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람사진첩/블라디보스토크 사진첩

독수리전망대 - 하염없이 바라보다

배고프다. 배가 고플만도 하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종횡으로 누비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너머로 지고 있었다.

여행을 가게 되면 꼭 먹어보겠다는 리스트는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의 경우는 '샤슬릭'이었다.

러시아의 음식은 아니지만, 가장 흔하고 맛있게 만드는 요리인 만큼, 꼭 러시아에서 먹어보고 싶었다.

구글에서 가장 평가가 괜찮은 식당을 찾았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되어있었지만, 다 그러니까 여행 아닐까. 

무엇보다 너무 지쳤다. 다른 곳을 찾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얼른 먹자. 샤슬릭을.

양갈비와 잘 구어진야채들이 정갈하게. 샤슬릭인걸까..?

이왕 샤슬릭이라면, 양으로 만든 샤슬릭이 좋다. 누가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식당에 앉은 우리는 그렇게 정했다.

돼지나 소에 비하면 요리로 먹은 일이 없어서 그럴까. 특별한 한 끼를 하게 된다면, 양이 특별함을 배가시킬 것 같았다.

보통 매체에서 나오는, 우리가 기대하는 샤슬릭은 크고 긴 꼬치에 꽃혀 나오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 있어서 오히려 이 레스토랑의 샤슬릭은 작은 실망을 불러 일으켰다. 

정갈하게 양갈비 샤슬릭이 야채와 곁들여서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뭔가 잘못 시킨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양의 매력이 야성적으로 터져나온다.

하지만 한 입 담자마자 흘러나오는 양고기의 육즙은 야성적인 샤슬릭을 원했던 우리의 실망을 없애줬다.

물론 조금 더 고기가 많았으면 좋겠지만, 양고기에 켜켜이 쌓인 이국적 향신료가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웠다.

잔뜩 고기에 풍미에 빠져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샤슬릭 집들을 더 찾아보자'라는 다짐을 나누었을 정도다. 

물론, 큰 대륙만큼이나 많은 음식 종류 때문에 이후 여행에서 다시 먹지는 못했지만.

다시 러시아에 간다면 샤슬릭을 또 즐기리라.

배를 채우고 하늘을 봤다. 다행히 러시아의 여름 해는 여전히 길었다.

소화를 시킬 시간도 없이 서둘러 다시 언덕을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모든 것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다. 

이름부터가 높은 '독수리 전망대'로 향한다.

계속해서 오르막을 오르다 지나간 한 공원. 졸로토이 대교가 가까이 보인다.

군 간부들의 여행 아니랄까봐 완벽한 일몰을 보기 위해 출발하기 전부터 기상을 철저히 확인했다.

일몰시각과 강우확률 등을 다 확인하고 나섰기 때문에 독수리 전망대에 계산한 대로만 도착하면 문제 없다 생각했다.

셋 중 길을 잘 찾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채 말이다. 

철조망에 막힌 길을 만나고, 비슷한 길을 두 세 번 돌고 나서야, 일몰시작 30분 전 쯤 겨우 겨우 도착하게 됐다.

독수리 전망대에 다시 가게 된다면, 케이블카나 택시를 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사서 고생은 안하는게 맞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사람을 맞는 선교사 동상.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안그래도 선선한 블라디보스토크의 여름은 살짝 쌀쌀해졌다.

한창 헤메느라 흘린 땀에 살짝 싸늘함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니 아직은 사진을 찍을 곳이 많이 남아있었다. 

어느 선교사일지, 성인일지 모르는 동상 옆에 자리를 잡고 캠코더를 킨 채 잠시 난간에 기대 숨을 돌렸다.

쌀쌀한 바람은 이내 피로감을 개운하게 날려주었다. 주변에 관광객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해가 질 모양이다.

서서히 내려앉는 석양에 블라디보스토크가 물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수평선부터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졸로토이 대교의 절반은 하늘 빛에 맞추어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밤바다에 그물을 던질 배들은 좁은 만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여객선들은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주변은 관광객들의 셔터소리로 연신 시끄러웠지만, 왠지 이 일상적인 해질녘의 모습이 너무 고요하게 느껴졌다.

대교를 지나는 차들의 전조등이 켜진다. 밤이 찾아온다.

한시간에 걸친 일몰 가운데 일행들 중 누구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밤이 찾아오는 것을 이렇게 온전히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져있고 퇴근을 하거나, 핸드폰을 바라보며 노을을 지나친 시간이 더욱 많았다.

우리는 누가 약속이라도 한 듯 노을 사이로 물드는 일상을 경건하게 감상했다. 몸 전체에 빠질만큼.

마지막 남은 빛에 그림자가 지면서, 전망대 위의 십자가가 하늘에 박힌 듯 보인다.

어쩌면, 정말 아름다운 것은 가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바라보지 않았을 뿐.

몸에 한기가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찬 김을 내뿜지 않았다면, 하늘이 물들고, 땅이 빛나는 모습을 더욱 더 깊게.

오랫동안 눈 속에 담아두었을 것 같다.

많은 도시를 다녀봤고, 많은 야경을 봤지만 독수리 전망대에서 본 블라디보스토크의 풍경은 잔잔하게 아름다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초승달이 붉은 카펫 위에 올라서있다.

차가운 몸을 연신 비비며 저마다의 독수리 전망대를 얘기하며 숙소로 내려오는 길. 

초승달이 붉은 카펫위로 올라서있었다. 이소라의 명반 '눈썹달'의 앨범커버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녀도 비슷한 고요함을 도시에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 고요한 아름다움만 느꼈지만, 혼자였다면, 나도 무척이나 아름답게 쓸쓸했을 것 같다.


숙소에 들르기 전 숙소 옆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렀다.

너무 볼 곳이 많아서 그런지, 베이커리에는 한 군데도 못 들렸기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케잌을 사서 맥주와 함께 먹으며 우리의 밤을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내가 굳이 지도를 먼저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이 내 블라디보스토크의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경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 여행기를 보고 블라디 보스토크를 가려는 이들이 있다면, 이 곳만큼은 반드시 들리라고 하고싶다. 

다른 곳들은, 많은 여행서에서 가보라고 추천하겠지만 이 곳은 가 본 사람만 추천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즐비한 에클레어와 케잌들이 놀라운 가격으로 우리를 홀렸다.

많은 케잌, 에클레어, 파이들이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유혹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베이커리는 아직 분주했다.

놀라운 것은 그 가격이었다. 싸게는 120루블에서 비싸게는 220루블. 가장 많은 가격대가 160루블. 2500원 언저리다.

한 사람당 두 개씩 먹고 싶은 디저트를 담고도 비싼 과자 한 봉지 정도의 가격이라니. 

첫 날 디저트도 저렴한 편이었지만, 다시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가 싼건지, 우리가 비싼건지. 혼란스러웠다.

싸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곳의 자허토르테는 정말 예술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말은 러시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듯 했다.

160루블짜리 케이크가 과연 얼마나 맛있을까. 불신을 가지고 한 입 먹은 순간 우리는 느꼈다.

여행 내내 밤마다 이 곳에 케잌을 사러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자허토르테, 프티치예 몰로코(새의 젖), 툴스키 프랴니크(꿀 케잌)... 그저 흔한 에클레어까지도 하나 같이 최고였다.

고요하고 잔잔했던 밤이 의도치 않았던 베이커리의 작은 케잌들로 달콤하고 활기차게 흘러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