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 사람은 누구나 완벽주의자라는 말도 있을만큼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곳을 찾아내는 데 열심이고, 또 그것을 어떻게든 메우려고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을 바치지. 이게 심리학적으로든, 문학적으로든, 단순히 효율문제에서든, 완벽함은 누구든지 쉽게 매혹시킬 수 있는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최고의 덕목, 가장 큰 매력, 성공의 지름길. 어떻게든 설명되는 이 '완벽'. 오늘은 그 것에 대해 얘기해보려 하네.
자, 여기 농구 코트가 있어. 그리고 이 농구에 청춘을 바치는 이들도 있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갈등도 있어. 아, 땀내음이 흘러넘치는 스포츠 만화겠네. 그렇지? 스포츠만화라면 뭐가 있을까. 역시 앞뒤 모르고 달려드는 노력과, 단순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외침과, 곧 무너질 것 같은 갈등에,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는 성장이 있겠지. 단순하면서도 아주 명료한, 현실의 스포츠가 각본없는 드라마라 불리기에 가장 극적인 드라마를 써내려갈 수 있는 그런 장르에서 조금은 독특한 작품이 하나 있어.
'쿠로코의 농구'. 혹자는 여성독자에게나 먹힐 작품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스포츠만화의 알맹이는 들어있지 않다고도 말하는 다른 스포츠만화와는 살짝 다른 평을 받는 이 농구만화. 물론, 이 만화에도 앞에서 말했던 모든 스포츠만화의 특징들은 들어있어. 하지만 여전히 다른 작품에 비해서 튀는 이유는 왜일까?
대다수의 스포츠만화의 흐름은 이렇지. 별 볼 일 없는,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스포츠 동아리에 입부하고, 상황이 너무나도 안 좋은 팀원들의 중심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최고를 꿈꾸지. 어쩌면 세상이 팀 스포츠에게 원하는 모든 것일지도 몰라. 주인장은 야구를 좋아하는데, 야구에서 빛을 발하는 많은 선수 중에서도 특히나 줄어들지 않는 인기를 가지는 이들이 있어. 그들의 공통점은 처음부터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다는 점이지. 자신의 부족함을 자신의 땀으로, 팀원들과의 호흡으로 메꿔가는 이들을 보며 현실에서도 열광하고, 창작물에서도 찾아가는 거지.
그런데 이 만화를 보자. 일단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두 명. 쿠로코 테츠야와 카가미 타이가. 그리고 이들이 쓰러트려야 하는 호적수이면서 주역들은 '기적의 세대'. 일단 이 주역 7명을 보면 쿠로코 테츠야를 제외한 모두가 실제로라면 NBA에서나 할 수 있는 플레이가 가능한 그 세대의 천재들로 칭송받는 이들이야. 이미 별 볼 일 없는 아이들도 없고, 막연한 동경은 커녕 이미 프로 지명 1순위인 이들 뿐이지. 이미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는, 스포츠로서는 가장 재미없는 전개지. 이미 더 이상 발전할 곳도 없이 완성되어 있는 이들에게 어떤 드라마를 더 원한다는 걸까?
어 잠깐만, 어딘가 말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표정인데, 우리가 완벽이 얼마나 사람들이 원하는 미덕인지, 그렇게 늘어놓고는 이제는 완벽이 가장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느냐는 그 문제라면 안그래도 말하려고 했네.
참 신기하지. 그렇게 완벽함을 원하면서 정작 완벽한 인간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부러움도 경외감도 아닌, 어딘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쾌감이니까 말이야. '재미없어'라든지, '재수없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열등감에서일까, 두려움에서일까.
그리고 이런 완벽한 이들을 향한 본질적인 불쾌감이 어느정도 사그라들고 나면, 우리는 그 완벽한 상황과 완벽한 사람에 대해 우리의 감정을 전이해가며 보게 되지. 그러고 나면 정말로 우리가 완벽하다 생각했던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그들이 통제하고 있는 완벽한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 수 있게 되지.
