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라이온 킹을 봐왔을 때부터. 디즈니는 내 영화인생의 6~7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
글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내게 디즈니는 어렸을 때부터 그저 별 일 없는 행복한 이야기만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 아름답고 귀여운 그 이면에 언제나 가시마냥 돋아나 있는, 아이들은 모르고 지나갈 수 있지만, 민감하게 반응하면 어느 순간 푹 찔려서 돌아보게 되고 계속 생각하게 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던 것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즈니의 이런 행보는 조금 더 눈에 띄고 시도하지 않았던 쪽으로 향해가고 있었어. '겨울왕국(Frozen)' 도 그런 시도 중 하나였고, 무척이나 성공적이었지. 그리고 여기, 이 행보를 이어가는, 겨울왕국보다 더 가시를 많이 세워두고 있는 작품이 있어.
먼저 평가하고 들어가야겠네. 나는 이 작품을, 지금껏 나왔던 디즈니 작품 중 가장 날카롭고, 씁쓸하며, 아름답고, 스토리텔링이 탁월하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이 처음 들어갈 때는 똑같았을 거야. 나도 그랬고. 사전준비 없이 단순히 포스터 보고, 디즈니인거 확인한 첫 인상은 '귀여운 동물들이 나오는 코미디'라고 생각했어. 물론 완전 틀린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만큼 디즈니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박혀있었던 거겠지.
그리고 그런 나에게 처음 보여진 건 프로즌 때의 영상보다 더 확실하게 발전한 그래픽이었어. 빙하지대는 프로즌 때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했고, 정글지대, 도회지, 사막지대는 다 너무나도 정교하면서 아름다워서 주인공인 주디 홉스의 경탄을 담은 얼굴과 같아졌어.
이런 아름다운 그래픽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되어가. 사실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어려운 동물인데, 엘사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인지 말하던 기사들이 비교되기도 하더라고. 아주 세밀한 털의 묘사부터, 정말 동물들의 특징을 보여주고 싶을 때만 잠시 보여주는 게 아닌 전체적으로 언제든 보여줘서 이게 연출이 아닌 원래 저 캐릭터, 저 동물의 특징이라는걸 계속해서 각인시키지. 예를 들면, 주인공인 토끼, '주디 홉스'는 여느 토끼들이 그렇듯 계속해서 코를 찡긋대며, 짜증날 때 자연스레 발을 구르고, 긴장되거나 놀랐을 때 귀가 축 늘어지는 등, 토끼들이 지닌 고유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한 순간도 빼먹지 않고 담아냈어.
하지만 이런 세세함에 감탄하면서 '그럼 얼마나 귀여운 이야기를 하나 볼까?'라고 생각한 내 상상은 5분도 안되어 깨져버렸지. 아니 사실, 주디 홉스의 어릴 적 학예회 장면으로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뭔가 내가 예상했던 그런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지.
이 영화는, 무척 귀여운 동물들이 나와. 인간은 한 명도 없지. 그리고 그 동물들은 인간이 정해놓았던,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던 편견 그 대로를 자신들에게 적용하면서 살고 있어. 토끼는 겁이 많다. 여우는 믿을 수 없다. 코끼리는 똑똑하다. 처럼 수 없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평화롭고 귀엽고, 피식자와 포식자가 같이 평화로이 사는 그런 환상적인 곳이지. 주디 홉스가 얘기했던 것처럼 '무엇이든지 가능한 곳'으로 보일만해. 하지만 그들은 크게는 피식자와 포식자라는 종의 경계에서, 작게는 토끼라서, 여우라서, 몸이 작아서, 몸이 커서 등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편견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며 살고 있어. 그 가운데 경관인 '작은 피식자 토끼' 주디 홉스와, 사기꾼인 '교활한 포식자 여우' 닉 와일드는 서로가 엉키는 가운데 실종 사건 하나를 풀어가게 되지.
내가 작은 토끼와 교활한 여우에 강조를 한 건 그 것이 그들의 삶 전체를 옭아매고 좌절시키고, 심지어 그들마저도 그 트라우마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이야. 정작 그들은 작품 안에서 작은 토끼도, 교활한 여우도 아닌 그저 '주토피아의 시민'일 뿐인데 말이야.
