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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자의 제국-당신은 죽은자인가

현대의 도시를 잠시 거리에 앉아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존재해 보일 때가 나에게는 가끔 있었어.




죽은 자의 제국은 아주 날카롭고 극단적으로 이 문제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묻는 작품이야

원작인 소설은 이토 케이카쿠가 썼는데, 2년 동안 3편의 장편 소설과, 예닐곱 편의 단편을 쓴, 하지만 그의 장편 작품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일본 SF소설계의 크고 짧은 족적을 남긴 사람이야. 이 작품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30페이지 분량의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친구인 토우가 집필한 작품으로 공식적인 이토 케이카쿠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

그리고 작년, 그의 작품들 중 장편인 3개의 작품 중 게임 '메탈기어 솔리드 4'의 공식소설을 제외한 데뷔작 '학살기관', 유작 '하모니', 그리고 그로서는 미완작인 '죽은 자의 제국' 이 셋을 애니메이션화하는 프로젝트를 후지테레비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방송시간대 '노이타미나'에서 발표했어. 그리고 이 중 '죽은 자의 제국'이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작품 중 가장 먼저 개봉되었어

제작사는 WIT STUDIO로 프로덕션 I.G에서 갈라져 나온,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진격의 거인' 으로 두각을 나타낸 신흥 제작사야. '진격의 거인'에서도 원작을 뛰어넘는 연출과 작화를 보여준 제작사지

하는 김에 계속해서 먼저 작품의 겉 이야기를 해보자. 스토리와 연출을 빼고 말이야. 먼저 애니메이션의 작화는 무척이나 좋았어. 2D 3D를 아름답게 사용하며 움직이는 캐릭터만 빼면 한 폭의 풍경화로도 손색이 없을 배경 작화와, 미형의 캐릭터로 유명했던 애니메이션 '길티크라운'의 원안 일러스트레이터 'redjuice'의 캐릭터는 각각이 충분의 매력을 가졌고, 너무 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칙칙하고 수수하지도 않은 캐릭터들의 개성을 잘 살려냈어.

음악 또한 합격점이었어. 전체적으로 스팀펑크적 색채를 가지면서도 음울하고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지. 주제곡은 프로젝트 전체의 주제곡을 맡은 egoist 'door'였는데, 이 아티스트가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egoist의 노래를 극장에서 들을 수 있으면 그걸로 값어치 하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간 거였지만, 내 생각을 뛰어넘게 작품과 아름답게 맞는 음악이었어. 이 이유는 뒤에도 연출 면을 얘기하면서 후술할게.

자 그럼 스토리와 연출 얘기를 해보자. 사실, 스토리 전개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어. 크게만 봐도 주인공인 왓슨 일행의 입장, 영국 월싱엄의 수장 M의 입장,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발명품, 최초의 죽은 자 'the one'(흔히들 프랑켄슈타인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그)의 입장, 러시아의 카라마조프의 입장으로 4개의 각자의 입장이 치밀하게 얽혀있는데, 분명 대사나 장면으로는 충분히 이 입장들이 설명이 되었지만, 그 흐름을 끊는 몇 번의 루즈한 장면, 그리고 너무 한 순간에 몰아치는 빠른 장면이 섞여 나도 무척이나 힘들었어

그런데다가 더 자세히 보자면, 주인공 왓슨 일행의 입장도 각각 왓슨과 프라이데이, 버나비, 아달리가 모두 다르고, 영국의 입장과 M의 입장, 러시아와 카라마조프의 입장, 미국과 에디슨의 입장이 다 다른 방향을 향해 흘러가며 섞여있어서 이들을 다 이해하기에는 한 번의 감상으로는 무리인 감이 있었지, 인물들의 각자의 철학이 뛰어난 건 좋지만 너무 각자 다른 방향을 보게 되면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한껏 어질러진 방을 보는 느낌이니까,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고, 작품의 이해를 포기하게도 하지. 이런 점은 분명 치명적인 단점이고, 좋은 평을 얻기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꽤 직설적으로 스토리를 다 이해 못하더라도 알 수 있게 만든 면은 칭찬해주고 싶고, 분명 우리에게 가치가 있고 살아가는 동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임은 틀림없어.

