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움직인다고만 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의지를 따라 살아간다면, 그것이 비록 죽음을 향하더라도 그 삶은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긍정일 것이다.
박열. 자신을 개새끼라 부르는 무정부주의자가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그대로 쓴 영화, ‘박열’은 그와 그의 반쪽, 동지인 가네다 후미코의 일생을 가감없이 그려가며 그들이 정말로 싸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담담하고 위트있게 보여준다.
그는 독립운동가였다. 아나키스트, 마치 모든 체제를 부정하고 혼란만을 꿈꾼다고 오해를 받는 이 사상을 등에 진 박열은 누구보다 아나키스트였기 때문에 독립운동가였다. 제국주의란 이름, 전체주의라는 이름이 수많은 한민족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그 체제를 미워했다. 더 나아가 그런 말도 안되는 체제 아래에서 신음하는 일본의 백성들에게도 자유를 주기를 원했다. 그는 모두의 독립을 원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투쟁은 당시 일본 내각을 쥐고 흔들었고, 무력하게 조롱만 하는 것으로 보여도 내각의 붕괴를 이끌어내어 그들 스스로의 모순의 구멍을 후벼파냈다. 그는 그의 사상대로 한 사람을 죽이지 않고 한 국가의 사상을 향해 폭탄을 날린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는 근래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짜임새 있다. 물론 계속해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완성도의 영화가 연달아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서도 근래 나온 영화 중에 손에 꼽을 수 있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이제훈과 최희서를 필두로 연기자들의 연기는 신기할 정도로 작품에 녹아있었고, 재판록과 평전 등을 일본에서 가져와 철저히 고증한 시나리오는 그들의 삶이 가장 큰 드라마임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가 기여한, 그가 그의 22년이라는 세월을 보태 만들어진 자유가 가득한 2017년에서 그의 일생을 그린 영화에 대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그의 삶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지루하다,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가 결국 해낸 것이 무엇이냐로 시작하여 그가 가진 아나키즘 자체를 비난하는 것에까지 이른다. 그가 무엇을 잘못했던 것인가? 아니다. 단지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풀지 못한 마주한 슬픈 자화상일 뿐이다.
단순히 길가는 일본인과 중국인을 가지고 도매금으로 욕하고, 더 나아가서 일본어를 배운다, 중국어를 배운다는 이유만으로 쪽발이, 짱개 소리를 듣는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를 혐오한다. 이는 국가 전체 분위기에 이른다. ‘박열’에서 박열이 정면을 바라보고 당당히 말하는 한 마디. ‘내가 일본의 정권은 싫어해도 오히려 일본 민중과는 친근감이 들어’ 라는 말 한마디조차 현실에서 하게 된다면 온갖 매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어 한 아나키스트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 친일파가 된다.
이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너희 나라를’ 극단적으로 미워하는 모습은 당연하게 여전히 질이 떨어지는 제품, 컨텐츠의 질을 올리지 않고, 일한 데 대한 정당한 보수를 주지 않으면서도 ‘우리나라’라는 이름을 붙혀서 입을 닫게 만들려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이용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아리랑’과 ‘김치’를 필두로 하는 ‘우리나라’는 면죄부이자 위기청산을 위한 히든카드다. 마치 ‘우리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라며 학살을 당연하고 당당한 일로 만들던 박열 당시 일본 내각들이 하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아직 하나의 사상 아래 얽매여 있다.
그렇기에, ‘박열’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지 못한다. 물론 그만큼 많은 박수를 다른 편에서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박수를 치지 않는 사람들의 뒤에서 어른거리는 사슬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그가 혐오하던 천황일가의 제국주의와 일본은 무너졌지만, 그와 별 다를 바가 없는 소수의 사람들의 이득을 위해 이용당하는 ‘우리 나라’’가 박열에게 어떻게 비칠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직도 그는 자신을 ‘개새끼’라 칭할 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동포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살짝은 비웃는 그 얼굴로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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