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러시아 말이라곤 아직은 즈드라스트부이체(안녕하세요)와 스파시바(감사합니다) 밖에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고 싶어서, 캠코더 하나 사고, 핸드폰 하나와 캐리어 하나 챙기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시간 조금 걸렸을까. 작은 비행기의 흔들림은 여행을 향한 두근거림과 같았다.
예상과 다르게 비싼 비행기 값을 피하다 보니 꼭두새벽. 2시가 겨우 됐을까 하는 시간이었다.
인천공항은 12시까지도 활기를 띄고 있었기에, 아무리 그래도 국제공항이니까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때까지 시간을 보낼 공간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겨우 2층으로 지었네, 싶을 정도로 작은 공항이었다.
모든 카운터는 사람 하나 없고, 열려 있는 것이라곤 편의점, 그리고 ATM 뿐이었다.
의자는 이미 먼저 이 작은 공항에 도착해 아침 8시에 출발하는 블라디보스토크행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일단 아침이 밝을 때까지 뭐라도 먹으며 버텨야겠기에 샌드위치와 적당한 간식들을 골랐다.
한국 과자와 라면이 꽤 있었다. 현지 음식을 먹자고 주먹밥 비슷한 것을 골랐는데, 낭패였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
다음 블라디보스토크에 오시는 이들께서는 공항에서만큼은 한국음식을 사시는 게 나을 것이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피곤함만 늘어나고 자리 피고 누워있는 벤치의 여행객들은 일어날 생각이 없다.
어쩌겠나, 건장한 남자들의 선택은 언제나 노숙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다 공항원들이 오면 잠시 일어나고, 그러다 다시 졸며 6시간 정도를 보냈다.
새벽 비행기가 싼 데는 이유가 있다. 어디나 한국과 같은 시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푸른 동이 터오고, 성미 급한 여행객들이 공항 좌측 편(정면에서 볼 때)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7시 45분 첫차를 기다리는 이들로 북적인다. 보통 때라면 느긋하게 기다렸으리라.
그러나 6시간의 찬바닥 노숙은 우리를 꽤나 지치게 만들었기에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몇 차례 없는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은 북적였다.
공항 → 시내 07:45, 08:30, 10:45, 13:15, 17:40
시내 → 공항 07:05, 09:02, 11,51, 16:00, 18:00
총 5회뿐이다.
서투른 러시아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비즈니스석을 끊었다.
일반석 230 루블, 비즈니스석 360 루블
돈을 아끼자며 일반석을 탈 수도 있겠지만, 지친 심신은 몇 천 원이라도 더 얹어주고 비즈니스석을 타라고 속삭였다.
여행을 할 때만큼은 본능적으로 몸을 따른다. 그게 보통은 만족할 수 있는 정답이다.
이번에도 본능에 따른 선택은 정답이었다. 비즈니스석을 끊은 여행객은 이 아침, 우리를 제외하면 없는 듯했다.
적어도 우리가 탄 열차 안에는 우리뿐이었다. 그 점이 무엇보다 맘에 들었다. 130 루블 들일만 했어.
갈증을 해소한 후, 넉넉하게 일행들과 간격을 띄우고 잠을 청했다.
분명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유럽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다. 아무것도 모른다.
낯선 유럽의 풍경과 내가 정말 모르는 곳에 왔다는 고양감이 피로를 파도처럼 쓸어 넘겼다.
나는 이 곳에서 어떤 추억을 찍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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