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느끼는 거지만, 놀라운 영화는 얼마나 진부한 것을 얼마나 새롭게 보이게 하느냐야.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는 진부한 것의 집합체야.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단 진부한 것을 찾는게 더 쉽지. 속물 천재 의사, 사고로 인한 불구, 초월적인 스승, 생각보다 빠른 배움, 중국풍의 수련, 빼앗긴 비기, 유체이탈, 시공간의 제어, 루프물, 애완동물 같은 아티팩트.....당장 이전의 아무 판타지 작품을 잡고 들어도 이 중 하나는 있다 싶을 정도로 고전적이고 물 빠진 것들만 바리바리 싸와서 펼쳐보여주고 있지.
'신비한 동물사전'은 어떨까? 신비한 마법 동물들은 전부 새롭지. 그렇지만 나머지는 전부 이미 예상이 되는 범주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 뚱뚱하고 유쾌한 조연, 의욕은 앞서는데 어딘가 결핍된 히로인, 백치끼 있는 캐릭터, 부패한 상층부, 잘못 씌워진 누명....거기에 이미 십수년간 이어왔고 그 어떤 영화시리즈보다 성공적으로 세계관을 정립한 해리포터의 세계관까지. 이쪽도 만만치 않게 구수한 냄새를 내는 재료만 있네.
진부한 소재가 가득하지만, 그래픽은 동시대 어느 누구보다 화려하고, 둘 다 새로운 시리즈의 첫 편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줬고, '신비한 동물사전'은 못내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
이 둘이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것은 단순히 마법사가 나오는 것이라는 공통점이나 위의 늘어놓은 요인들 때문은 아니야. 우연찮게도 둘이 말하고자 하는바가 어느정도 겹쳤기 때문이야.
누구의 말보다 자신의 생각이 먼저였던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벌을 받는 것 마냥 사고로 불구가 되어버리지. 그러고 자신의 손을 고쳐줄 이를 찾기 위해 헤매고 헤매다 '에이션트 원'이라는 초월자를 만나게 되지. 보통 이쯤 되면 관객들이 생각하기는 '제 잘난 맛에 살던 스트레인지가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어하는 법을 배워야 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지. 그런데, 에이션트 원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은, '그 동안 같혀있던 자신의 아집과 세속적 틀을 부수고 더 자유롭게 생각하라'고 하네. 심지어 한 번 악역에 의해서 한 부분을 뺏겨버린 비서를 스트레인지가 보고 익혀 시공간의 제어를 습득하게 되도, 그저 말로만 주의를 줘. 어떤 물리적, 정신적 제제도 없지.
이러니 안그래도 타인이 뭐라하든 신경 쓰지 않던 스트레인지가 에이션트 원 덕분에 자신의 단점에서 탈피하고 아주 자유분방하게 악역과 싸워. 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런건 당연히 없고, 중요해 보이는 것도 손에 잡히는 대로 이용하면서 말이야.
어쩌면 이 영화가 똑같이 다크 디맨션이라는 파멸을 부르는 곳에서 빌린 힘을 사용하면서 잘잘못을 따지는게 이상하다고 볼 수도 있겠어.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굉장히 이 영화를 지엽적으로 보게 된 거라고 생각해. 마치 자신이 믿고 따르던 스승이 다크 디맨션의 힘을 빌어 생존한다는 것을 알자마자 모두가 같다라고 비난하며 떠나는 모르도와 다를 바가 없지.
분명히 다크 디맨션의 힘은 파멸을 가져올 수 있어. 무척이나 위험하겠지. 하지만 그게 당장의 파멸을 초래하진 않아. 오히려 역으로 파멸을 막는데도, 복구하는데도 충분히 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스트레인지는 최종적인 악역 도르마무를 막으면서 보여주지.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기에 파멸을 부를 수 있는 시간역행을 몇 번이고 써서 굴복시키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데도 쓰지.
결국 이 영화에서 악한 것은 '파멸을 부르는 힘을 이용한 자'가 아니야. 오히려 그에 비하면 아주 현실적이고 평범한 것이 악한 일이 되지. 시간 역행을 쓰는 스트레인지는 악한 인물이 아냐. 하지만 자신의 실력과 지식만을 맹신하고 그대로만 행동하는 과거의 스트레인지가 악하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수명을 늘리는 대가로 다크 디맨션의 힘을 빌어 생존하던 에이션트 원이 악한게 아니야. 파멸을 부를 지도 모르는 힘을 쓰기 때문에 마법사는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집에 사로잡힌 모르도가 오히려 악한 인물이 되는거야.
