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雪國) | ||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민음사 |
163p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일본 문학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한 번쯤은 봤을 법한 구절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역작, '설국'의 이 첫 구절은 읽는 것 만으로 영화의 한 장면이 지나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비단 이 한 구절만이 아닌, 설국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모든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숨을 들이쉬면 맡아질 듯 한 생생한 문체는 소설이 아닌 문장과 문장들을 읽는 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렇게 노래하듯 흐르는 문장의 행진 사이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필시 아름다우리라. 문장의 첫머리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설국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와는 이질적이다.
이야기는 일본의 근현대 문학을 많이 읽어온 이에게는 꽤 익숙한 소재이고, 일본 문학으로 장르문학만 접한 이라면 낯설고 황당한 소재일 것이다. '가족이 버젓이 있는 사내가 다른 여자와 연애감정을 느낀다.' 한국이라면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올 급이 떨어지는 소재지만, 이 카페에서 소개한 일본 단편소설 중에서도 이런 소재를 쓴 것이 대다수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굉장히 흔하디 흔한 소재다.
물론 일본 내의 일반 상식이 불륜이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보통 이 소재를 쓰는 많은 작품들이 상식을 빗겨간 사랑을 경험하는 개인의 감정과 세상간의 갈등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치정 사이에서 인간의 본질을 느끼는 것, 그것이 이들이 불륜이라는 비정상적인 소재를 이야기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불륜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만든다면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설국은 이런 소재가 당연히 갖춰야 할 것을 최대한 축소시키고 남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미망인인 고마코에게 이끌린다. 동시에 유키오라는 남자의 애인인 요코에게도 기묘한 감정을 느낀다.
무척이나 복잡한 인간관계다. 추려서 얘기한 것 이외에도 유키오를 사이에 둔 고마코와 요코의 미묘한 감정선이나, 시마무라가 가족을 대하는 태도 등은 분량을 할애하려면 얼마든지 할애할 수 있을 만큼 얽히고 섥힌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들의 속사정에서는 최대한 거리를 둔 채, 그들이 바라보는 자연물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그려낸다. 이는 곧 주인공 시마무라의 모든 감정은 언젠가는 사라질 '덧없는 것'이라는 허무주의와도 맞닿아있다.
시마무라에게 있어 모든 인간관계와 그 사이에 있는 감정들은 끝이 존재하는 '덧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요코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도 적극적인 감정 표출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열을 내봐야 결국 사라질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그는 다가오는 여자와, 감정은 막지 않은채 반은 냉소적으로, 반은 관조적으로 덧없는 것들의 허무한 끝을 감상하기만 한다.
'정성을 다한 사랑의 소행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을 채찍질하는가?'
그런 그에게 고마코와 요코는 이해하기 힘든 이들이다. 그녀들은 다 죽어가는 유키오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가 병으로 죽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를 향한 사랑을 거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코는 고마코에 대해, 고마코는 요코에 대해 인정하는 것인지, 증오하는 것인지 모를 태도를 가지고 서로 배려하며 유키오를 사랑한다. 동시에 주인공인 시마무라에게 강한 끌림을 가진다. 그 일련의 감정들이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과 고민의 채찍질을 선사함에에도, 그들은 (시마무라 입장에서는) 덧없는 사랑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유키오는 세상을 떠나고 어느 날, 불의의 화재로 요코는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보는 앞에서 세상을 떠난다. 고마코는 죽어가는 요코를 향해 반쯤 정신나간 듯 소리지르며 달려나간다. 이 비극적이고 한 철 불나방같은 사랑을 한 여성들을 바라보며 시마무라는 지금껏 느낀 세상 중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느낀다. 그의 눈에 비치는 밤하늘을 서술하는, 첫 문장만큼이나 미려한 마지막 문장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몸을 가누고 바로 서면서 눈을 치켜 뜬 순간,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은하수가 시마무라 속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시마무라 혼자서 사람의 감정이 덧없음을 안 것이 아니다. 그 혼자서 사람의 일생이 덧없음을 안 것이 아니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두 여인도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이 언젠가 스러져갈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사랑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녀들은 아름다웠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스라엘의 전도자의 말이다.
인간의 삶은 덧없다. 장엄한 자연의 시간에 비하면 한 순간이며, 그 안에서 감정은 아주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인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기억하던 정보조차 한 순간만에 낡고 덧없는 것으로 변화한다. 인간의 삶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덧없다.
그렇다면 그 덧없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저 인정하고 그 이상의 노력을 포기할 것인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관철할 것인가. 시마무라는 이 물음에서 헤매고 있었으며 끝에 가서야 답을 얻은 것이다.
내가 덧없다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잿빛 필름의 연속이 되며, 덧없어도 끝까지 사랑하는 순간 사람은 가장 아름답게 빛이 난다는 것을.
당신에게 오늘 하루가 덧없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내가 하던 모든 것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그렇기에 자신이 하던 것이 아프게 끝맺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끊기도 한다.
덧없다 느끼는 것, 아픈 끝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의 모든 것은 덧없다는 것은 당연한 생각 중 하나니까 말이다. 끝없는 허무에 대한 고민과 아픔보단 한 순간의 회피가 나아 보임도 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인생이 아름다운지, 아닌지로 생각한다면 그 허무하고 덧없는 삶에 대한 물음을 내리기 조금은 편할지도 모르겠다. 한 순간 덧없는 것을 바꿀 수 없다면, 끝까지 아름다운 순간의 반짝임이 되는 것은 어떨까.
한맺힌 회피의 결말보단, 아프더라도 만족스럽게 빛나는 순간이 그래도 오래 많은 이들에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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