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오랜만이야. 이렇게 마주보고 명작을 내주게 되는게 말이야.
사적인 얘기도 할 건 많지만, 그건 언젠가 내가 더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
오늘 자네한테 내줄 건 '폭풍의 언덕'이라는 작품이야.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의 동생인 에밀리 브론테가 쓴 여러모로 대단한 작품이지.
솔직하게 말하면 자네한테 내 줄 자신이 별로 없었어. 이거 하나 쓰는데 어떻게 써야 할 지, 뭘 써야 할 지 감이 잡히질 않더라고. 그뿐인가, 동계훈련에 들어가기 전 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나와서도 개학하고 나서 까지 읽게 된, 정말 읽기 힘든 소설이었어. 결국 생각보다 모든게 다 늦춰지고 계획이 틀어져서 마음앓이도 꽤 했지. 그만큼이나 명작이지만, 조심스럽고, 어찌보면 위험하고 파괴력 있는 소설이야.
먼저 이 소설의 장르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네. 로맨스라고 소개하는 곳이 정말 많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로맨스지. 하지만 내가 읽으면서 느낀 건 마음이 훈훈해지고, 어딘가 두근거리며, 사랑의 달콤함과 팽팽한 감정싸움 그런 것이 아니었어.
내가 바로 위에 어느 정도는 로맨스라고 쓴 건, 어찌 되든 사랑을 도구로는 쓰고 있어서야지, 이 책의 장르는 요즘으로 치자면 스릴러나, 호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잔인하고, 사이코스러운 것을 녹여내고 있어.
'워더링 하이츠', 번역하면 '폭풍의 언덕'이 되는 영국 어느 시골의 저택의 주인인 언쇼씨는, 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두 아이의 앞에 선물이 아닌, 한 고아를 소개하게 되지. 이 아이의 이름은 언쇼씨의 죽은 첫째 아들인 '히스클리프'가 돼. 그리고 여기까지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 앞 날이 달콤해지지 않을거란건, 책이 아니라 무슨 문화매체를 보든 당연히 알 수 있는 거지.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들도 비슷한 플롯이 많고 말이야.
하지만 이 소설은 자네와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정도를 가볍게 무시하고 경신해 나가지. 폭언과 폭력은 기본이고, 살인도 정상범주에 있는 듯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할 즈음이면, 도대체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것인가, 무언가 확실하게 잘못된 곳에 들어와있다는 생각이 들어. 뭐 늘 미스테리며 호러며 끼고 다니며 탐독하는 사람이래놓고 무슨 소리냐는 눈빛인데 자네, 그건 분명 많이 다른 거라고, 원래부터, 이상한 일이 상식적으로 일어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것하고 전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무리 나빠도 상식선이겠지 하는 상태로 이런 상태로 오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까.
막장드라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현대의 막장드라마하고 비교하면 이런 플롯은 생각보다 많아서 그게 뭐 어쩌라고 싶을지도 몰라. 이게 명작이고, 이 작품의 플롯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해도 말이야. 어느 날 집에 들어온 출처 모를 형제, 그리고 편애, 복수, (시골이지만) 나름 부잣집에서의 비뚤어진 생활상, 사돈 가문과의 갈등......줄줄이 대라고 하면 끝도 없이 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왜 나는 이걸 읽었고, 더 나아가 자넹게 소개하는 걸까. 아무리 원조라고 해도 결국 넘치고 넘치는 이야기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말이야.
일단, 단순히 잔혹하고, 광기에 넘치는 걸 열거할 뿐이 아니라는 거야. 보통의 흔하디 흔한 작품부터, 온갖 막장드라마까지 단순히 무언갈 뺏겼고, 그걸 찾는 과정에 당연히 복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복수를 한다는 억지로 만든 도덕적 타당성과 주연을 긍정하는 듯한 말들은 이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아. 주인공인 히스클리프의 복수는-물론 복수를 당할 대상이 복수를 당해도 싼 사람도 있긴 하지만-매우 비정상적이고, 도덕적 타당성 또한 결여되어 있어. 누구의 복수 그런 거창한 게 아니야. 그저 자신을 혐오했고, 그래서 자신도 혐오하고 완전히 파멸시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지. 또 다른 주인공인 캐서린 언쇼와의 사랑도 정당한 어떤 계기가 있어서 사랑을 하고 죽고 못살고 그런 것도 아니야. 그저 그들은 좋아했고, 그들을 방해하는 것들을 혐오했을 뿐이지.
그래. 이 소설은 혐오에 대한 이야기야. 사상적, 신념적인 혐오에 대해서 차근차근 엄중히 경고하는 내용이 아니야. 그저 혐오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망가지고 추악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지.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정신적으로 큰 결함을 가지고 있고 그 가슴 한 복판에 혐오를 품고 있어. 오로지 관찰자면서 서술자인 록우드 한 명을 빼고는 모두가 그렇지.
그들이 어렸을 적 품게 된 태생적이고 원초적인 혐오는, 불행과 그들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가 얽혀 도저히 풀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해버리고, 그런 혐오를 가득 가진 개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괴롭히고 찢어발기고 파멸하게 되는지, 그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그게 자신의 자식이더라도, 그게 자기 자신이더라도(이 모든게 사실이야.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혐오감을 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 그 혐오를 거둘 수 없고 분출해버리는지를 단 하나의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
나는 보면서 에밀리 브론테라는 작가가 정말로 궁금해졌어. 그녀의 서술은 단순히 그걸 상상해서만 썼다기에는 너무 생생한 심리 묘사와 폭력들이 가득했어. 어쩌면, 작가야말로 그런 혐오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원념에 가까운 이야기가 나온게 아닐까. 정말 대단한 서술실력이면서도 그 실력에 작가가 걱정되는 건 또 처음이였어.
어쨌든, 다른 작품들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위에도 말했듯, 원념에 가까운 이 이야기는, 결국 그 원념, 혐오를 가지고 있는 히스클리프와 그의 세대가 모두 죽게 되고-하인이자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넬리 한 사람을 빼면 말이야-그들의 원념이 미처 다 닿지 않은, 아니 닿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없던 세대에 이르러 끝나게 되지.
자네도 알겠지만, 무언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말, 그런 것을 이야기에서 찾는게 좋고, 그렇게 적용하면서 나아지는게 좋아. 그걸 자네도 느꼈으면 좋겠고.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무언가 교훈적인 것을 던져준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그저 인간의 혐오는 끝이 없고, 결국 자신의 소중한 것 까지 좀먹어 갈 뿐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야. 그게 잘못되었다는 시각조차 아니야. 그게 자연스럽다면 그저 그러라는 느낌. 그 뿐이야.
당황스러울지도 몰라. 나도 그랬으니까. 이렇게 자네에게 이야기를 내는데만도 2달이 걸렸어. 그런데도 나도 아직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기에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일 수 있는 결말부까지 얘기해버리기까지 했지. 자네가 읽기 싫다면 읽지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준비가 되었다면, 이렇게 내가 미숙하게 내온 것을 보고 읽어보고 반대로 내게 내와주겠나? 나와는 다른 무언가를 듣고 싶은 소망이 있는 소설이야.
뭐 어쩌면, 에밀리 브론테는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어. '메갈리아'니, '일베'니, 온갖 색깔들이 뒤엉켜 죽이지 못해서 싸우는 이런 세상에서, 그것을 막는게 오히려 그 안에 말려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저 그 혐오와 원념을 멈출 생각을 말고 바라보라는, 어쩌면 엄청나게 현실적인 충고이자 그녀만의 지혜를 말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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