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걷는데서 비롯된다.
특히나 블라디보스토크 같이 작은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쉼없이 걷고 다시 올라야 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여행에 중요한 것은 날씨다. 그리고 그 날씨가 무엇보다 좋은 점심이었다.
호사를 부리며 코스요리와 반주를 곁들였으니 바쁘게 올라가야 할 때다.
원래 계획이라면 혁명 광장에 있던 아오 프라오바젠스키 성당 안을 구석구석 구경할 생각이었지만,
공사가 있었으니, 블라디보스토크의 또다른 성당. '포크롭스키 주교좌 성당'으로 향했다.
1km 정도 오르막길을 계속해 올랐다. 일요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사람은 꽤 적었다. 공기는 더할 나위 맑았다.
출발할 즈음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굉장히 탁했다. 실내에는 먼지를 피해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맑은 공기 가운데 한적하게 산책을 한 것이 얼마만인지. 해외에 나와서 비로소 느끼는 해방감에 젖어들었다.
포크롭스키 주교좌 성당이다. 살짝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되어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규모는 혁명광장의 대성당에 비교하면 아담했지만 웅장한 멋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숲이 조성되어 마치 어느 동화에 나올듯한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혁명광장의 대성당에서도 어렴풋 느꼈지만 정교회의 성당은 무언가 달랐다.
카톨릭의 성당에서 느껴지는 밀도 높은 구조물에서 느껴지는 찬탄이나, 개신교 교회에서 느껴지는 장대함과는 달랐다.
은은한 파스텔톤의 배색, 단순하면서 점층적으로 나아가는 건축양식은 절로 사람을 잔잔하면서 고요하게 했다.
그러나 마음이 무거워지진 않았다. 단지 숲 한 가운데 마법의 샘물을 찾은 듯한 동화같은 잔잔함만이 있다.
성당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마음이 경건해진다. 특히나 그 시기가 일요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혹시나 예배가 있지는 않을까 몇 번 기웃거리다 적은 신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들어갔다.
성당의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그대신 수많은 금빛 이콘이 벽에 가득했다. 1
층 구분없이 샹들리에만 매달린 높은 천장에서 일요일 오후의 햇빛이 물결치며 들어오고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제한하고 있었다고 들어 배랑에 있는 분에게 여쭤보니 핸드폰으로 조용하게 찍는 것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해서 최대한 스피커를 막고 조용히 몇 장 사진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층고에서 울리는 조용한 말소리와 발소리에 미세한 셔터소리가 섞여들어갈 때 무언가 더욱 조심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사진이지만, 이들에게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정교회의 예배는 아침에 진행되는데, 이때 템플론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성화벽이 움직이고, 내부의 지성소가 개방된다.
이왕이면 조금 일찍 일어나 성찬예배를 잠시 체험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저 거대한 템플론은 어떻게 열릴까.
저 안에는 또 어떤 그들 나름의 전통을 지킨 아름다운 기물들이 있을까.
내가 아는 세계보다 모르는 세계가 훨씬 많음을 아담한 성당 안에서 몇 번씩 느꼈다.
기둥과 벽마다 빽빽히 걸려있는 이콘들은 예배당에 들어온 것인지, 러시아 미술관에 온 것인지 헷갈릴만큼 아름다웠다.
어떤 이콘들은 얇게 조각된 그림들을 켜켜이 쌓아 마치 입체처럼 만든 것들도 있었다.
이콘이 어떤 성인을 그린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하나 하나에 수많은 시간을 들여 만들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콘을 느긋이 감상하며 이들의 정성과 신앙심을 더 느끼고 싶었지만, 신도들이 이콘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먼저다.
연신 속으로 감탄하며 그들의 삶에 평안을 가져다 주길 나도 잠시 기도하고 성당을 빠져나왔다.
성당 밖은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로 사그락거리고 있었다.
함께 아이들이 신부로 보이는 분과 공놀이를 하며 웃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 광경에 성당 안에서 느낀 다른 어떤 감동보다 더 많은 감동을 이들에게서 받았다.
종교란 엄숙하고 장엄하기도 해야하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 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공놀이를 하는 그 순간이 주변에 평화를 가져다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행복하고 평화로웠다.
성당 뒷편 공원에 들어서니 완연한 여름의 초록빛이 나를 반겼다.
한국과 비교하면 따뜻한 수준이지만 자연의 찬란함은 어느 곳이나 같았다.
나무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벤치. 노인 둘이 체스를 두고 있었다.
마치 그들 둘 만큼이나 세월을 지낸 듯한 체스판이었다. 노인 둘은 아무런 말 없이 체스말을 옮기고 있었다.
찬란한 햇빛이 노인들을 비추고 있었다. 체스 말을 두는 소리가 마치 고요한 음악 같았다.
두 노인은 앞으로도 언제든지 이 자리에서 체스를 둘 수 있을 듯 느긋했다.
참 찬란하면서 고즈넉하구나. 무엇보다 담고싶은 러시아의 일상이었다. 잠시 멈춰서 셔터를 눌렀다.
셔터소리도 숲속으로 잠기는 듯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끼는 사진의 탄생이었다.
산비탈을 바다를 끼며 내려왔다. 주거지역을 지나고 있자니 곳곳에 조용한 폐가들이 가득했다.
밤중이라면 무서울만도 한 폐가와 그래피티들은 따스한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에서 중요한 역사적, 지리적 위치를 가진 도시지만 국가 전체로는 작은 도시에 불과하다.
이 곳에 오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중국인. 많은 청년들은 모스크바로 떠나고 있다.
드문 드문 보이는 폐가와 뜬금없이 보행로에 솟아있는 송전탑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현실을 보이는 듯 했다.
아시아 가장 끝자락의 유럽. 그 고즈넉한 아름다움 가운데는 왠지 모를 씁쓸함도 함께한다.
덧없는 쓸쓸함 어딘가에는 한켠 애틋함도 있다.
이제는 사라진 미니카 트랙 깔린 문구점. 비디오 가게. 그런 지금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추억할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어느 골목에서 낡은 슈팅게임 오락기를 발견하면 느끼는 애틋함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조용한 일요일 오후에는 이 도시를 향한 안타까움과 쓸쓸함과 동시에
한 켠 내가 그리던 어린 추억들이 애틋하게 오버랩되었다.
그렇기에 이 도시는 찬란하면서 고즈넉하고, 쓸쓸하면서 아름답다. 이 도시를 또 좋아하게 된다.
-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주로 그리는 종교적인 상징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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