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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음악

[2.22 일일음악] 빨래 (이적)

- 이 앞으로는 주인장과 단골의 관계에서 편하게 이뤄지는 대화의 형식을 가져오고 있음을 공지합니다.

또 열흘만이군. 이래서는 얼굴 내미는게 부끄러워질 정도야. 걱정말게. 뭐 계속 바쁜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그 중에 가장 바쁜건 한 차례 끝났다네. 더 자주 자네를 만날 수 있을 거 같아서 생각만으로 좋아. 저번에 만났을 때, 내 신변이야기는 최대한 안한다 했으니 일단 이만해야겠군. 오늘 곡도 무척이나 내게 빼놓을 수 없는 곡이기도 하고 말이야. 


이적, 내가 자주 윤하와 에픽하이를 얘기하긴 하지만, 이적은 나에게 어찌보면 그 아티스트들 보다 더 큰 방향을 준 아티스트야.

왜, 중학교 시절 즈음에 한 번씩 그런 경험이 있긴 할거야. 굳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것은 뭔가 저열하고, 예술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찾아서 듣는 외국의 예술이 최고라는 참 교만한 생각. 그런 생각에 뮤즈며, 오아시스며 찾아듣는 중학생들은 아직도 많지. 그 아티스트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런 현상이 굳이 보기 안좋다는 것도 아니야. 다 한 번씩 걸쳐가는 사춘기의 한 과정이지.

나의 경우는 J-pop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지. 우리 나라는 아이돌만 잔뜩이고, 듣기 싫은 전자음만 가득하고, 늘 사랑노래, 사랑노래 지겨워 죽겠다고. 그러면서 J-pop을 듣고, 라르크 앙시엘을, 우버월드를 좋아했지. 그 시기에, 인간극장에도 나오고, 만화 '블리치'의 2기 엔딩을 불렀던 윤하는 J-pop 가수로 취급하며 이 가수는 다르다면서 여전히 한국 가수들을 무시하고는 했지. 힙합도 같은 느낌으로 좋아했었어. 사랑노래가 별로 없고 공격적이니까, 단순히 그게 멋있고 최고인 줄 아는 어린 마음에 좋아했고, 에픽하이며 무브먼트며, 배치기며 스나이퍼 사운드며 줄줄 외며 다녔지. 

앞에 말한게 큰 영향은 이거야. 윤하나, 에픽하이. 내가 정말 지금도 최고로 좋아하는 가수들이지만, 내 좁은 시야와 아집을 꺾지는 못했지. 오히려 음악이나 출신을 보면서 내가 그 가수들을 가지고 정신승리를 하면 했지.

그러면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어. 2010년이었지. 한참 '나는 가수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어? 한국 가수들 노래 잘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 때 쯤, 정말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만났어.

'빨래', 그 제목이 너무나도 내용을 예상하지 못하겠어서 듣게 된 그 노래가, 내 편견과 아집을 한 순간에 벽 허물듯 무너트려버리고, 내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음악관을 완전히 뒤집어버렸지.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괜찮아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나을까 싶어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 지 몰라요.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서 
그게 참 말처럼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그대가 날 떠난 건지 내가 그댈 떠난 건지
일부러 기억을 흔들어 뒤섞어도
금세 또 앙금이 가라앉듯 다시금 선명해져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서
그게 참 말처럼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뒤집혀버린 마음이 사랑을 쏟아내도록
그래서 아무 것도 남김 없이 비워내도록 
나는 이를 앙 다물고 버텨야 했죠
하지만 여태 내 가슴 속엔

그게 참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

참 단순한 이별노래였어. 참 단순한 느린 템포의 발라드였고. 그런데 어째서 6년전 그 날도 오늘도 이렇게 내 마음은 이 곡을 듣고 이렇게나 흔들리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

한국의 노래 가사는 의미없는 반복구에 시적인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물론 지금 보면 웃기기만 한 편견이지. 내가 모르는게 많을 때니. 하지만 그 편견은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긴장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나오는 '빨래를 해야겠어요' 에서 무너져버렸어.

너무 슬프다. 니가 없어서 죽겠다. 다시 돌아와달라. 그런 가사도 지금 생각하면 좋지. 호소력 짙지. 하지만 그 때 처음 들었던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라고 뱉는 말은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어떤 가사보다도 애달프게 다가왔어. 

또, 개인적으로 이 때 부터 이해도 못할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 아닌, 괜시리 미사여구가 늘어서는 것이 아닌, 솔직하고 간결하지만, 큰 울림이 있는 단어와 그로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하게 되는 이미지를 만드는 가사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가사만 지그시 읽을 때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그런 작품.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야. '앙금이 가라앉듯 다시금 선명해져요', '이를 앙 다물고 버텨야 했죠', 참 별 것 아닌 말들인데 한 무뚝뚝한 남자가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 버티며 빨래를 하는 모습이 그저. 내가 원치도 않았는데 들어오더라고. 

거기에 가수는 이적이었어. 뭐 그의 대단함은 언젠가 더 천천히 뜯어볼 때가 있겠지만, 나는 그 첫 소절에, '한국에 이렇게 노래하는 가수가 있구나.'라고 충격을 받았어. 아니 사실, 일본이고, 영국이고 어디도 찾기 힘든 감정을 노래하는 가수였거든. 첫소절에서 피아노가 한 번 코드를 치자마자 나오는 그 목소리는 정말로 꾹꾹 눈물을 눌러담은, 하지만 흘러넘치지는 않는 그런 목소리였지. 정말 충격이었어. 그 때까지 그런 가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후반에 들어서면서 참고 있던 모든 것이 폭발할 때 참 높은 음을 높지 않게, 그리고 감정을 폭발시키면서도 전혀 추잡하지 않게 정제된,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을 훔치고 다시 참기 시작하는 그 목소리는, 가사와 맞물리면서 최고의 시너지를 냈지.

곡의 구성은 정말 평범했어. 곡의 주제도 정말 폎범했고, 장르도, 심지어 앨범 전체의 타이틀도. '사랑'이라니. 온갖 있어보이는 이름을 다 두고 그저 '사랑'이라고만 지었지. 하지만 그 앨범과 이 곡은 정말 평범할 수 있는 게 정제되면 어디까지 아름다워지고 한 사람의 아집을 꺾어버리는지 알게 만들었어.

여전히 많이 슬플 때면, 눈물이 날 때 쯤이면, 답답하면 찾아들어. 그의 다른 노래인 '같이 걸을까' 같은 곡도 많이 힘이 나겠지만, 이 곡은 내 슬픔도 빨랫대야에 담긴 빨랫물마냥 쏟아버리고 널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정말 그래서. 

이 이후 나는 이적에게서 많은걸 배울 수 밖에 없었어. 다른 아티스트들의 자세며, 장르며 많이 도움이 되었지만, 글을 쓰는 형식도, 가장 기본적인 가창자세도. 그래서 많이 무섭기도, 감사하기도 한 곡이야. 내 은인과도 같은 곡이지. '내가 이 곡과, 이적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젠가 내 작품으로 내가 겪은 경험을 똑같이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언제나 듣고 나면 뱅글뱅글 돈다네.

자네한테 들려준 곡이 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앞으로에서도, 내가 가장 자부하는 곡이네. 부디 편히 들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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