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아시아, 인문학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와 청년에 대한 귀인이론적 접근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누구나 들어본 에디슨의 가장 유명한 말이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고, 가장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말을 격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사용하면 돌아오는 것은 원망 섞인 비난뿐일 것이다. 왜 젊은이들은 노력이라는 말에 신경질 적으로 반응하는가? 그에 대한 의문을 귀인 이론에 비춰 보기로 했다.

글을 쓰고 있지만, 나 또한 노력에 대해 의심을 품을 정도로, 이 사회의 젊은이에게 노력이란 말은 단지 허울만 좋은 짜증나는 구세대의 울림 정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는 동안 많은 중,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과 교수, 그리고 수많은 강연에서 화려하게 성공한 많은 연사들에게 노력에 대한 중요성을 들어왔지만, 나에게는 단지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 이유를 알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정말 노력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가?’

답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아니오이다. 행위자의 행동을 관찰해 그 원인을 추리하거나 환경 내에 있는 실체의 기질적인 속성을 지각하여 추리하는 과정귀인(attribution)’이라 한다. 이 귀인이론을 기본적으로 놓고 볼 때,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찾는데 통제 소재, 안정석, 통제 가능성, 이 세 통제차원을 비교하면 가장 바람직한 귀인은 단연 노력이다. 노력하는 주체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므로, 원인의 통제 소재는 자기 자신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시간과 상황에 따라 언제나 바뀌는 불안정성을 가졌고, 자신에 의지에 따라서 통제가 가능하므로 바람직한 귀인, 즉 바람직한 귀인의 결과를 이끌어 더욱 더 나은 행동으로 이끌어갈 귀인은 노력일 수 밖에 없다. 어떤 목표에 대한 수행이 실패 했을 때, 노력 부족으로 귀인한 사람은 이후 수행에서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고, 성공했을 때 노력으로 귀인한 사람은 노력 없이는 성공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다음 목표 수행에 있어서도 자신의 최선을 다할 것이니, 자기발전에 가장 도움이 되는 요소가 노력임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 그리고 지금의 이 세대의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에 큰 거부감을 느끼고 바르게 귀인하지 못하고 있다. 노력이 정당한 귀인인 것을 모르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많은 연구자료와 그를 토대로 한 수많은 책들이 이미 넘치도록 있다. 노력하면 그 만큼의 결과가 가장 정직하게 나오고, 그것을 양분 삼아서 다음 과제 수행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앎에도 노력에 대한 강조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안정적인 귀인이 이루어졌을 때, 다시 미래의 목표성취에 대한 기대감이 자연스레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앞에서 말했듯이 자신이 정한 목표를 수행하여 실패했거나 성공한 것이 결과의 전부였다면 당연하게 노력에 대한 귀인이 이루어질 것이다. 목표부터 행동까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개인이 자기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적절한 기대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평가되고, , , 고등학교를 거치며 1등만을 강조하며, 누군가를 밟고, 희생하는 법을 주입하는 교육법. 부모가 일생을 계획하며, 무조건 서울로 올라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젊은이들이다. 그런 대학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 남아 있는 건 누구보다 많은 자격증과 해외경험, 좋은 집안과 결혼. 모든 것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한 판에 박힌 하나의 길을 따르게 된다.