'닥터 스트레인지'가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영화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 무엇보다 진부할 수 있는 소재들 가운데서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아집과 통제야말로 가장 타파해내야 할 첫 것임을 효율적이고 스피디한 스토리로 풀어내면서 모든 인물이 입체적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여주어 마치 단 한번도 쓰이지 않았던 소재처럼 새롭게 보이는 데 성공했지.
이에 비해 '신비한 동물사전'은 진부한 소재를 살릴 부분이 부족했어. 말하고자 하는바가 겹친다고 했는데, 주인공 뉴트가 지키려는 신비한 마법동물들 가운데 존재했던 세계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옵스큐러스'가 존재했고, 이를 악으로 규정하고 보호하려는 뉴트까지 싸잡아 악으로 만들어버리는 미국 마법지부와 그 수장 퍼시발 그레이브스와 그에 맞서서 어떻게든 옵스큐러스를 포함한 마법동물을 지키려는 뉴트의 일행의 모습은 닥터 스트레인지가 보여준 주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오히려 잘만 전개했다면 닥터 스트레인지에 비해서 더더욱 좋아졌을 거야. 닥터 스트레인지는 눈에 띄는 사회 반영 요소가 적었거든. 그야말로 마법사, 히어로의 이야기라 주제가 그저 그런대로 흘러가고 관객에게 와닿지 않는 면이 없지 않았어. 그런 반면, 신비한 동물사전은 첨예하게 이어지는 혐오와 차별, 그저 마법사란 이유, 그저 노마지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그 사이에서 나온 부산물 옵스큐러스조차 일말의 이해를 할 생각도 없이 소거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냉정한 모습은 현실과 별 다를 바 없지.
그런데, 영화 내내 이런 주제는 자신들보다 큰 단점을 지닌 닥터 스트레인지보다 더 부각이 되지 않았는데, 아집과 통제를 타파해야 할 뉴트가 어디까지나 잘못된 통제에 순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야. 이는 사실상 이 작품의 유일한 노마지 조연 코왈스키를 제외한 모두가 보여주는 문제점이야.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아집과 통제가 나쁘지만 적극적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이에 더해 옵스큐러스에 대한 공포감만 극대화 되어서 단순히 위험한 힘으로 규정하는 미국 마법지부가 전혀 잘못되어 보이게 됐지.
거기에 모든 인물이 평면적이어서 뉴트 일행은 계속해서 선했고, 마법지부의 사람들은 계속 아집에 매여있기만 했지.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옮겨다니는 입체적인 모습은 가장 음험하고 존재감 없던 크레던스에게만 보였어. 이런 모양이다보니 언젠가 뉴트 일행이 이기는 것도 당연해보였고, 아무리 휘황찬란한 전투가 지루해 보일 수 밖에.
두 작품이 보여주던 주제는 모두 현대시대에 너무나 어울리는 주제야. 인물들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고, 개성적인 캐릭터들도 많았지. 시각효과와 음향효과도 최첨단을 달렸고. 앞에서는 진부한 소재를 비벼놓은 두 작품이라고 했지만, 그만큼이나 긍정적인 면들도 많았던 두 작품이야. 결국 얼마나 '새로워 보이느냐'의 싸움이었지. 결국 더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 '닥터 스트레인지'의 승리라고 생각해. 두 번 봐도 새로울 그런 작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닥터 스트레인지'라고 말할거야.
진부한 것도 언제든지 좋아. 20년 된 보이차를 조금씩 매일 먹어도 그건 언제든지 행복한 일이듯이. 하지만 그건 그 것이 좋은 차였을 때의 이야기지. 그 진부함이 날이 갈 수록 더 깊은 모습,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하지만 되려 날이 갈 수록 맛을 볼 때마다 맛을 잃어가는 차라면 처음 맛을 기억하면서 입맛을 다시게 될 수 밖에.
아직 한 작품 밖에 안 봤다고? 그러면 두 작품 모두 보면 어떤가? 내가 이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동시에 다른 곳에서 만든 같은 차 두 잔을 비교할 수 있는 건 새로운 경험이라고. 자네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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