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키가 어머니의 반밖에 안되던 시절, 어머니가 홍유릉으로 내 손을 붙잡고 나가셨다.
스케치북과 손보다 큰 지우개, 날카롭게 촉을 세운 4B연필과 함께.
아무거나 그리기 쉽고, 그리기 쉬운 걸 그려보렴.
나는 이름 모를 기둥을 한참 그렸다. 그리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오랜 시간 나는 그 기둥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림과 마주했다.
나는 금세 한 반에 한 두 명 정도 있는 그림쟁이가 되었다.
그림은 시간을 많이 쓸 수 있었다.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 연필촉에 신경을 쓰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다고 시끄럽다고 지적을 받는 것도 아니었으고, 오히려 누구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점이 오히려 좋았다.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고 나와 종이만 있는 시간이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나를 소개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거나 매끈한 일러스트는 그리지 못하지만, 나만의 나무껍질 같은 덧칠은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다.
꾸준히 작법을 연마하다 보면 꽤 그럴듯한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만 많다면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그래. 시간만 많았다면.
해가 갈수록 당장 살아야 할 일이 바빠졌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졌다.
그림을 그리는 나를 학창 시절처럼 가만 두는 곳은 없었다.
애써 안보는 전화기가 시끄럽게 앵앵대면 그리던 그림을 옆으로 치우고 핸드폰을 봐야만 했다.
어쩌겠는가, 살기 위해서는 그림 그릴 시간을 깎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그림을 계속 그려오기는 했다.
'내일 해야지'라는 말과 함께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데생들이지만.
도저히 잠시 구석으로 미뤄둔 데생들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잠시 바빠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 보면 이미 나는 아까 생각하던 이미지를 재현하지 못한다.
연필 선 하나도 내가 이전에 생각하던 것과 다르게 그려진다.
다시 꺼내와 그린 그림은 결국 내 그림이 아닌 무언가가 된다.
그렇게 점점 그림도 어느샌가 내 어정쩡한 모습의 단편이 된다.
잘 그린다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런 어렴풋한 희망만 가진 채 그려지다 만 종이 무더기로 남았다.
한 번 힘주고 다시 시작해보자며 직장을 옮기고 산 아이패드는 먼지만 쌓이고 있다.
이렇게 그리면 참 좋겠다 싶어 구독한 그림 강좌 채널들이 유튜브 새 영상 목록을 채웠다.
언제 한 번 옷을 그릴 때 도움이 될까 하고 싶어 찍어둔 핀터레스트도 참고하라며 알림을 띄운다.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트윗이 지저귄다. 그림을 그리라고 지저귄다.
그리고 나는 그 알림 들을 지우며 밤 10시 야근을 마치고 퇴근 버스에 몸을 싣는다.
무심코 틀어놓았던 그림 강좌 채널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얘기한다.
“매일 작은 거라도 계속해서 그리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렇지. 매일 작은 무언가라도 완성해나가야지.
오늘은 집에 가서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그림을 그릴까.
[아인님, 늦게 죄송한데 질문이 있는데요.]
고객의 문자다.
[네. 무슨 일이실까요?]
오늘도 그림은 그릴 수 없을 것 같다.
집에 들어오니 분침과 시침이 서로를 가리고 있었다.
깊은 밤이다.
“그림, 그렸어야 했는데.”
침대 위에 몸을 누인다. 아직 씻지도 못했다.
어쩌다 보니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는 바쁜 인간이 되어버렸다.
곧, 그림도 음악처럼 되어버릴까.
그 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밤이 깊어갔다.
“내일은 그릴 수 있을 거야.”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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