학습된 무기력. 실패를 통제할 수 없는 원인으로 귀인시킬 때 일어나는 부정적 행동양상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빠져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학습된 무기력과는 좀 다르다. 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원인이라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현재 한국의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가 젊은이에게 주는 목표는 그들이 원한 것도 아니고, 능력을 넘어선 것도 많다. 단순히 노력 하나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높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능한 목표인 것이다. 이런 것을 빠르게는 유치원, 아무리 늦어도 중학교 시절부터 계속해서 강요당하고 계속해서 실패한다. 자의적인 행동이 실패했을 때도 무기력을 학습하는 게 사람인데, 원치 않는 목표를 강요하는 것과 그에 따른 실패는 더욱 더 빠르게 무기력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노력을 아무리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귀인을 수없이 반복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없다.’라는 확신만 돌아오는 것이다. 교재에 적혀 있는 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왜 나라고 못하겠습니까?’라는 말에그가 하고, 그녀가 하는 것은 그들이 나보다 우월하기 때문일 뿐이다.’라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또한 귀인으로 노력을 말하는 사람들이 당사자가 아닌 기성세대의 훈계라는 게, 그것도 귀인의 오류투성이라는 것이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원인이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것이 우리는 환경이 어려웠음에도 노력했는데 너희는 환경이 좋음에도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귀인오류다. 듣는 사람의 환경은 될 수 있는 한 축소시키고, 자신의 환경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인데,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 젊은이에게 그 말은 기성 세대가 자신의 대단함을 어필하고 듣는 사람은 못하다는 느낌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에 내가 젊을 때 다 해봐서 네 생각 다 안다는 독심술적 사고까지 곁들여지면 단순히 긍정적으로 귀인을 하라고 말하는 조언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죄책감만 불러일으키는 오지랖이 될 뿐이다. 전혀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학습된 무기력을 완화시키고 올바른 노력을 재개할 수 있는 적절한 타개책이 될 수 있을까?

먼저 현재 젊은이들의 성과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칭찬이 인색한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올바른 귀인이라면 당연히 주위의 적절한 반응 또한 귀인형성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행위자 노력이 성과를 불러 일으킨 것이라고 주변에서 계속해서 얘기해준다면 그것이 하나의 보상이 되어 행위자에게 자부심을 주게 되고, 곧 자신의 노력이 성과를 이룬 원인이라고 자연스럽고 더 쉽게 귀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의 사회는 행위자가 무언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이루어 냈을 때, 취직이며 결혼 등을 들면서 열심히 행위자의 성과를 얼마나 하찮고 볼 것 없는 것인지 계속해서 강조한다. 또한, 그들이 원하는 것에 부합하는 것에 맞는 성과를 이뤘다 하더라도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겨우 그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등으로 한 순간의 자부심을 느낄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이는 정상적인 귀인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행위자의 노력을 짚어주지 않아 자부심이 아닌, 오히려 수치심을 느낄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사회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성과를 이룬 것이면 그것에 대한 행위자의 노력을 칭찬해 줄 풍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그렇게 하여 행위자 스스로 노력으로 귀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급선무다.

또한 이와 이어서, 사회 전반이 요구하는 높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극단적인 자본주의 안에서 계속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듯, 현재의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사실 필요한 사람만이 얻어도 되는 것을 스펙이라 부르면서 모든 젊은이들의 성과를 그가 얼마나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해 보였는가가 아닌, ‘평균적으로 요구되는 스펙보다 얼마나 더 많은 스펙을 쌓아놨는가?’같은 것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학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학문, 분야에 집중하고 성과를 내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단순히 계량화된, 그리고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높아만 지는 사회적 기대치만을 자신들이 달성해야 할 과업으로 여기고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본디 필요한 사람만이 얻으면 되는 자격 같은 것들이 평균적 기대치로 작용하는 이 사회에서 그 기대치에 완벽하게 부응할 사람은 많지 않고, 부응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기대치가 아니므로 제대로 된 귀인은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정부 차원에서 꺼트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당하듯이, 우리 사회는 도처에 만연한 거품 낀 스펙이라는 이름의 기대치를 낮추어 자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을 쉽게 달성하고, 다음 고지를 찾아 나서면서 바르게 귀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젊은이들에게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젊은이 대다수의 이야기이다. 사실은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다. 언제나 내 노력은 짓밟히고 그 정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살아온 내 얘기다. 예술은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 이상은 있어야 취직 언저리라도 할 수 있다수없이 들으며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수업 중 노력이 가장 좋은 귀인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다시 느꼈다. 노력은 확실히 배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정한,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인정 받을 수 있을 때 이야기라는 것을.노력충같은 말이 생기며 오히려 노력에 대해서 조소하게 된 이 시대다. 학습된 무기력이 젊은 세대의 마지막 노력까지 삼켜버리기 전에, 모두가 그들의 바른 귀인을 위해 정말 노력해야 할 때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