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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사진첩/블라디보스토크 사진첩

혁명광장 -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혁명적 아침

먼지 한 톨 없는 하늘 아래 가장 유럽스러운 모습을 뽐내는 건물. 유럽이구나.

사람이란 자고 먹은 후, 다시 푹 잘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밤이었다.

잘 수 있는 한 가장 푹 잔 이튿날, 날씨는 이보다 좋을 수 없게 청명했다.

전 날 사온 아침을 적당히 먹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챙겨입고 거리로 나섰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주말은 한적한 소도시의 느낌이 물씬 났다. 

물론 아시아 끝자락임에도 유럽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온갖 옛 서양식 건물들과 키릴문자의 향연은

우리가 아시아 맨 끝, 그러나 유럽 한 가운데 와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앙 거리. 아르바트거리와 혁명광장을 잇는 잘 발달된 길에 다채로운 양식의 건물이 늘어서있다.

스베틀란스카야 거리를 향해 지체없이 내려갔다. 첫 목적지는 혁명광장이다. 

그러면서도 건물들에서 밀려오는 진한 유럽의 감성은 충분히 마시고 즐겼다.

그리고 그 냄새의 근원, 바다가 보이는 혁명광장에는 가장 러시아다움의 집합이 기다리고 있었다.


혁명광장에서 가장 눈에띄는 아오 프라오바젠스키 성당. 그 앞의 솟은 쌍두독수리는 '군사영광도시 기념비'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첫 도착때부터 거대한 모습으로 러시아에 온 것을 확인시키던 대성당이다.

'아오 프라오바젠스키 성당'. 러시아 정교회의 대성당은 맑은 하늘의 태양빛을 그대로 비춰 자신의 찬란함을 뽐냈다.

러시아 정교회라는 종교에 대한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만드는 마력의 성당.

곳곳에 개축중임을 보여주는 지지대와 판자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성당의 아름다움을 해할 수는 없었다.

물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미 아름다움은 충분하고 남았다. 

정교회의 사제가 신도들과 웃음 가득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성당의 앞쪽에는 나무로 만든 조금 넓찍한 오두막이 있었다. 

십자가와 사제. 성당에 들어가지 못하니 간이 예배소를 만든 것으로 보였다.

간이 예배소 앞에서는 막 기도가 끝난 것인 듯한 사제와 신도가 정겨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단지 행복함을 넘어선 경건한 기쁨. 이들을 멀리서라도 봐서 나 또한 기쁘다고 생각했다.


광장 뒷쪽으로는 80년대를 추억하는 듯한 올드카들이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당 뒷쪽은 내가 도착했을 때부터 점점 와글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여러 올드카들. 단지 복고열풍 같은 것에 편승한 것이 아닌, 옛 차들이 형형색색으로 늘어서 있었다.

아마 어느 자동차 회사의 기념 쇼인듯 했다.

빨간 모자를 쓴 참가객들은 각자 마이크를 나눠 들고 격앙된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물론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흘러간 올드카의 여전한 멋을 감상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모든 차에는 들어가서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원없이 핸들을 꺾어댔다.

스쿨버스부터, 비틀즈 당시에 있었을 법한 앙증맞은 승용차까지. 온갖 다채로운 차들이 혁명광작 끝과 끝을 이었다.

어린아이들과 남자들은 누가 서로랄 것 없이 문을 열고 핸들과 시트, 계기판을 만지며 열중했다.

나는 차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블라디보스톡의 시민들의 열중한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혁명광장의 끝자락부터 끝자락까지 즐거운 목소리가 가득 메워져 있었다.

'대단하다', '굉장하다', '즐겁다' 를 공산권 국가들이 자주 애용하는 말, 러시아라면 응당 들리는 느낌으로 얘기하자면,

'혁명적인 광장의 혁명적인 아침이다' 같이 외치고 싶은 즐거운 기분이었다.


혁명광장의 중앙을 지키고 내려다보는 '혁명적' 동상들. 일제를 상대로 한 승리와 혁명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광장의 정중앙을 지키고 서있는 큰 동상에는 당연 이목이 쏠릴 수 밖에 없다.

혁명광장임에는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극동 소비에트 혁명 기념동상'은 그들이 얼마나 혁명을 자랑스러워 했는지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러시아가 되었고 소비에트란 이름은 쓰지 않게 되었찌만,

여전히 러시아인들에게 민중이 직접 왕정을 끝낸 소비에트 혁명은 그들의 긍지로 우뚝 서 있었다.

영웅적 기수 뒤에는 수많은 민중이 서있다. 사실 높은 곳의 기수보다는 이들이 주인공일 것이다.

높은 곳에서 깃발을 든 동상 뒤로는 수많은 혁명의 주인공들이 동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높낮이는 계급의 높고낮음이 아닌, 누가 더 민중과 거리가 가까운가로 느껴졌다.

낮은 곳의 동상들이 더욱 사실적이고 힘이 있는 것도 단순히 미학적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소비에트 혁명의 가치에 깊게 감화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감동을 받은 것은 그들의 긍지를 앞에 두고, 그들의 신앙을 뒤에 두고 현재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러시아에 와 있구나.' 라는 느낌이 몇 번씩 드는 '혁명적 아침'이었다.

'극동 소비에트 혁명 동상'은 비단 그들만의 혁명은 아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나게 된 첫 단추, 러일전쟁의 참상을 직접 마주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상에도 일제에 맞서 싸우고, 혁명을 일으킨 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임이 명시되어 있다.
러일전쟁은 졌지만, 그 패배는 그들의 긍지를 불러 일으켜주는 역할이 되기도 한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 한 켠에 서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여러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광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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