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저번에 내줬던 '위대한 개츠비'보다 더 유명한 작품이지. 나는 이미 이걸 어렸을 적부터 마음속에 담아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는 책 중 하나였지. 하지만 세월이 좀 지나고, 나이가 드니까, 왠지 내가 나이가 드는 것 만큼이나 노인의 이야기가 다시 보기 싫어지더라고. 아직 웃어른들이 보면 콧웃음 칠 나이지만, 점점 변해가는 나를 대면하기 싫었던 걸까. 하지만,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책임은 확실했기에 다시 한 번 펼쳤고, 이렇게 자네 앞에 낼 수 있게 되었네.
결론만 얘기하자면, 역시 다시 읽기를 잘했다는 느낌이야. 그리고 이번에 읽은 '노인과 바다'는 왜인지 어렸을 때 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그 '노인과 바다'와는 많이 다르더군.
물론 줄거리가 바뀌었다든지, 번역 자체가 막 바뀌었다던지 그런 건 아니야. 물론 내가 처음 읽었던 판본은 중학생을 위해 일러스트와 함께 조금 쉬운 언어로 씌여진 판본이긴 하지만 충실할 정도로 전문이 다 실려 있었지. 애당초 뭘 빼고 더하고 할 줄거리도 아니고 말이야. 85일이나 어떤 물고기도 낚지 못해 자신과 언제나 같이 한 소년마저 같이하지 못하게 된 한 어부 노인의 이야기니까. 스토리가 어느정도 간략하냐면, 보통 시놉시스 정도 쓰여있는 뒷면의 책 소개란에 전체 스토리의 요약이 다 되어있지. 아무리 길게 써도 10줄 밖에 안되는 간단한 이야기가 왜 나는 달라보인걸까.
어렸을 적 내가 느낀 노인은 연이은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평생 낚아보지 못한 거대한 청새치와 전면으로 맞서싸우고 이기는, 그리고 그 청새치를 노리고 달려드는 상어들 또한 차례차례 쓰러트리면서 뼈밖에 남지 않은 청새치지만,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인정받게 된 느낌이 강했어. 돌아온 용사의 느낌이라고 하는게 좋겠네. 어쨌든 많은 역경을 쓰러트리면서 결국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노인의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멋졌어.
그렇지만 다시 한 번 펼친 '노인과 바다'에서 내가 알고 있던 용사와 다름 없던 노인은 어디에도 없더군. 물론 노인의 도전정신이 사라진 건 아니었어,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아름다웠지. 하지만 그의 모습은 용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그저 노인의 모습이었어. 마을 사람들에게 운이 다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소년까지 소년의 부모에 의해 같이 할 수 없게 되었지. 양말 하나 제대로 걸치지 못했고, 푹신한 침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 그저 침대라고 불리는 건, 침대의 가장 안에 있는 스프링 위에 신문지를 펼쳐서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만든 고물.
내가 알던 노인이 이랬나 싶더라고. 어렸을 때 본 노인 역시 가난하긴 했지만, 그저 조금 못산다는 느낌이었어. 언제나 도와주는 소년이 있고, 외상으로 커피도 먹을 수 있다는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그래보였어. 그 때는 세상을 날카롭게 볼 수 없었나봐.
노인은 85일간 실패해서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소년이 가져다준 미끼가 아니면 낚시도 다시 할 수 없을 지경이었지.-물론 아직은 상하기 전인 미끼가 있었다고는 하지만-아무것도 없음에도, 있는 척 소년과 거짓 상황극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는, 내가 알던 다부지고 용맹한 노인이 아닌, 그저 잔뼈가 튀어나오고 검게 그을린 작은 노인일 뿐이더라고.
내가 그를 용사로 볼 때는, 그가 청새치와 싸우고, 상어와 싸우는 모습이 그저 멋있고, 위험하긴 하지만 지지 않을 모습으로 보였어. 하지만, 내가 그를 똑바로 쳐다본 지금은, 그와 청새치의 싸움은, 정말로 실패하면 죽음밖에 없는 모습이었지. 낚시줄에 손이 연거푸 베이고, 3일 밤낮을 못 자며, 바닷물에 상처를 소독하는, 지금껏 본 어떤 물고기보다도 큰 청새치와의 싸움은, 청새치가 조금만 더 난폭했더라면 노인이 죽는 결말이었을지도 모르는 잔인한 극한의 상황이었어. 육지와는 멀고, 3일동안 밤을 새면서, 혼잣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그 아이가 여기 있었더라면'이라고 되뇌는 노인의 모습은 너무 외롭고 초라해서, 다시 육지로 돌아가지 않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
상어에게 습격당할 때는 말할 나위도 없겠지, 첫 상어에 작살이 날아가고, 연거푸 밀려오는 상어에 칼이 날아가고, 키가 부서지고, 그 와중에 어딘가 충격으로 내상을 입어 피를 뱉는 노인을 보며, 왜 예전에는 저게 그저 멋있게 보이고 전혀 아프거나 위험하게 보이지 않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어.
그제서야 소년이 돌아온 노인을 보고 울음을 멈추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사실 어렸을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게 맞았던 것 같아. 저렇게 승리자인 노인이 돌아온게 그렇게 슬픈가? 물론 다치기도 했고 초췌해져서 왔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잖아.라고 생각했지. 지금은 뭐.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나도 그 소년과 같은 마음이었어. 노인을 차갑게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가져온 청새치의 뼈에 몰려들어 그 청새치에만 관심을 가졌지, 노인에 대해선 일말에 걱정도 없었어. 그들이 차갑게 대했던 데 대한 미안한 감정도 없었지. 예의상 물어본 '노인은 어떠냐'에 소년이 '노인을 깨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자 듣지도 못한 듯 청새치의 크기에 대해서 감탄만 하는 이들을 보게 되자, 노인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고독한지 많이 슬프더라고.
노인은 포기하지 않았어. 그 유명한 노인의 대사인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걸맞게,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몸이 부서질 지언정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이 말하는 포기에 굴복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고독했고, 그의 신세는 나아지지 않았어. 어쩌면 다시는 낚시를 나갈 수 없을지도 몰라. 상어와 싸우는 동안 다친 것이 별 것 아닌듯 소박하게 넘어갔어도, 노인이 피를 내뱉을 정도의 내상을 입었는데 괜찮을 리가 없지. 분명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지만, 내가 어렸을 적 본 그 영광스런 마지막은 절대 아니었지.
그렇다고 마냥 슬픈 소설이고, 내가 여기서 무력감을 느꼈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냐. 왔다갔다 하지 말라고? 미안하네. 하지만 그렇게 무력하고, 그가 얻은 승리가 파괴된 승리와 다름 없더라도, 노인의 그 모습은 아름다웠어. 많이 슬펐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다네. 여기서 몇번씩 고쳐서 자네한테 잘 말해주려 한다만, 역시 이건 자네가 직접 맛보는게 좋다고 생각하네. 난 그런 슬픈 모습이라도, 그 노인처럼 아름답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자신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무릎꿇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나도 행복하게 사자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네. 자네도 맛있게 즐기기를.
|
'책 > 명작마시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권 명작마시기]6. 오만과 편견 - 불편한 당신도 불편하다 (0) | 2017.10.06 |
---|---|
[52권 명작마시기]5. 인간의 굴레_그는 후회한다, 그리고 또 (0) | 2017.09.12 |
[52권 명작마시기]4.제인 에어 (0) | 2016.05.14 |
[52권 명작마시기]③폭풍의 언덕 (0) | 2016.04.10 |
[52권 명작 마시기] ①위대한 개츠비 (1) | 2016.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