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 오랜만이었어. 어디를 가도 나쁜 사건으로든 좋은 사건으로든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세계를 흔들다니 말이야.
일본 내에서는 지브리의 모든 작품보다 흥행했고, 우리 나라에서도 겨울왕국 이래로 어디 가서 서로 안부를 물을 때 봤냐고 묻는 애니메이션은 오랜만이었지. '너의 이름은 봤어?' 이런 대화가 한창 주변의 인사나 다름없었어.
무엇이 이렇게 세상을 움직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가 아닌 사회현상의 가까운 그 작품을 1달 전 쯤 봤었어. 그리고 한달이 지나 아직도 상영은 하지만 극장에서 다 내릴 즈음. 평단의 평가가 다 올라오고 온갖 페이지에서 작품의 분석을 마칠 즈음, 자네와 이렇게 상에 앉아서 이 작품을 입에 올린 이유는 '조심스러워서'일거야. 이 글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오늘은 그동안 곱씹었던 '너의 이름은.'을 음미해볼까 해.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감상하지 않으신 분들은 감상하시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라고 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스토리와, 음악과, 장면 연출이라고 생각해. 보통의 멀티미디어 예술이라면 다 그렇지만 말이야.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음악과 장면 연출에 있어서는 만점에 가까웠다고 생각해.
보통의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은 영화 음악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음악 감독이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고, 테마곡 정도만 가수에게 부르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일본 유명 록밴드인 'RADWIMPS'(이하 '랏도')에게 OST전체를 맡겼어. 그래서 작품 내에서 모든 곡의 통일성이 뛰어난 걸 느낄 수 있고,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는 대본을 보고 만든 곡에 맞춰 다시 한 번 장면을 수정하면서 노래가 장면에 붕 뜨는게 아닌 서로가 더할 나위 없이 잘 붙어서 매끄럽게 전달 될 수 있었어. 어떻게 보면 뮤지컬 영화보다 더 뮤지컬 영화스러운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어.
장면 연출에 대해서 보자면 신카이 감독을 싫어하는 이들도 장면연출은 감독이 가진 최고의 재능이라고 말할 정도로 감독의 전작부터 믿고 볼 수 있는 요소였어. 이전까지의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증명했던 빛을 최대한 이용한 사실감 넘치는 작화에 로우와 하이를 번잡스럽지 않게 옮겨가는 모습은 이 감독이 정말로 천재구나라고 생각했지.
남은 것은 스토리적인 면인데, 솔직하게 나는 이 작품의 스토리가 참신하거나 놀라운 플롯은 아니라고 생각해. 예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누군가를 만나는 이야기도 많았고, 남녀가 몸이 뒤바뀌는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많았어. 당장 나만해도 드라마 '시크릿가든'과는 어떻게 다를려나 라는 반은 김빠진 느낌으로 들어갔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스토리는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고는 해도 진부하다던가,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는 듣기 힘들어. 왜일까? 먼저 영화를 보는 동안 등장인물의 상황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서야. 초반에는 친숙함으로 사람을 매료시켜. 도시에서 사는 적당하게 살고, 적당하게 아르바이트 하는 평범한 남고생과, 시골에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불만인 여고생은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더라도 감정이입하기 쉽지.
그렇기에 몸이 바뀐다고 해도 등장인물도, 관객들도 크게 당황하지 않아. 급작스럽게 사장행세를 해야한다던가, 거지꼴이 되서 치욕을 느끼는 것이 아니야. 그저 성별에 맞춰서 행동을 조금만 달리 하며 학교를 다니고 밥을 먹고 잠을 자지. 소소하게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의 핸드폰 안 다이어리에 기록을 남기는 건 연애편지가 되어가지. 당황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적으면서도 그게 당연한 스토리와 연출은 한층 더 이해하기 편하고 몰입하기 쉽지.
이렇게 초반부동안 스피디하게 '타키'와 '미츠하'라는 인물을 관객이 자신과 동일시시킬 즈음, 만나서 무슨일이 있겠지, 아니면 만나러 가는 동안 무슨일이 있겠지 싶은 그 순간 감독은 '미츠하'라는 인물을 죽여. 단순히 미츠하를 죽이는 게 아니라, 미츠하의 눈으로 본 세상 또한 같이 없애버리지. 운석충돌이란 사건으로 한 순간에 말이야.
