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앞으로는 주인장과 단골의 관계에서 편하게 이뤄지는 대화의 형식을 가져오고 있음을 공지합니다.
내가 추리나 미스터리, 스릴러 쪽의 소설을 꽤 좋아한다고 말했었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수 싸움은 언제나 가장 재미있어, 그게 머리로 인한 것이든지, 본능에 의한 것이든지 말이야. 언제든지 그런 작품은 관심 가지고 보는 편이고.
오늘 자네한테 낼 작품은 '하카타 돈코츠 라멘즈'야. 요즈음 일본은 비단 라이트노벨 뿐 아니라 많은 대중소설이 일러스트를 차용하고 있는데, 이 소설도 그런 소설 중 하나였나 봐. 일러스트가 일단 눈을 뺏기에 적합하더라고. 이름도 그랬고. 하카타는 후쿠오카시의 이명이고, 돈코츠 라멘-그 일본식 라멘을 생각하면 바로 생각나는 흰 국물의 돼지 육수를 이용한 짭짤한 라멘-은 그냥 돈코츠 라멘이야. 굳이 후쿠오카가 돈코츠 라멘으로 유명한가? 하고 궁금증이 들어서 찾아보니, 과연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후쿠오카의 3대 지역 대표 요리더군. 다른 두 개는 모츠나베(곱창 전골), 미즈타키(닭 전골)이고 특산물은 명란젓이라고 하고. 꼭 먹어보고 싶은 기분이 드네. 말하고 있으니 말이야.
여하튼, 결국 제목은 지역명물에 복수형일 뿐인, 너무 생뚱맞으면서도 당당히 소개는 스릴러로 되어있고, 킬러니, 킬러를 죽이는 킬러니 하니 어찌 안 볼 수가 있겠어? 궁금한 건 내가 직접 맛봐야지. 난 그냥 특이하네 하고 넘기는 성격은 못되거든.
작가인 키사키 치아키는 사실상 이 작품으로 전격소설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본격적으로 데뷔한 신인 작가인 것 같아. 대중소설에 신인작가니, 지금껏 내가 내왔던 명작들마냥 뭔가 크게 문장에서 맛을 느낄 부분이 적은 건 사실이야.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을 위한 준비는 되어있어서 읽기에는 무척 편한 문체야. 일본 대중문학에서 요즘 눈에 띄게 나타나는 괜한 철학적인 어투라든지, 중2병적인 문체라든지-중2병 자체를 나쁘게 보지는 않아. 그게 문체로 나타나니까 문제지-하여간 그런 건 거의 없고, 정말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야. 나는 버거킹에서 새로 나온 와퍼를 먹으면서 다 읽어버렸으니까 분량에 비해서 훨씬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는 책이니, 위대한 개츠비처럼 문장 자체가 어려운 책을 읽는데 버거우면 일단 이것부터 읽으면서 환기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
내용도 엄청나게 좋은 플롯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야. 많은 기대를 가지고 보라고는 하기 힘들지. 하지만 신인의 데뷔작으로는 훌륭한 플롯과 참신한 설정, 일러스트로 얻게 되는 좋은 캐릭터성으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깊은 맛까진 아니더라도 개성 있고 어디 가서 말해도 괜찮은 맛. 그런 느낌이겠지.
내용은 당연히 제목대로 하카타에서 진행돼. 그런 만큼 명란젓이라든지, 돈코츠 라면도 꽤 나오고, 후쿠오카의 연고 야구팀인 호크스도 나오는 등 후쿠오카에 대해서 예상치 못하게 많은 면을 보게 되는 듯 하지. 이런 점이 책을 읽는 기쁨이기도 한데 자네도 알지?
후쿠오카시가 있는 후쿠오카 현이 여러모로 유명한 게 있는 곳이지만, 나쁜 쪽으로도 유명한 게 있어. 바로 야쿠자인데, 6개의 야쿠자 집단이 있고, 공원에서 수류탄이 적발되는 등, 지하세력들이 생각보다 더 활달한 곳이야. 작가는 이 점에 눈을 두고 극대화시킨 듯해.
