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제나 만들어지고, 발전되고 어느 순간 거짓말같이 붕괴된다. 이는 거짓말처럼 크게 일어나기도, 소규모로 천천히 전환되기도 한다.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지금의 이 세계가 만들어지기까지 몇 번이고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럼 지금부터, 그 중에서 한 순간에 모든 나라가 무너지게 된 한 전쟁을 중점으로 조명하려고 한다.
01. 붕괴의 전조_아편전쟁
제국주의의 광기가 점점 눈에 보이게 발전해가던 19세기 후반, 하나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름은 단순히 ‘청일전쟁’이라 붙여졌지만, 그 이름과는 달리, 그 전쟁은 청, 조선, 일본의 동아시아 3국과 서구 열강들이 얽힌 지금까지의 동아시아 세계가 송두리째 무너지게 된 첫 폭발이 되었다.
그 전에 필연적으로 봐야 할 충돌이 하나. 바로 아편전쟁이다. 19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새로운 목적지로 인식하게 되고,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이전 수 만년의 시간 동안 큰 변동없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를 사이에서 패자였던 중국의 ‘책봉-조공’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자부심과, 높은 사상적 기반을 다지고 있어 ‘더 나은 것들을 가지고 교화’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가 침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 중 영국이 찾게 된 도구는 아편이었고, 청에 밀반입해 중국인들부터 교화하기에 적합한 모습으로 만들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청은 이를 그저 두고 보지 않고 제재를 가했고, 이를 영국과 영국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 전쟁을 시작했다. 이가 1840년 아편전쟁이다. 아무리 사상적으로 뛰어나다 해도, 산업화되어 어떤 사람이든 같은 살상력을 가질 수 있게 된 총기를 보급하고 있는 영국에게 평화 속에서 잠자고 있던 청의 군사가 이길 수 없었고, 처참한 패배만 안게 된다.
02. 일본의 붕괴
청의 처참한 붕괴는 곧 지금껏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동아시아의 모든 것이 최선이 아니고, 이대로는 모든 것이 위험하다는 명시적인 신호였다. 이를 동아시아에서 받아들인 모습은 두가지였는데, 불운으로 치부하면서 중국의 견고함과 자신의 세계의 완벽함을 새기는 이들이 있었고, 이 세계가 단순히 중국과 동아시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지금의 동아시아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 것 자신들을 덮친다는 현실을 직시한 이들로 나뉘어졌다. 이 중, 극단적으로 후자의 의견이 압도적으로 밀어붙여진 이들이 있었는데, 일본이었다. 이들은 청의 패배와 함께 무력한 막부의 개항으로 책봉-조공과는 완전히 다른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미 ‘화혼양재’같은 말로는 번드르르한 개혁으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의 막부에 대한 불신까지 가득 쌓이게 되었고, 이는 결국 자신들의 세계가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무력한 껍데기일 뿐인 것을 외치며 막부를 타도, 메이지 유신과 함께 신정부를 개막한다.
일본의 급격한 막부 체제 붕괴와 메이지 유신은 동아시아가 이미 그들의 세계를 그대로 가지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늦었음을 알려주는 간판과 같은 것이었다. 청, 조선, 일본 등의 동아시아는 너무나 오래 정권이 고착화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수천년의 견고한 책봉-조공 시스템도 불평등조약보다 힘 없는 무력한 관계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너무 고였고, 제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스스로 무너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본은 그것을 해냈고, 동아시아 최초로 서구와 같은 테이블에서 얘기하기 시작했으며, 서구 제국주의의 방식으로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려 하기 시작했다. .
03. 청일 전쟁의 시작과 조선의 붕괴
그리고 일본과는 대비되게 극적으로 체제가 붕괴된 국가가 있었다. 조선이었다. 조선의 유교적, 중화적 기반은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에 맞춰져 있었고, 중국이 양무운동을 시작할 때까지도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고, 동아시아라는 하나의 세계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조선의 대처는 미흡했고, 이를 자신들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파고든 일본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상당수 내주기 시작했다. 무력하게 조선 정부는 불평등조약을 맺고 휘둘렸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일본과는 달리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본은 마음껏 조선을 중국의 시스템 안에서 떼어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중국까지 노리기 위해 차근차근 조선 정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임오군란으로 인한 흥선대원군의 집정과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청에게 넘겨주었다. 청은 서양의 기술만큼은 받아들이자는 양무운동을 계속하고 있었고, 조선이라는 가장 큰 영향권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리고 이 때, 어쩌면 모든 것을 조선이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붕괴시키고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동학농민운동’이었다. 위에서부터가 아닌 밑에서부터의 개혁의 바람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새로운 조선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때, 조선의 조정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동학농민운동의 진압을 요청했고, 일본은 다시 오지 않을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잡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텐진조약을 빌미로 인천으로 파병했다.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은 동학군은 정부와의 협의로 해산했지만, 이미 인천으로 파병한 일본은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관심은 없이, 청을 조선에서 몰아내고, 자신들의 영향을 굳히기 위해 갑오개혁을 요구하는 등 내정 간섭을 하며, 급기야 경복궁을 정복하였다.