이 한순간, 미츠하와 일체화했던 관객들이 미츠하를 잃어버리는 그 상실의 순간을 감독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자세하게, 그리고 건조하게 표현해. 인물 하나하나를 표현해서 아비규환으로 만들고, 처절하게 보여줄 수도 있었을거야. 하지만 감독은 그 대신 뉴스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영상같이 표현해. 그 편이 우리에게 더 '익숙한 아픔의 형태'여서라고 생각해.
익숙한 아픔. 내가 직접 보지도 못했고, 그 사람에게 어느 한 마디 듣지도 못한 채 한 순간에 영원히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몇 번이고 반복되는 사실 앞에서도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그 익숙한 아픔을 감독은 관객이 알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 옆 학교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만으로,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아픔을 느끼는게 사람이니까.
미츠하의 삶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관객들은 미츠하의 죽음 위에 자신들이 겪었던 그 익숙한 상실감을 덮어씌워. 이 작품은 미츠하의 죽음 이후, 이를 돌려놓기 위한 타키의 발걸음부터 스토리의 호흡이 빨라지고 개연성이 부족한 곳도 많이 보여. 몸이 바뀐다는 시점에서 충분히 비현실적이지만, 미츠하가 만들어둔 쿠치카미자케를 마시고 과거와 맞닿는 비현실성이 빠르고 불친절하게 튀어나오지. 하지만 관객들은 그것을 자연스래 받아들여. 영화라서가 아니라, 자신도 그런 비현실성을 딛고서라도 살려두고 싶은 사람이, 없던 것으로 하고 싶은 현실감 없는 사건이 많으니까. 그런 비현실성과 적은 개연성은 관객들의 절박함으로 덮어지는거야. 스토리는 이정도면 충분한거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누군가를 찾고 있다."
감독은 직접 운석 충돌로 인한 재해를 세월호에서 찾았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어. '가만히 있으라'는 관청의 안내 방송은 그 당시 선장이 내린 방송과 같아. 수 많은 이들이 순식간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 선체조차 인양도 못하고 있으니 그 장소마저 사라졌지. 우리는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 이름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아직도 찾고 있고 문득 문득 눈물이 날 때도 있지.
이 작품은 그런 이름도 모르는, 점점 잊혀져 가는 많은 참사의 희생자들과, 그를 잊어감에도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추모이자 위로라고 생각해. 이름도 모르지만,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 그들의 생명은 사라졌고, 우리는 평생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되뇌이겠지. 그 일이 삼풍 백화점 붕괴, 9.11.테러, 동일본 대지진,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작게는 여기 저기의 교통사고까지. 우리가 손도 댈 수 없었고, 지금까지도 그 아픔을 지울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계속 반복되고 있지. 그 무력감과 슬픔을 감독은 타키와 미츠하의 비현실적인 노력으로 사건을 지워내고, 다시 만나는 것을 보여주면서 위로하고 있어. 이름도 모르지만.
"소중한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
누군가는 지겹게 말하고 아파하느니 잊으라고 말하지만, 이 작품을 본 나로서는 잊는 것보다 아련하게 얼굴과 이름을 알지 못하고 기억에서 희미해져도 아파하는게 맞다고 생각해. 분명 손을 댈 수 없는 사건은 또 일어나겠지. 전의 사건들과 이런 작품을 통해서 예방해야겠지만 말이야. 그럼에도 분명히 어디선가는 일어나게 될거야. 그 때, 우리가 그 아픔을 잊고 있다면 감독처럼 더 아파할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진 않을거야. 그건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과정이 될테고, 어쩌면 그렇기에 나 혼자 살아남고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잊으라 말하거나 해결책을 던지는 것이 아닌 그저 위로해주는 작품을 본 적이 얼마나 되던가 싶어. 그동안 현실을 기반으로 한 꽤 많은 재난 영화가 사람들의 아픔위에 날카로운 비판을 돋게 하거나, 과하게 슬퍼하게 만들어 위로는 커녕 지치게 만들었거든. 그런데 오히려 있지도 않은 재난과, 비현실적인 방법을 쓴 소소한 사랑 얘기가 더 많은 위로를 주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행복한 경험이었어.
우리의 이 아픔은 소중하고 잊지 말아야 할 자산임을 느끼게 해 준 이 작품을 자네같이 소중한 사람들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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