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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메뉴/에세이-어정쩡하게 자라 꿈꾸다

2. 음악이 하고 싶었다.

음악이 하고 싶었다. 지휘도 하고 싶었고,작곡도 하고 싶었다.

어떤 때는 락스타도 되고 싶었고첼리스트가 싶은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지휘자였다.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지휘자는 아니지만 지휘봉을 흔들 때마다 따라 흔들리는 곱슬머리가 누구보다 멋있는 정열 넘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였다.


말을 떼기도 전부터 클래식을 들었고, 지휘를 따라 했다. 음악을 하는 게 당연했다.다섯 살 안된 손에는 바이올린을 쥔 때부터 한참.

당연히 음악을 할 줄 알았다.

그때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면 어정쩡한 지금의 삶이 없었을까?

하지만 나는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말았다.피아노도, 첼로도, 클라리넷도.드럼도, 기타도, 작곡도. 그나마 글을 쓰면서 지금껏 조금씩 남기는 가사와.태어났기에 평생 가질 수밖에 없는 노래만 놓지 못하고 가지고 있다.


그렇게 손에 쥐었다 놓았다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높아진 것은 좋은 음악을 듣는 귀뿐이었다. 귀가 높아질수록 다시 음악을 하려는 내 의욕은 반대로 낮아졌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이 뭔지 알게 될수록 내가 만드는 음악이 더욱 듣기 힘들었다.


다 핑계다. 사실.지금 보면 전부 핑계다.뭐 하나 잘한다고 말할만한 열심이 없었다.누구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평가를 받을 용기도 없었다.내 음악과 제대로 만날 기회는 그렇게 사라져 갔다.


이번에는 다르겠지. 이번에는 내 음악을 할 수 있겠지.왜 끝까지 도전하지 못하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악기만 바꿔가다 보니 어느새 고등학생이었다. 꿈꾸는데 늦는 건 없다고 하지만, 어느새 나는 음악이 아닌 문제집을 잡고 있는 수험생이 되어있었다.


‘음악은 취미로 하자’

그렇게 혼자만의 납득을 시작하고 말았다.그렇게 어느새 나는 어정쩡하게, 음악을 시작하지도 끝맺지도 못하게 됐다.

세월은 멈추지 않고, 나는 어느새 음악 감상만을 취미로 하고 있는  스물일곱이 되었다.취미로 하는 악기는 없었다.어정쩡하게도 음악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는 못해 수많은 음악을 들었다. 그만큼 쓰지는 못할 많은 지식도 함께 쌓였다. 어느 재즈바에 가서 옆 테이블과 흑인 음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수도 있고, LP숍에서 이런저런 레코드를 꺼내며 가게 주인과 잡담을 나눌 수도 있다.하지만 그렇게 얕은 지식을 긁어내며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자면 내 어정쩡함은 깊어져만 간다.


‘뭘 안다고. 자기 음악이랑 제대로 마주쳐 본 적도 없으면서.’그런 생각이 문득 즐거운 음악 대화 사이에 끼기 시작하면 대화는 식기 시작하고 웃고 있는 상대가 못내 부러워진다. 그리고 정말 바보 같게도 다시 음악을 하고 싶어 진다.

지금이라도 유튜브로 노래를 커버하는 취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그런 참 안일한 생각이 들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조금 진지하게 해 본다. 녹음까지 해가면서.당연하게도 어정쩡하다.호흡은 어렸을 때에 비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짧아졌고, 고음은 좋은 말로도 잘한다고 할 수 없다.


‘역시, 누군가를 들려줄 노래가 되지 못해.’

나는 오늘도 내 음악을 마주 보지 못한다.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그만뒀다.’라는 제목의 노래.근데 나는 그 노래 속 아이가 요즘따라 참 부럽다. 어정쩡하게 음악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사랑하고만 있는 나는 ‘그래도 음악을 아직도 계속하고 싶다.’

참, 어정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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