왜 굳이 이 얘기를 동물들의 이야기로 했을까? 물론, 그래야 이 스토리의 잔인한 면에 메시지가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 거야. 흑인이란 이유로 얼굴에 하얀 먹물 칠을 한다던 지 노예 마냥 나오게 한다던 지, 그런 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올 테고, 연출에 따라서는 가학적인 면만 눈에 띄게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수 도 있지. 그에 비하면 여우에게 단지 '포식자'라는 이유로 재갈을 씌우는 건 참을 수 있는 만큼의 잔인한 행동일 테니까.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어린이에게 잘 어필하기 위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주토피아의 주제는 계속해서 조금씩 보여주었듯이, 차별은 절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혐오로 인한 트라우마는 또 다른 이를 차별하게 되며 결국 사회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드는 악순환만을 가져오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그리고 역시 디즈니니까, 해피엔딩이지. 결국 많은 차별로 인한 사건들은 꼬리를 물고 커지고 주디와 닉은 상처받고 방황하지만, 다시 결합하고 굳건해져 차별은 전혀 정당한 것이 아님을 알려내는 해피엔딩이야. 정말 바람직하고, 당연히 우리도 배워야 하는 삶의 자세라고 생각해. 지금껏 디즈니가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차별에 대한 진지하고 리얼한 묘사는 정말 씁쓸하게 만들고, 당연히 고쳐야 함을 알게 해주지. 이 영화는 정말 뛰어나게 우리를 설득했어.
그러나 그러고 나오는 도중 머리를 스치는 등장인물을 동물로 한 하나의 이유가 생각났어. '금수보다 못한'. 흉악범죄자에게나 쓰일만한 말이지. 개보다 못하다느니, 돼지보다 못하다던가, 돌고래에게 사과하라느니, 정말 인간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많이 쓰는 말이지. 하지만 나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한 켠에 그런 불안감이 생기더라. '나도 결국 토끼나 여우만도 못한, 금수보다 못한 인간으로 살아가지 않았나?'라는 물음이 머리를 맴돌더라고.
그래, 이 영화는 그저 차별이 나쁘다가 아닌, '네가 차별을 하지 않을거라 생각하지 말라', '저 동물과 다를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디가 트라우마로 인해서 차별의 악순환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그래서 끊으라고 하는 거고. 하지만, 주디가 '자신은 이 일을 해결한, 차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닉에게 가장 상처가 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말이 들리는 모든 범위의 사람들에게 차별의 말을 내뱉어. 무서운 일이지.
우리는 이런 날카로운 걸 보면서 가끔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걸 놓치고는 해. 아니 정말 아닐 수 도 있지. 표면적으로는. 자네와 내가 분명 흑인을 비하한다던가, 전라도인, 경상도인을 나누고 도매금으로 넘겨대고, 여자와 남자를 나눠대며 혐오를 가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진짜야.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게는 어떤 특권의식이 생기더라고. '이걸 봤음에도 찔리지 않은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 '나는 저들보다 나은 인간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그건 과연 하나의 차별이 아닐까? 내가 그 편견을 가지고 누군가와 대화를 했는데 그가 약간의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가진 편견으로 그를 재단하고 처벌하겠지. 우월한 위치에서 말이야. 그런데 그건 결국 또 다른 차별일 뿐이지. 결국 나도 '금수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거야.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경각심을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 분명 차별은 잘못되었어.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는 그런 차별과 혐오가 넘쳐나지. 일베니, 메갈이니, 여혐이니, 남혐이니, 전라도니, 경상도니, 진보니, 보수니......모두 자신의 말만 내세우고 상대는 틀린것으로 재단해버리고 자신의 편견안에 같혀서 그 안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이내 혐오감을 가져버리는 그런 사회야. 그런 이들에게 당연히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싶어. 하지만 나는 그런 이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이영화가 주의를 준다고 생각해. 특권의식, 선민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과 발을 맞춰 걸으며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편견을 그들이 다치지 않게 깨어주는게 편견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 또 다른 편견을 가진 '우월한 짐승'이 되지 않는 법일 거야. 주디가 닉에게 다시 찾아가 눈물로 사과하고, 닉을 진정으로 이해하려 한 그 모습처럼.
그리고 차별을 제하고 봤을 때 좋은 점을 하나 소개할게. 나 또한 극장을 나서면서 전혀 다른 종의 동물들이 결혼하는 주토피아에 대해서 살짝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로 치부했지. 하지만 제작자의 인터뷰 중 한 곳을 보면 이런 말이 있어. '피식자와 포식자가 결혼해서 낳은 아이는 어떨 거냐고요? 멋지네요.'. 동물이 살아 움직이지 않으니 물론 현실에서는 당연히 없을 일이지만, 차별을 버리고 세상을 본다는 건 이런 것일 거야. 이건 '위대한 토끼 경관' 주디 홉스가 계속해서 얘기하는 대사와 일맥상통하지. '주토피아는 뭐든지 가능하니까요!'.
여전히 극장에서 개봉 중이니, 세세한 스토리까지 빠져드는 건 당신에게 맡길게. 이건 자네가 내 카페를 계속 찾아와봤으면 알 거야. 나는 당신에게 작품을 내주고, 소개해주고, 추천해주는 거야. 그 후 마시는 건 자네의 몫이지. 특히나 이렇게 극장에 지금 걸려있는 영화는 더 그러니, 꼭 한 번 봤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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