평점으로는 5점 만점이면 3.5점정도를 주고 싶어. 스토리의 심각하게 복잡한 구성을 떠나서도, 큰 흐름만 봐도 분명 우리에게 던져 주는 물음이 있다고 난 생각해. 물론, 작화와 음악만으로도 분명히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지만, 계속해서 이해하려 하고,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읽는다면 더 가치 있는 작품이 될 거야.

'죽은 자의 제국'이라는 이름과, 한창 제국주의를 향해가던 영국과 일본의 모습이 나왔다고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다 라고 바로 선글라스를 쓰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 때로 이야기를 설정한 것, 그리고 제목이 나타내는 것은, 사람이 가장 죽은 자나 다름 없이 소모되던 시대, 과학의 우열, 인종의 우열을 따지며 살아가는 그 당시 제국주의의 몰 인간성을 죽은 자로 빗대며 현대의 우리에게 물어보는 거지

'너는 영혼-때로는 신념, 때로는 의지, 때로는 비전으로 불리는 우리 안에 살아있는 그것-이 있는가'

'어쩌면 죽은 자의 제국의 신민으로 소모되고, 그저 동화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런 물음을 말이지. 이런 물음은 버나비가 툭 던지며 말했던, 하지만 무척이나 의미 깊은 대사가 대변하기도 해.

'이곳부터 산 자 보다는 죽은 자가 많아'.

어쩌면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그 당시보다 더 기계적이고 영혼을 잃어가는 시대인 지금. 우리는 죽은 자로 살아가지는 않는지, 한 번 보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p.s. 그건 그렇고 노이타미나는 정말 그 놈의 다이아처럼 생긴 돌 묘사를 좋아해..... 보고 있자니 길티크라운이라는 나쁜 의미로 전설인 애니메이션이 생각나서 몸이 떨리더라...... 물론 이쪽은 스토리가 부재하던 건 아니니까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 이 이후로는 스포일러를 잔뜩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

죽은 자의 제국
국내도서
저자 : 이토 케이카쿠(Project Ito),엔조 도(Enjoe Toh) / 김수현역
출판 : 민음사 20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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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후로는 스포일러를 잔뜩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



. 어쩌면 자네가 작품을 보고 왔을지도 몰라. 분명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도 많겠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주인장이 있는 거니까. 자네 앞에 놓인 작품이 마냥 커피원두 같다면, 내가 지금부터 정제해서, 우유까지 담아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줄게. 다시 한 번 음미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 작품의 치명적인 단점이자 다른 장점을 다 까먹는 것이 바로 앞서 말했듯이 너무 많은 등장인물의 입장인데, 이 중 중요한 입장은 넷의 입장이야. 먼저 주인공인 왓슨과 프라이데이의 입장, 러시아의 카라마조프와 니콜라이의 입장, 더 원의 입장과, M의 입장이지

계속해서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과연 인간의 영혼이 어디 있는 게 맞는지, 과연 죽은 자가 더 옳은지 산 자가 더 옳은 지라는 물음이라는 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가자고

먼저 가장 이해하기 쉬운 M의 입장을 보자고. 그는 무척이나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너무 많은 욕망을 갖게 되고, 그 때문에 결국 인류 전체를 봐서도 악순환만 일으키고 결국 파멸하게 된다는 거지. 그렇기에 더 순수한 인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인류는 '영혼이 제거된' 인류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1차원적으로 '죽은 자의 제국' 이 가장 아름다운 형태라고 긍정하고 있지. 연출도 그렇고 당연히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겠지만, 작품 전체가 묻는 물음으로 생각하자면, 인간에게 영혼-비전, 의지, 신념일 수 있는 그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골치 아파지고, 그게 단순히 잘 살기에 걸림돌이 될 거 같으니까 그런 생각 없이 살기로 생각한, 소위 '나는 꿈 같은 거 없어,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이들을 얘기하는 거야. 꿈이 아닐 수도 있어, 의지일 수도, 신념일 수도 있어. 하여간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는 사람을 애기하는가라고 볼 수 있지.

