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지. 그리고 그 가운데 어느 한 곳의 입장에 손을 들어야 할 시간이 오지. 여기 그 흔한 인간의 모습을 옮겨놓은 두 사람이 있어.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명실공히 현재 마블의 대표이자, 미국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이들이 맞붙는다는 소식은 처음 기획될 때부터, 주인장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었지. 그리고 개봉. 그 기대는 여느 때와 같은 우려를 무너트리고 히어로 영화가 단순히 킬링위타임용 영화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각인했어.
'당신은 어떤 편에 설 것인가?'
첨예하게 사람이 갈등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선이라고 굳게 믿지. 평상시에도 언제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는게 사람이긴 하지만, 가치, 자존심, 인생 같은,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 있을 때, 참 잔인하고 교활하게도, 우리는 그 아래에서 나온 모든 것이 선이라고 믿어버려. 그리고 철저하게 그 편에 서서 움직이지. 그리고 그 것이 어느 순간 뒤바뀌어 자신이 생각한 '선'을 위해서 자신의 가치, 자존심,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되고 어떨 때는 내가 어떤 것을 선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들지.
이런 문제 의식은 단편적으로는 수많은 다크히어로물에서 다루기도 했으니 그저 참신하다고 하기는 무리가 있을지도 몰라. 배트맨이라는 영웅도 이런 식의 물음은 언제나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시빌워'가 그럼에도 각광받게 된 이유는, 지금껏의 마블의 영웅들-특히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각자의 진지한 문제를 지니고는 있었지만 이 영웅들은 그럼에도 그들이 생각하는 '선'은 언제나 사회적으로도 분명한 선이었고, 캡틴 아메리카의 가치와 자존심, 인생은 관객들도 건들기 힘들만큼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서사시인데다가, 아이언맨은 자신의 히어로서의 이름과, 토니 스타크로서의 이름에 흠이 가지 않게 선의 의무를 다함과 동시에 철저하게 계산하는 영웅이었기에 이들의 행동이 최소한 악은 아닐 것이고, 선에 가까울 것이라는 전제가 시네마틱 유니버스로만 봐도 10년 가까이, 코믹스로 보자면 60년 이상 진행되어왔다는 거야.
그런데 관객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친구 '윈터솔져' 버키를 지키기 위해 무법자가 된 캡틴 아메리카와, 히어로 제한 법안의 집행자로서 영웅의 모습을 잃어버린 아이언맨이었지. 물론 둘 다 그럴 듯하고 논리적인 명분은 있었지. 히어로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막는 순간 이미 세상이 난장판이 된 후에야 한발 늦게 활동하고, 철저히 국가들의 이익에 놀아날 수도 있었고, 그렇다고 반대하자니 영웅의 존재 이유인 시민들의 지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단순히 일반인을 넘어서는 힘을 휘두르는 무법자가 될 뿐이지.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이 명분은 초반의 입장일 뿐, 이들의 전쟁은 이런 명분은 뒷전에 둔 채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자신을 반대편보다는 나은 것으로 인식하며 이어지기만 했지.
결국 마찰 가운데서 '워머신' 로드는 다시 자력으로 일어나기 힘든 상처를 입고, 비전이나 스칼렛 위치는 상당한 트라우마를 안게 되지. 이미 영웅의 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은 이름일 뿐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화려한 액션 속에서 처절하게 담겨졌고 그럼에도 멈출 생각도 손 쓸 방법도 없이 굴러만 가는 상황 가운데, 그저 영웅의 탈을 쓴 자들의 어리석은 코미디쇼로 밖에 안 보이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장면들에 이 영화가 '히어로물'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될 수 밖에 없었어.
이런 물음은 결국 결말에 가서 아이러니로 점철된 인간들의 모습으로까지 전락하고 말지. 모든 계획은 그들의 영웅적 활동에서 발생한 무고한 희생자 '헬무트 제모'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대로 움직인 것이었고, 무고한 희생자 버키를 지키려던 캡틴 아메리카와 그 버키에게 한 순간에 부모를 잃어버린 무고한 희생자 토니 스타크의 싸움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싸움이 될 뿐이지.
그들의 싸움은 더 이상 멋있지도, 감동시키지도, 전율을 일으키지도 않아. 그들의 상징은 부서지고, 각자 생각했던 '선'은 반대편에 서있던 이들에게 다시 지울 수 없는 희대의 '악행'이 되어 돌아왔지. 영웅의 탈을 쓴 인형극으로서의 의미도 가지지 못한, 그저 인간들의 절규가 계속 진행될 뿐이었지.
승자는 압도적으로 제모 뿐이었고, 그렇다고 그 또한 그 이후의 자신의 무엇도 남지 않은 인간이었고, 영웅들은 더 이상 같은 이름 아래 묶여 있을 수 없었지. 물론 이 후 화해를 했다고는 하나, 그저 '잘됐네 잘됐어' 식으로 시리즈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 명백한 채 끝을 내는 이 영화는, 크게는 미국의 모든 면을 대표하는 그들을 통해 미국이 절대 선이 아니고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란 것을 냉소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고, 좁게 보자면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입장이 선이 될 수 없고 결국에는 영구적인 피해자가 생길 뿐이란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도 있지.
어찌되던 이 영화는 히어로들의 첨예한 갈등도, 옛 히어로들의 충돌 사이에 생겨나는 신생 히어로들 또한 잘 보여주었지. 쓸 데 없이 무게를 잡지도, 그렇다고 한없이 가볍지도 않았고, 한명의 빌런과 수많은 히어로가 철저한 균형을 맞췄지. 그러면서도 관객들이 자신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면에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마련해준, 이렇게까지 완성시킬 수 있구나 싶은 '히어로 세계관'의 영화였어.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어. 과연 광고에서도 계속해서 묻던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할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웅도 절대적인 선도 존재하지 않고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이 곳에서 논쟁을 계속하는 게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영화가 개봉하기 전 부터 개봉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누가 잘못했네, 누가 잘했네를 따지는 논쟁은 계속되고 있어. 그리고 서로가 각자의 깨기 힘든 논리를 가지고 들면서 어떤 때는 서로에게 상처주기를 마다않지. 아, 내가 지금 잘못했다고 정죄하는 건 아니야. 단지 이런 논쟁이 이 영웅이었던 사람들의 싸움에서 느낄 수 있는 전부인가는 생각해봐야한다고 생각해.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절대 정답이 아니야.
오히려 보자면 빌런의 속삭임이지.
그 동안 나, 또 자네가 생각했던 것들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선, 혹은 정의의 가면을 쓰는 순간, '시빌워'라는 영화에 대한 논쟁이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되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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