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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사진첩/블라디보스토크 사진첩

연해주국립미술관, 러시아예술가연합 전시관 - 잊었던 미술관을 찾다.

식사도 하고 티타임도 가졌으니 좀 움직일 시간이다.

선선하긴 하지만, 러시아의 태양도 쨍쨍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선선하고 그늘진 곳을 산책하기로 했다.

미술관이다. 솔직히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작은 도시에 제대로 된 미술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아니, 뭐 미술관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국립 미술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멀지 않은 곳, 다른 건물과 똑같이 자리 잡고 있어 지나칠뻔한 연해주 국립미술관을 지나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외양은 다른 건물과 비슷하지만 내부는 어디를 봐도 예술적이다.

솔직히 미술관에 들른 건 오랫만이었다. 이전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지방이 닳도록 다녔지만 최근 5년은 들른 기억을 손에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 최근에 본 전시회, 특별전시라고 가본 곳들이 전부 참여형이란 이름으로 스크린에 떠다니는 미술작품과 그 앞에서 인스타 피드 하나 올리기 위 핸드폰을 들이미는 전시장뿐이어서 그런지, 미술 전시에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연해주 국립미술관은 내가 흥미를 잃은 요즘 미술관이 아닌 내가 기억하는 옛 미술관스러웠다.

힘있는 붓터치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조도가 낮고 조용한 공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시되고 있었다. 마치 자신만을 봐달라는 예술작품의 외침이 들리는 듯한 적막이었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은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 벽을 채운다.

이런 장소에 오니 정말 오래간만에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것 없이 나와 작품만이 일대일로 만나고 있는 기분이 잊어버린 보물을 찾은 기분 같았다.

오디오 가이드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작품의 자율적인 해석을 좋아한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면 작품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날 나는 이름도 모르는 러시아 화가들의 이름도 모르는 작품에 흠뻑 빠졌다. 

러시아 화가들의 화풍은 강렬했다. 대상을 그대로 그린 듯 생동감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고흐와 같이 감정이 화폭을 찢고 나오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인물의 눈에선 의지가 느껴졌고, 풍경에서는 쓸쓸함과 같은 감정들이 그대로 느껴졌다.

러시아 화가들의 풍경화는 특히 내 맘을 사로잡았다. 

특히 풍경화, 러시아 화가들의 풍경화는 내 마음을 그대로 사로잡았다. 러시아의 풍경화에는 적막이 깃들어있었다. 빛과 어둠의 대비는 극명했고, 그 빛과 어둠에 묻힌 풍경은 마치 우리의 수묵화와 같이 고요하면서 또 우러러보게 만드는 맛이 있었다.

러시아의 혹독한 기후가 그들의 미술을 이렇게 적막하고 장엄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역사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많은 생각이 비누거품처럼 떠올랐고, 다음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다시 그 작품에 감탄하느라 비누거품처럼 꺼졌다.

연해주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마음에 든 그림.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오로지 수면만이 분명하다.

연해주 국립미술관에서 예술로 마음을 풍족하게 채우고 나와 1분이나 걸었을까. 전시를 하고 있는 작은 전시관이 보여 끌리듯 그림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러시아 예술가 연합 전시관', 이제서야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현재의 러시아를 이끌어가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느꼈다. 작가인 듯 보이는 이들이 손님들과 연신 악수를 하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고, 관광객, 주민들이 뒤섞여 다채로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는 전시관이었다.

마치 인사동의 화랑에 온 듯했다. 생각해보면 인사동 화랑 전시를 가본 지도 오래되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예술가의 화랑을 두세 곳씩 방문하던 때, 나는 미술이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것임을 느꼈고, 내 삶에 깊게 미술을 들여놓았다.

근데, 나는 언제부터 화랑에 들락거리지 않게 된 것일까?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냥 화랑이 줄어들어서인 것도 같고 정확히는 알지 못하겠다. 이 기회에 조만간 화랑에 들러보기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드는 생동감 있는 전시관이었다.

인사동의 화랑 같이, 생동감 있는 소리로 채워진 러시아예술가연합 전시관

최근의 러시아의 미술사조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 전시관에서 느낀 러시아 예술가들의 그림은 조금 더 '인상주의'스러웠다. 물감을 아끼지 않고 덧씌우며 풍경과 정물에 자신의 감정을 담기도 하고, 깔끔한 붓터치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해주 국립 미술관에서 느꼈던, 적막함과, 저항 못할 엄숙함은 손바닥만한 작은 화폭에서도 여전히 느껴졌다. 

어쩌면 러시아인들의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 그림들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섣부르지만 지울 수 없는 추측이 연해주 국립미술관을 지나 이 전시관에서 더욱 강해졌다.

이런 섣부른 일반화와 추측도 예술을 보는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예술로서 러시아를 조금, 종이 한 장만큼 더 엿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거칠게 물감을 덧씌운 정물과 풍경들. 붓터치가 그대로 살아있다.
대상을 붓으로 뭉겐듯한 터치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가 고요함을 풍경에 담은 것이 느껴진다.
한 여름의 어느 바다. 러시아의 어느 바다인지 모르지만, 적막하다. 그들의 시각에 비친 세상이 그런 걸까.

1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그 안에 있는 작품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어. 나는 이런 느낌을 너에게 줄 수 있어. 예술가들의 혼이 들어간 작품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 것에 사뭇 감동을 느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스크린에 영사되지 않은, 프린트되어 걸려있지 않은, 작품 옆에서 자신의 얼굴을 찍지 않는 그런 전시관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내가 미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쩌면 오래 잊었는지 모른다. 한 번 웃기 바쁜 삶을 보낸다는 이유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그렇게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이 못내 슬펐다.

한국에도 분명 이런 전시관이 계속 남아있을텐데, 내가 그저 바쁘다는 이유로 알아보지 않았던 것이리라, 몇 번의 실망을 증거로 삼아서 말이다. 

이번 주에는 인사동의 이름 모를 화랑에 들어가 전시를 한 번 보리라. 나는 그런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블라디보스토크는 나에게 잊었던 옛 미술관과, 미술에 대한 사랑을 다시 흔들어 깨워줬다.

고마워. 블라디보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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