하고, 내
글은 수 많은 비슷한 글 속에서 소중하고, 내 삶은 수십만의 같은 장미 속에서 특별하지 않더라도 아름답다. 그뿐이면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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