그 다음은 the one(이하 더 원)의 입장을 보자. the one은 분명 영혼을 가진 첫 죽은 자야.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왔듯이, 그의 전 행보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인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쳐의 일대기와 거의 같아인간에 손에서 다시 살아났으면서도, 곧바로 버려졌고, 사랑하는 신부조차 만들어지자마자 영혼이 깃든 시체는 만들어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다시 파괴되는 것을 보고 인간을 증오하게 된 그는 작품 내에서 M의 머리 위에서 노는 라스트 보스로 활약해. 왓슨 일행과 M을 그야말로 주무르면서 가지고 놀지. (너무 머리가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마. 원작의 크리쳐는 가장 아름다운 부위로만 만들어진 시체로, 그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자의 뇌를 써서 1년만에 여타의 지성인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지. 누더기 같고 머리에 나사를 박은 모습으로 어버버 거리는 모습은 전혀 아니라고.). 그의 목표는 자신을 배척한 산 자를 파멸시키고빅터가 파괴한 자신의 신부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야.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전개 상에서 아쉬운 부분이야. 본디 말하고자 하는 건 이랬을 거야. 더 원은 온갖 사람들의 부분이 모여서 만들어진 죽은 자야. 그리고 그가 찾는 신부도 그랬지. 더 원이 가지고 있는 영혼과, 그의 목적인 여인은 이미 처음부터 비틀려 있는, 무척 그럴듯한 영혼이지만 비정상적이고 이루어지기 힘든 모습이라는 거야. 세간에 가장 많은 모습이기도 하지. 나는 꿈이 있다, 이상이 있다, 신념이 있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듣고 본 것 중 가장 좋은 것만 기워서 자신의 영혼으로 생각하는 것. 분명 동기는 될 테고, 영혼이 없는 것이 낫다 말하는 M보다는 나은 모습이지. 하지만 그런 영혼을 가진 더 원이 온갖 산 자의 영혼을 물질화시켜(이 부분이 마치 길티크라운에서 자주 나오는 결정 모양으로 표현되지.) 자신의 신부를 다시 만들려 하던 그 목적 또한, 진정 살아가는 목적으로 바른 것이 아니라는 거지. 자신만의 영혼을 찾고, 자신만의 목적을 찾는 것이 아닌, 가장 좋아 보이는 것들을 기워 영혼을 만들고 다른 이들이 이루는 모습을 좇아 살아가는 모습. 그 것은 우리 세상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면서 동시에 가장 안쓰러운 이들이지. 산 자와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더할 나위 없이 공허한, 공무원, 대기업 등을 자신의 뚜렷한 목표가 없이 그저 언제부턴가 들어왔으니 어느 샌가 자신의 목표가 된 사람들.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대로라면, 진정한 영혼이 없는 사람들인 거지

분명 가장 많은 이들이 이런 부류인 만큼, 이 것이 얼마나 비틀려있고, 허무한 것인지 알려주어야 했던 부분인데, 프랑켄슈타인을 보지 않은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 그저 빠르게 전개하다 갑자기 여인을 만들겠다 설치다 파괴되는 더 원의 모습은 오히려 보는 이가 허무해지지. 갑자기 무슨 여인을 만들겠다고 난리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과언이 아니니까정말 안타까운 부분이야.