청은 이들을 막기 위해 러시아와 영국에게 급하게 도움을 청했으나, 어떻게 되든 남하하기 위한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았고, 영국은 이미 비밀리에 맺어진 영-일동맹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적당하게 둘러댈 뿐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결국 다급한 청은 인천에 정박한 일본 함대를 상대로 교전을 시작한다.
결국 청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조선은 최악의 형태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앞서 그들 스스로가 붕괴시키고 재구축하였고, 중국 또한 서구 열강에게 휘둘렸으나, 자국의 붕괴와 구축을 맡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선은 당시의 정권유지를 위해 청을 불러들이면서 스스로의 손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고 자국의 자주권마저 타국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양새로 전락하게 되었다. 청일전쟁이 시작되고 끝나고, 그 이후로도 결국 조선은 일본, 러시아, 청에게 계속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대신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는 처참한 국가의 자주성의 붕괴를 맞게 된다.
04. 청일전쟁과 동아시아의 붕괴
중대한 전쟁이었던 청일전쟁은 그 중요성과 8개월간의 전투라고 하기에는 단순하게 전개되었다. 일본군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물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홍장의 사병 집단에 가까웠던 청군은 제대로 된 군의 모양새도 갖추지 못했고 소극적인 교전만 벌이며 조선에서 퇴각했고, 일본은 다롄과 뤼순으로 밀어붙이며 청을 압박했다. 결국 총리가 주화파로 바뀌고 나서, 청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청일전쟁의 종결과 시모노세키조약은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가 전면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지금껏 청은 서양의 잘 모르는 오랑캐에게 불행히 지게 된 정도로 동아시아 세계 내에서는 중국이라는 중심을 계속해서 지켜내고 있었는데, 청일전쟁의 패배와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동아시아 세계 내에서 언제나 존재해왔던 일본이라는 책봉국이 그 시스템을 부수고 자신들에게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요동반도를 뺏고, 조선을 지금껏 이어오던 책봉국의 위치에서 끊어내 버리는 등 지금까지의 모든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 질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철저하게 청에게 현재의 위치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전쟁 이후, 번듯하게 책봉과 조공으로 묶인,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세계를 역사 속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라가 아닌, 글이 생기고 역사가 생기고 나서부터 조금씩 다를 뿐 중심은 같던 세계가 붕괴하고 만 것이다.
05. 붕괴가 만들어낸 것은
위에서 보았듯이, 아편전쟁으로 시작되었던 한 세계의 붕괴는 일본, 조선을 지나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었다. 세계가 붕괴된 자리에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났는지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동아시아라는 세계가 물리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닌, 역사라는 흐름 안에서 버티지 못하고 스러진 것이라면, 그에 걸맞게 버티고 서있는 세계가 등장할 것이다.
이후 동아시아 세계는 한참 격동하며 근대국가들의 집합으로 재편된다. 중국은 변법자강운동의 실패와 의화단 운동의 실패를 연이어 겪으면서 열강의 반 식민지화가 되었지만, 그 실패 가운데서 소수의 지식인에게 맡긴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신해혁명으로 치닫게 된다. 제국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공화국으로 재편된다.
또한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유럽열강이면서 아시아의 세계 질서 안에 들어오게 되고, 조선은 잇단 실패 가운데 어떻게든 어깨를 맞추기 위해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꾼다. 일본은 이 후, 러일전쟁까지 성공하면서, 삼국간섭 당시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더 적극적인 제국주의 의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청일전쟁 이후, 동아시아는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이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뒤로 계속된 전쟁의 광기 가운데 무슨 세계가 재편되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결국 이 모든 파도가 잠잠해지고 난 후, 아시아는 제대로 된 세계를 갖추게 된다. 서로가 대등하고 서로를 언제나 견제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국가적 모습으로. 청일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수 만년의 세계를 붕괴했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느끼며 사는 이 세계를 만들어 낸 전쟁이기도 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장이 레포트로 쓴 글 중 하나인데, 역시 하나 하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카페 한 구석에 올려둬. 조만간 역사 메뉴도 만들고 싶지만, 배움이 부족해서..... 지금 봐도 그렇게 잘 쓴 글은 아니지만, 하나 하나 소중한 과정인만큼 그 때 그때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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