이 소설에서 하카타-후쿠오카-시는 시장부터가 야쿠자와 엮여 그들의 힘을 얻고 있고, 킬러가 도시의 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막장도시로 그려지지. 그리고 그만큼이나 막장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 탐정도 있고, 복수대행자도 있는 그런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기본적으로 스릴러라 많은 줄거리를 말해주긴 힘들지만-자그마한 것도 소설의 재미를 떨어트리는데 큰 영향을 주는 장르라-쉽게 읽을 수 있다고는 말했지만 그렇게 단편적으로 관계가 얽히고 플롯이 전개되는 방식은 아니야. 이야기의 전체 흐름은 1주일도 안될만큼 짧지만, 그 안에서 6개의 다른 인간군상이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가 등에 칼을 놓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치밀하게 전개돼. 이 면은 신인이라고 하기 힘들만큼 훌륭한 편이라 작가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야.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복수. 그와 동시에 일본 특유의 온(恩) 개념이 섞여있어. 그를 잘 나타내는게 복수대행자인 지로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일부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복수도 은혜도 그렇게 칼같이 지키는, 나중에 불리는 '하카타 돈코츠 라멘즈'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지키기도 힘들만큼 많은 악행을 저지른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가 중심적 주제야.
사실 주제 자체는 아쉬움이 많기는 해. 내가 주제라는 걸 좀 많이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야 물고 뜯고, 다시 한 번 비틀어 생각하는 데에서도 재미가 느껴지는 건데, 이들의 주제는 복수, 그리고 은혜. 받은만큼 다시 돌려주는 것들. 그리고 너무 많은 악행을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는 것들. 결국에는 다크 히어로물이 되는 건데-마블의 퍼니셔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지-이런 주제를 담고 있는 다크 히어로물은 그만큼 이면에 무거운 책임의식을 가지게 되지. 결국 자기 자신들도 범죄자가 되면서 가장 심한 악을 처리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 갈등들이 작품 별로 다르고 그게 그 작품의 개성이 되고, 캐릭터의 매력이 되는 건데, 이 작품은 그 면에서는 매우 부족해. 물론 책임의식은 다들 가지고 있지. 그걸 아예 표현하지 않은 건 아니야. 하지만 너무 짧고 단편적이지.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아. 특히 주역들의 경우가. 오히려 반동인물들이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며 갈등하지. 이런 면이 참 아쉬운 거야. 소설인 만큼 내면적인 묘사를 챙기면서도 스릴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나치게 영상매체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들었어.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우리가 가슴 어딘가에 두고 있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악인들이 잘 사는 모습에 대한 불만을 잡아서 치밀하고 시원하게 터트려주는 건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는 건 맞아. 이렇게라도 대리만족을 할 수 있는 거고.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어서 아쉬운 점이 크게 느껴지는 거지. 분명히 재미있고 시원시원하게 볼 수 있을 거야.
참. 일러스트를 차용한 소설들이 대개 그 일러스트에 묶여버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소설은 그 면에 대해서는 정말로 재미있게 만들어버렸어. 이건 정말 봐야 아는 건데. 일러스트로 독자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할 수 있으려나.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사실 일러스트가 없었으면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들을 일러스트로 속여버리는 솜씨는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짠 듯이 잘 맞아서 좋았어. 마지막 반전도 스릴을 끝까지 놓지 않게 해주고.
책을 어렵게 읽을 필요만은 없는 게 맞아. 굳이 명작만 읽을 필요도 없고. 책이니 만큼 자신이 만들고 싶은 만큼 상상해서 가볍게 즐기는 것도 정말 좋아.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디 가서 말은 할 수 있는 맛을 가지고 있지. 한 번 머리를 비우고 그저 문장을 따라가 보는 건 어때. 이 '하카타 돈코츠 라멘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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