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신기한 영화가 있다. 11월 9일에 개봉했으니, 이제
꼭 한달이 다 되어가는 영화다. 상영관도 많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영화도 아니다. 배우가 유명하거나 감독이 유명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난 이 영화의 상영기간을 길어야 3주로 봤다. 그런데도, 벌써 한 달 째 내려갈 생각은 없이 어느새 30만명의 관객을 스크린 앞에 앉혔다. 이 영화가 도대체 뭐 길래? 어떤 울림을 주길래 이 짧고 투박한 영화가 적은 스크린과 상영 횟수에도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가?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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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러닝타임 | 개봉일 | 관람가 | 감독 | 출연 |
애니메이션, 미스터리 | 95분 | 2017. 11. 09. | 15세 관람가 |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 더글러스 부스 (아르망) 크리스 오다우드 (우체부 룰랭) 로버트 굴라직 (빈센트) 제롬 플린 (가셰 박사) |
‘러빙 빈센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면서,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를 그린 작품이다. ‘빈센트’의 그 화풍이 포스터로 걸리고, 예고편으로 공개되었을 때의 놀라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의 그림을 앞에서 봤을 때의 그 일렁이는 생동감을 그의 삶을 그린 생동감으로 볼 수 있다니, 고흐를 조금이라도 감명 깊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두근댔을 것이고, 보지 않은 사람도 그 화풍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백 여명의 화가가, 그의 이야기를 그의 화풍으로 5년 동안 직접 그려 만든 ‘유화 애니메이션’. 그 자체로 특징이 되는 이 작품은 그 특징, ‘빈센트의 화풍’으로 너무나도 아름답고 빈센트의 일생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화풍은 적절한 감독의 편집과 준수한 스토리를 통해 더욱 더 빛을 발했다.
영화는 두 색채로 그려진다. 쉬지 않고 일렁이는 빈센트의 색채와, 사실적으로 묘사된 흑백의 색채. 전자는 화자인 아르망이 빈센트의 죽음과 그 삶에 대해서 찾아 나가는 여정을 그린다. 후자는 빈센트의 생전의 모습이 그려졌다. 즉 빈센트가 죽고 없는 현재가 빈센트의 색채이고, 빈센트가 살아있었던 과거는 그저 칙칙한 사실일 뿐이다. 어째서인가. 빈센트의 삶은 어째서 빈센트의 색채가 아닌것인가.
사실 빈센트의 삶은 확실하게 규정할 수 없다. 비단 영화에서 겉으로 계속 제시했던 빈센트의 죽음에 관련된 루머뿐 만 아니라, 그가 어째서 그렇게 괴로워했는지, 그와 고갱의 사이는 어떻게 비틀렸는지,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생각했는지 그 어떤 것도 우리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단지 그의 편지들과, 남아있던 몇 사람의 증언으로 가늠할 뿐이다.
영화는 아르망이 빈센트의 삶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극단적으로 나뉘는 빈센트에 대한 사람들의 평과, 알 수 없는 죽기 직전의 행적 등에 대해 어떤 설에도 지지를 표명하지 않고 오히려 정보를 교란하고 차단하면서 그에 행적에 대해서 확실히 짚을 수 없이 더 모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바라볼 수 있지만 이해 할 수는 없는.’
그렇게 제한된 정보-사실 우리가 책이던 증언이던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더듬다 보면 아르망의 아버지이자 빈센트의 절친인 조셉의 대사가 마음 한 켠에 피어난다. 여기 저기 적힌 증언과 편지로 그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가능해도, 그 것만으로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가 빈센트라는 사람의 전부를 이해하는 것은 그의 과거를 알아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빈센트의 생전의 모습은 흑백이다. 오로지 그의 편지와 사람들의 증언으로 기워 붙인 듯한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흑백 영화다.
그렇다면 그, 빈센트 반 고흐, 시대의 예술가인 그를 이해하기 위해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 대답은 빈센트의 색채로 물든 곳 전부에서 나타난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남아있다. 영화 내내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휘몰아치듯 깜빡이고, 가셰 박사는 오늘도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는 없지만 그가 남기고 간 흔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아르망은 영화 내내 생전의 빈센트의 행적을 쫓았지만, 영화 말미에 가서 그 모든 추리를 거두고 단 하나의 답 만을 받아들인다. ‘빈센트라는 사람의 삶은 아름다웠다.’
그렇다. 빈센트는 아름다웠다. 그가 느낀 그의 삶은 그림만큼이나 너무나 강렬했고 아름다웠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째서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 답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글과 증언이 아닌 그의 그림들이었다. 그의 그림은 그가 당시 느낀 삶의 모습을 풍경에 그대로 담았고, 그 남은 작품을 보는 감상자는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가장 솔직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게 개인이 느끼는 대로 조금씩 다를 지라도 그 것만이 빈센트와 그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아르망이 빈센트에 대해 찾아다닌 것,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된 사람들이 빈센트의 색채로 그려진 것이다. 단순히 배우를 사용해서만 찍지 못하고 그 배우들 위에 다시 빈센트의 색채를 입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행적을 따라가는게 아닌 그의 작품으로 그를 이해하게 하고 싶었으니까.
여전히 우리는 그의 삶에 대해서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남긴 그림을 통해서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그 순간, 어렸을 적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그의 ‘별이 빛나는 밤에’을 봤던 그 순간과 같은 풍경을 봤다. 하늘이 쉴 새 없이 일렁이며 요동쳤다.
아 그는 이렇게 밤하늘을 느꼈구나, 이렇게 고뇌했구나.
그 고뇌를 담을 만큼 따뜻한 눈과 마음을 가졌구나.
‘사랑하는 빈센트가.’ 오늘 그는 나에게 그가 봤던 밤하늘을 영화로 보내줬다. 그의 아름다운 삶을 동봉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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