'기적의 세대'는 완벽했어. 그 누구보다 농구를 좋아했고 그들의 세대에서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지. 거기에 환상의 식스맨인 '쿠로코 테츠야'까지 가세하니 그들의 농구는 질 수 없었고, 그들의 인생도 거칠 것이 없었어. 문제는 그 모두가 탐내는 완벽한 재능과, 그들의 완벽한 열정이 만들어낸 완벽한 팀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느냐는거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는 절망과, 불쾌함은 다른 이들이 그들을 피하기에 충분한 완벽함이었고, 역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질 수 없다는 절망과, 떠나간 불완전한 이들을 향한 불쾌함은 그들이 다른 이들을 피하기에 충분한 완벽함이었지. 그리고 겨우 중학생인 이들이 느끼게 된 완벽한 농구는 그들의 인생과 성격 전반이 완벽은 커녕 깨진 유리조각만큼이나 부스러지는 결과를 낳아.
작가는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에 오히려 부스러진 '기적의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의문을 던져. 단순히 작품 밖에 있는 독자에게 의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 독자의 단면들을 투영해 작품 속에 집어넣으면서 이 안쓰러운 '기적의 세대'를 돌려낼 방법을 같이 찾아가지. 바로 '쿠로코 테츠야'야. 그들의 과거를 모두 알고 이해하던 기량은 거의 없던 식스맨,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존재감이 적은 그의 모습은 작품 안에 존재하는 캐릭터로서도 매력적이지만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살짝 벌려 독자가 쿠로코를 통해 '기적의 세대'의 부서진 모습을 거부감 없이 보면서 공감할 수 있게 했지.
이렇게 쿠로코를 통해 독자들은 부서지지 않는 새로운 완벽을 '기적의 세대'에게 주기 위해 쉴 새 없이 생각하며 따라가. 그들이 다시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완벽한 농구'를 위한 방법을.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의 사유는 여기서 멈추게 될거야. '완벽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어떤 면에 있어서도 말이야.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결핍은 커지고, 완벽하다고 자랑하는 많은 화려한 기술들은 그들의 인생 전반의 결핍을 가리기 위한 발버둥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결함투성이인 '쿠로코'와 '세이린 고교'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과연 그 완벽한 농구란게, 완벽한 인간이 가능한가 싶지.
하지만 나는, 작가가 완벽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생각해. 물론, 더 이상 질 수도 없고 모두에게 배척당하는 그런 완벽함이 아니라-이미 그 시점에서 완벽한 것이 아니기에-다른 형태의 우리가 완벽하다고 느끼기에는 시시할 정도의 완벽함이 존재한다고 말이야. 바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것.
'참 실없는 소리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쿠로코가 하는 농구는, 그의 농구는 '기적의 세대'들의 농구보다 몇 배 더 완벽했고 가슴 뛰었지. 오히려 결함만 잔뜩이고, 결말 때는 1년 뒤를 기약하기도 힘든 정말로 완벽과는 거리가 먼 농구였지만, 분명히 그 농구가 고등학교가 되어서도 완벽했었던 '기적의 세대'의 농구보다 완벽했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거야. 단지 만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걸 현실로 끌고와도 참 그렇다고 생각해.
우리는 완벽을 추구해, 하지만 그 기준으로 봤을 때는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를 사랑하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던 '완벽'이라는 전제부터가 달랐던거야. 슬램덩크가 그들의 실패로 마무리 짓는 것이 완벽했던 것이었고, 신고선수로 시작해 메이저리거가 된 야구선수의 이야기가 미래는 불투명하더라도 완벽했던거야. 우리가 원했던 완벽은 그거였던거지. 누구도 자신에게 대적하지 못할 만큼 고고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닌 결핍을 숨기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좋아하는 이들과 그 것을 나누는 것.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상상했던, '기적의 세대'처럼 완벽한 이들을 보고 느끼는 우리의 기분과, 마지막 권의 이 '쿠로코'의 웃음 가운데 우리에게 완벽하게 행복한 기분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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