, 그러면 카라마조프의 입장을 보자. 그는 빅터의 수기를 보고는 죽은 자들을 데리고 은거해버리고, 왓슨 일행에게 파괴를 부탁하며 자신이 죽은 자가 되어버리지. 이 부분은 더 원에 비해서 매우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보이는 편이야. 연출 또한 좋았고, 카라마조프는 분명 영혼이 있는 사람이었어.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확실했던 사람이었지. 하지만 그가 빅터의 수기만 보고(수기에는 산 자에게 인공영체를 주입하라고 써 있었다지. 하지만 잘 못 해석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거 같아.) 죽은 자의 영혼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 하다며 좌절해버리고, 죽은 자에게 영혼을 돌려내는 일을 하는 동안 희생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과 같이 움직인 니콜라이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죽은 자로 만들어버리지. (이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길과 같다고 보여지는데,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보고 절망하여 수기만을 남긴 채 사라진 그의 모습은, 작품에서 러시아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 불리는 카라마조프와 거의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고, 더 원이 부정하는 인간은 빅터나 카라마조프 같은 인간임을 알 수 있어.)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그저 노동력으로 쓰는 일은 분명 잘못되었지. 그 것을 깨닫는 건 좋은 일이야. 실제로 카라마조프는 죽은 자에게 영혼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연구를 하던 것이었고.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알게 된 하나의 절망적인 요인에 눈을 멀게 되었어. 모든 목적이 상실된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은, 그리고 그 목적 때문에 희생된 것들을 짊어지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인 나머지 자기 스스로 죽은 자가 되었지. 우리 세상에서 보자면, 변질된 정치인들이 있을 거야. 누구라고 말하는 건 여기선 과한 거 같아서 실례를 들지는 않겠지만, 바른 이상을 가진 사람이 어느 순간 보면 변질되어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이들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봤을 거야. 그들은 분명 계속 바른 이상을 추구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세상에서 겪게 된 어떤 절망적이 요인에 눈을 멀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속물이 된 이들. 이상을 좇다 부딪힌 그 곳에 주저 앉아 더 이상의 탐구조차 멈춰버린 이들. 이 작품은 이들도 죽은 자들이나 다름없다 얘기하고 있지

그럼 주인공인 왓슨과 프라이데이는 어떨까? 그들은 죽은 자를 단순히 영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데 찬성하지 않았어. 그들은 죽은 자에게 그들의 영혼을 다시 찾아내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도 그 일을 이루려고 하지. 그 신념은 그저 수기가 원래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하며 목표는 헛된 것이라며 파괴만을 말하는 카라마조프의 부탁을 끝까지 듣지 않았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챙겨서 자신에게 실험하지. 영혼이 돌아온 듯 보이지만 고통스러워하고 짐승에 가까워 보이는 프라이데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네 눈에 무엇이 보이냐' 면서 총알이 몸을 뚫어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어보며 영혼을 확인하는 왓슨은 한 번도 죽은 자가 아니었고, 이미 죽은 자였던 프라이데이에게 결국 그의 영혼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하고, 자신 또한 자신의 실험에서 돌아와 산 자가 되지. 그는 앞선 세 명의 입장으로 대변되는 죽은 자의 제국에 속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어. 그게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 것은 작품으로도 확실했지. 하지만 영혼이 필요 없다 하는 사람, 남들의 영혼으로 충분하다는 사람, 불가능하니 영혼을 버리라 하는 사람들을 모두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영혼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고, 자신의 영혼이 필요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영혼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주제가인 egoist 'door'는 왓슨이 계속해서 말하는 '네 눈에 뭐가 보이냐'와 일맥상통하며 작품을 관통하는 곡이지.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들 많이 하고, 작품에서도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는 눈이 살았나 죽었나이니 만큼. 관객들이 되묻는 '그러면 나는 지금 살아있는 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마지막 답은 노래와 왓슨의 말인 것 같아. '네 눈에 뭐가 보이나'. 진정 자신만의 영혼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겠지.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목표가 말이야.

영화는 산 자가 의미 있다고 말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해. 꿈이던, 의지던, 신념이던, 자신의 소중한 것이던, 무엇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하는 인간이겠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도 일맥상통할 수도 있겠네. 오늘 밤은 자네의 눈에 뭐가 보이는지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밤이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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