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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사진첩/블라디보스토크 사진첩

브이싸따 -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세 남자의 미식기

'한 끼는 무조건 파인 다이닝이야.'

이왕 물가가 싼 브라디보스토크에 온 만큼, 양식의 진수를 먹어보자 다짐하며 공항에서부터 다짐한 세 사람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만찬의 때가 왔다. 꽤 맛있게 먹으면서도 동시에 빠듯하게 아껴왔던 이유는 이 저녁을 위해서였다.

독수리전망대 근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브이싸따'라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얼마 안하는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 올라갔는데, 아무래도 학습능력이 없었던 것 같다.

독수리전망대를 올라갔을 때처럼 길을 찾기도 어렵고, 굽이지고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가기도 쉽지 않았다.

브이싸따를 가실 분들, 독수리전망대를 오르실 분들은 꼭 그냥 택시를 타시길. 바보는 셋으로 충분하다.

엘레베이터를 타고도 다시 한 번 계단을 따라 비밀스럽게 올라간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고급 맨션현관의 초인종을 누르고 브이싸따를 가겠다고 말하면 웨이터가 식당으로 안내한다.

간판도 없는 일반 맨션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다시 2층 정도를 계단으로 걸어올라가야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마마치 어느 비밀모임에라도 참석하는 기분이라 괜시리 더 기분이 들떴다.

브이싸따의 탁트인 전망. 최고급 레스토랑에 왔다는 기분이 물씬 든다.

식당에 들어서니 어디를 봐도 탁 트인 블라디보스토크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롯데타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면 이런 기분일까, 모든 도시가 내려다보이니 알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이 몸을 채웠다.

창가로 좀 가까이 앉으면 더 좋으련만, 예약을 하지 않으면 창가자리는 앉기도 힘들다고 하고, 이 날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학회의 중진들이 오는 모양이었다. 자리가 크게 예약이 되어 있어, 창가는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치는 경치고, 중요한 건 식사다.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우리가 먹고 싶은대로 코스를 주문해보았다. 파인다이닝에 왔으니 가격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여행인데, 얼마가 나오더라도 괜찮은 경험으로 넘길 수 있다 생각하고 맛있어 보이는건 되는대로 시켰다.

전채는 우리 기준에서 가볍게, 청어, 연어, 새우로 각자 먹고 싶은 걸 시켰다.

에피타이저로 샐러드가 나오는 건 큼직한 남자 세명이 모여서 할 일이 아니다. 처음으로 먹는 건 해산물 요리다.

연어와, 새우, 청어가 빠르게 식탁위에 놓였다. 어떻게 조리를 한 건지, 음식의 이름이 뭔지는 잘 모르고 원재료만 알고 있다. 무려 2년이 지났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 기억나는 맛의 단편을 돌이켜보다보면 세 요리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들만큼 섬세하고 화려한 맛이었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본 재료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어떻게 손질을 했는지 잡내나 비린내 하나 나지 않고 향긋한 가니시의 향이 살의 풍미를 더 돋구워주었다. 

스프는 큼직한 소고기가 아낌없이 들어갔다.

이후 주문한 스프는 토마토 베이스에 감자와 양파, 소고기가 큼직하게 들어있는 스프였다. 말이 토마토 스프지, 소고기 스프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만큼 큰 덩어리들이 무더기로 들어있었다. 정말 무더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 이 스프를 먹으면서 이미 배고픔은 가셨고, 소고기의 육향이 입에 잔뜩 맴돌았다.

맛은 뭐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만한 맛이지만, 흉내내기는 어려운 맛이었다. 가장 좋은 재료를 가장 섬세하게 녹여냈구나. 음식을 많이, 다양하게만 먹어봤지 배우지 않은 사람이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집에선 못 만들 스프구나.

시작된 스테이크의 향연. T본 스테이크와 등심스테이크가 묵직하게 나온다.

드디어 본 게임. 각자의 스테이크가 나왔다. 티본스테이크와 등심스테이크, 안심스테이크가 접시를 한가득 채워 나왔다. 이 날 이전에도 스테이크를 많이 구워먹어봤고, 나름 값이 나가는 고기들도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날 먹은 스테이크는 격이 달랐다. 한우고 뭐고 내가 먹은 지금까지 먹어본 스테이크 중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였다. 

뒤이어 나온 안심스테이크까지, 양이 큼지막해 군인인 남자 셋이 모두 배불렀다.

흠 잡을 곳 없었다. 힘줄이란 건 당연히 느껴지지 않았고 익힘 정도도 내가 먹어본 미디엄레어 스테이크 중 가장 완벽하게 익혀진 스테이크였다. 세 스테이크 모두 나눠먹어보았지만 어떤 스테이크도 흠잡힐 곳이 없었다.

