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가박스를 좋아하는 편이야. 보통의 미국 애니메이션 뿐이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독립영화도 자주, 짧은 시간이라도 개봉해주기 때문이지. 헐리우드나, 충무로, 디즈니/픽사 식이 아닌 신선한 접근은 언제나 나를 뛰게 하는 것 같아.
‘죽은자의 제국’. 1달 전쯤 본 이 영화는 우리 세상을 극단적으로 썩은 부분을 베어서 보여주는 듯한 영화야.
원작인 소설은 이토 케이카쿠가 썼는데, 2년 동안 3편의 장편 소설과, 예닐곱 편의 단편을 쓴, 하지만 그의 장편 작품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일본 SF소설계의 크고 짧은 족적을 남긴 사람이야. 이 작품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30페이지 분량의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친구인 토우가 집필한 작품으로 공식적인 이토 케이카쿠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
그리고 작년, 그의 작품들 중 장편인 3개의 작품 중 게임 '메탈기어 솔리드 4'의 공식소설을 제외한 데뷔작 '학살기관', 유작'하모니', 그리고 그로서는 미완작인 '죽은 자의 제국' 이 셋을 애니메이션화하는 프로젝트를 후지테레비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방송시간대 '노이타미나'에서 발표했어. 그리고 이 중 '죽은 자의 제국'이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작품 중 가장 먼저 개봉되었어.
제작사는 WIT STUDIO로 프로덕션 I.G에서 갈라져 나온,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진격의 거인' 으로 일반 대중에게도 눈도장을 찍은 신흥 제작사야. '진격의 거인'에서도 원작을 뛰어넘는 연출과 작화를 보여준 제작사지.
하는 김에 계속해서 먼저 작품의 겉 이야기를 해보자. 스토리와 연출을 빼고 말이야. 먼저 애니메이션의 작화는 무척이나 좋았어. 2D와 3D를 아름답게 사용하며 움직이는 캐릭터만 빼면 한 폭의 풍경화로도 손색이 없을 배경 작화와, 미형의 캐릭터로 유명했던 애니메이션 '길티크라운'의 원안 일러스트레이터 'redjuice'의 캐릭터는 각각이 충분한 매력을 가졌고, 너무 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칙칙하고 수수하지도 않은 캐릭터들의 개성을 잘 살려냈어.
음악은 캐릭터 원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어. 전체적으로 스팀펑크적 색채를 가진 음울한 오케스트라 편성의 곡에서, 중간마다 삐걱대듯 재즈로 전환되며 박자 위를 비틀거리는 OST는 어두울 뿐만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지. 주제곡은 프로젝트 전체의 주제곡을 맡은 egoist의 'door'였는데, 이 아티스트가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egoist의 노래를 극장에서 들을 수 있으면 그걸로 값어치 하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간 거였지만, 내 생각을 뛰어넘게 작품과 아름답게 맞는 음악이었어. 이 이유는 뒤에도 연출 면을 얘기하면서 후술하도록 할게.
자 그럼 스토리와 연출 얘기를 해보자. 사실, 스토리 전개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어. 크게만 봐도 주인공인 왓슨 일행의 입장, 영국 월싱엄의 수장 M의 입장,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발명품, 최초의 죽은 자 'the one'(흔히들 프랑켄슈타인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그)의 입장, 러시아의 카라마조프의 입장으로 4개의 각자의 입장이 치밀하게 얽혀있는데, 분명 대사나 장면으로는 충분히 이 입장들이 설명이 되었지만, 그 흐름을 끊는 몇 번의 참아주기에는 너무 지루한, 대사도 없이 여정만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너무 한 순간에 스토리를 몰아치면서 동시에 눈을 현혹시키는 장면이 섞여 나도 무척이나 힘들었어.
그런데다가 더 자세히 보자면, 주인공 왓슨 일행의 입장도 각각 왓슨과 프라이데이, 버나비, 아달리가 모두 다르고, 영국의 입장과 M의 입장, 러시아와 카라마조프의 입장, 미국과 에디슨의 입장이 다 다른 방향을 향해 흘러가며 섞여있어서 이들을 다 이해하기에는 한 번의 감상으로는 무리인 감이 있었지, 인물들의 각자의 철학이 뛰어난 건 좋지만 너무 각자 다른 방향을 보게 되면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껏 어질러진 방을 보는 느낌이니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고, 작품의 이해를 포기하게도 하지. 이런 점은 분명 치명적인 단점이고, 좋은 평을 얻기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꽤 직설적이고, 스토리를 다 이해 못하더라도 알 수 있게 만들어 살아가는 동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충분히 특식으로 영양가 있는 영화라고 하고 싶어.
'죽은 자의 제국'이라는 이름과, 한창 제국주의를 향해가던 영국과 일본의 모습이 나왔다고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다라고 바로 선글라스를 쓰고 보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더라고. 하지만 그 때로 이야기를 설정한 것, 그리고 제목이 나타내는 것은, 사람이 가장 죽은 자나 다름 없이 소모되던 시대, 과학의 우열, 인종의 우열, 그리고 그것을 아무런 의문 없이 맹종하며,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체에게 영혼을 가지는 것조차 포기하게 만들던 그 당시 제국주의를 ‘죽은 자’라는 소재로 대표해서 그들의 방식을 냉소하면서 현대의 우리에게 물어보는 거지. 이렇게 말이야.
'너는 영혼-때로는 신념, 때로는 의지, 때로는 비전으로 불리는 우리 안에 살아있는 그것-이 있는가'
'어쩌면 죽은 자의 제국의 신민으로 소모되고, 그저 동화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런 물음을 말이지. 이런 물음은 버나비가 툭 던지며 말했던, 하지만 무척이나 의미 깊은 대사가 대변하기도 해.
'이곳부터 산 자 보다는 죽은 자가 많아'.
그런데 어쩌면 저 물음에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그 당시만큼이나 더 기계적이고 영혼을 잃어가는 지금의 시대는 저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가장 인기 있는 직종은 단순히 ‘안정적이어서’ 라는 이유로 공무원이 되고, 취업사관학교가 되어 버린 대학교는 회사에 필요한 소비재로 사람을 찍어내고 영혼을 가질 시간도 주지 않고 내보내지.
어쩌면, 말을 떼고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유치원의 그 아이들부터 대학의 학생들까지 ‘다른 이들에게 뒤쳐져서는 안돼’ 라는 구호 하나를 족쇄처럼 채워버리는 것 같아. 그렇기에 지금 우리 사회는 그걸 채워준 사회의 기성세대도, 말로는 미래라고 하는 젊은이들도 타오르는 영혼을 가질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로 자라오고 있는 거 같아. 마치 저 작품의 죽은 자들처럼 말이야
오늘도 ‘다른 이들에 뒤쳐져서는 안돼’라는 일념으로 남들이 하니까 하는 외국어교재를 펴며, 같은 자기계발서를 펴는 사람이 자네일지도 몰라. 그걸로 자네를 탓하는 건 아니야.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왔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어째서인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예술인 것 같아. 그러니까, 한 번쯤 이 영화를, 아니면 원작인 책을 읽고 천천히 생각하는 것이 진짜 자네의 ‘영혼’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자네의 행복을 찾아주고 정말로 ‘살아 있는 자’ 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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