소스는 또 왜 그렇게 맛있는지, 도저히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내 빈약한 맛 데이터베이스를 한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한 번 한탄하게 되었다. 내가 왜 그 때 먹었던 맛을 바로 기록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2년이 지나 기억하는 맛의 기억은 정말 황홀할 정도로 완벽한 스테이크였다는 것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무슨 여름방학 일기가 밀린 초등학생과 같이 말이다. 이 글처럼 빈약한 맛이 아닌데, 많은 이들이 이 식당에서 좋은 추억을 가져갔으면 하는데,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곳의 스테이크는 모두가 꼭 한 번 와서 먹어보라고 하고 싶어 확성기라도 찾고 싶은 그런 마음이라는 것이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건 디저트, 이 곳의 브라우니가 여전히 그립다.

스테이크를 이정도로 훌륭하게 만드니, 디저트는 또 얼마나 훌륭할까.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 것이다.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맛있는 디저트일 것이리라.

아이스크림을 올린 브라우니 케이크와 새우유 케이크를 시켜먹어보았는데, 정말 밸런스 좋게 짜여진 디저트였다.

파인디저트는 소고기보다 많이 먹었고, 더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이만큼 진하면서 밸런스가 좋은 브라우니케이크는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너무 눅진하거나, 달거나, 건조하거나 어느 하나에선 이날 먹은 브이싸따의 브라우니보다 못했다. 물론 지금껏 한국에서 먹은 브라우니들이 기대 이하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곳의 브라우니 케이크가 너무 맛있었을 뿐이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새우유케이크' 가장 고급진 초코파이라고 할까.

러시아에 가면 '새우유케이크'를 꼭 먹어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꿀케이크'와 함께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맛의 디저트라고. 

러시아에 오고 나서 그렇게 '새우유케이크'를 찾아 헤멨건만 다른 파티세리에선 찾지 못했는데, 이 곳에서 찾게 되어 냉큼 시켜보았다. 

맛은, 고급스러운 초코파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또 안될 맛이긴 한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초코파이일 수 밖에 없다. 아주 부드러운 마쉬멜로우와 반쯤 녹아있는 듯한 초콜릿. 한 번 먹으면 생각나는 그 익숙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르긴 하다. 새우유케이크에는 파이부분이 전혀 없고 과즙 필링이 함께 들어있다. 상큼하고 달콤하면서도 마쉬멜로의 부드러움이 혀를 감돈다. 마쉬멜로우를 싫어할 사람도 분명 좋아할 마쉬멜로우라고 생각한다. 공장제 마쉬멜로와는 격이 다른 마쉬멜로우. 이걸 '마쉬멜로우'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마쉬멜로 느낌이 나는 다른 무언가는 아닐까? 싶을 정도로 머랭도 아닌, 솜도 아닌, 마쉬멜로도 아닌 식감이었다.

러시아를 들렀음에도 아직 새우유케이크를 먹지 않은 사람들은 꼭 기회를 만들어보길. 아니면 면세점에서 파는 작은 새우유케이크라도 몇 박스 사가길 바란다. 먹고 후회하는 것이 안먹고 있는 것보다 충분히 나은 경험이다. 

성인 남자 셋이 먹어 나온 돈, 단 돈 10,620루블.

브이싸따를 강력하게 추천한 이유는, 세 성인 남성이 그렇게 만족스럽게, 배부르게 먹고 나온 돈이 단 10,620루블이라는 점이다. 현재 환율로 16만원이다. 1인당 6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거의 풀코스에 가까운 파인다이닝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주류 포함이다. 다들 맛있는 칵테일 한 잔씩 시켜서 먹은 금액이다.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경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이기에 가능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맛을 사랑한다면, 소중한 이와 잊지 못할 미식을 하고 싶다면 꼭 블라디보스토크 브이싸따에서 식사를 해보길 바란다. 지금까지 내가 어디가서든 블라디보스토크 이야기를 하나 하나 꺼내놓으면서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는 첫 장소다. 

분명 인생에 가장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아무리 기억이 바래더라도 말이다.

어느새 하루가 다시 저물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환상이 저문다.

누가 뭐라할 것 없이 입에 미소를 걸고 식당이 있는 맨션을 빠져나왔다. 

해가 어느새 지고, 블라디보스토크의 야경이 은은하게 빛났다. 서울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깜빡깜빡이는 정돈되지 않은 등의 색깔이 마치 사금같았다. 

금같은 하루가 지났다. 반짝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기억이 저문다. 저문 기억은 내 가슴에 박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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