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월의 2주차도 지나고 있지만, 1년 52주동안 한 주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지도 그와 동시에 지나가고 있다.
이 시리즈는 주인장의 1년 계획과 흘러간다. 부디 손님 여러분들의 관심으로 성공적인 한 해 계획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 아래로부터 이 시리즈는 마치 카페에서 주인장과 단골 손님이 나누는 대화처럼 편하게 작성되었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또한, 최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자제하려 하나 어느 정도 소설의 내용이 나올 수 있음을 알립니다.
'위대한 개츠비',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내 집인 마냥 둘러다니는게 내 취미인데, 그 있잖아, 서점이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서가 하나를 잔뜩 메운 명작 소설 전집들은 본 적이 있을거야. 대개 비슷한 커버로 되어가지고 백 몇권이 잔뜩 꽃혀있는 거 흔하지.
하여간 나는 거기서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봤어. 이름 잘 지었다고 생각했지. '위대한 개츠비'라, 뭐가 그렇게 위대한 걸까? 이 '위대하다'라는 어감이 사람의 호기심을 무척이나 불러일으키는 단어더라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위대하다라고 말하니 그 말에 맞는 내용인지 그렇게 궁금할 수 가 없어.
그래서 바로 읽었냐 하면 그건 아니야. 사실 전집으로 먼저 봐서인지, 바로 딱 뽑아서 사기가 참 뭣하거든. 컬렉터 기질이 다분한 나라서, 시리즈 중의 한권만 사는게 꺼려졌어. 뭐 언젠가 읽을 수 있겠지 하고 넘겼지. 영화가 그 전후로 해서 개봉했을거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가. 그건 봤냐고? 아니 그것도 당연하게도 못 봤어. 왜냐고 물어도....나는 꽤 가난하다고. 영화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취미로 할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여간 영화로까지 나오니 이게 역시 대단하구나 싶더라고. 거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니! 내가 영화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 배우가 영화를 허투로 고르지는 않는다는걸 알아. 하여간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됐지.
서두가 너무 길지. 여하튼 드디어 봤단 말이야. 그 '위대한 개츠비'를. 얼마나 위대할까! 그런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지.
첫 인상은 음, 너무 길다? 문장이 정말 엄청 길어. 미려한 문체인건 알겠는데 책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문장의 길이만으로 질려버릴 수 있을 만큼 길지. 이건 유의하라고. 읽고 싶다면 일단 문장이 길다는건 생각하고 보는게 좋을거야.
여튼, 요약하자면 이래,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의 승리와 동시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미국, 그리고 여성 권리 신장으로 등장한 신 계층 '플래퍼'. 이들이 등장하던 소위 '재즈시대'라는 미국이 맺은 열매를 칼로 날카롭게 잘라 보여주는 작품이지.
급한 경제 성장으로 급격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이와 동시에 매우 진보적인 여성들이 등장했지. 이 둘이 따로 따로 천천히 왔다던가 그러면 별로 문제가 없을거야, 인간의 도덕적 성숙이 같이 행해질테니까. 하지만 이게 동시에 너무도 많이 들어왔다는거지. 순식간에 주체 못할 부를 가진 사람들은 온갖 의미 없는 향락에 빠지고 더 많은 돈을 위해 더욱 더 더러운 일을 했지, 사람의 목숨 또한 파리 목숨처럼 대하기 시작했고. 돈이 최고고 사람도 자신만의 세상도 다 돈으로 살 수 있는데 일개 생명이 뭐가 중요하겠어? 나만 즐거우면 되지.
이 와중에 플래퍼들까지 등장했어.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들. 뭐 그냥 자유롭고 주체적이면 좋겠는데 세상이 저런 상태라는거지. 지금껏 억압했던 것이 극한으로 터질 수 있게 되니 결국 육체적 향락, 기존 도덕 관념에 대한 극단적 반항, 이러다 보니 지금의 눈으로 봐도 '아 저건 비정상이다.' 싶은 행동들이 플래퍼 계층에 만연할 수 밖에 없었지. 거기다 자유롭게 지금까지의 보수적 여성과 다르게 자신을 어필하니 돈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 드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고. 이런 것이 엮이고 엮이니, 겉으로는 찬란하고 위대하더라도, 속으로는 정말 보잘것 없는, 오히려 썩어있지 않을까 싶은 시대가 된거지.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시대를 적당히 사는 관찰자 '닉 캐러웨이'의 눈으로 거의 편향없이 그저 바라보게 해. 그는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계층이어서 그렇게까지 부유층의 마인드와도 같지 않았고, 그렇다고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그가 하는 증권업이 그런 사람들을 상대해서 먹고 사는일이니 그들의 마인드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말하기도 힘들어.
거기다 이 닉이 사는 곳이 아직 보수적인 부호들이 사는 이스트에그와 그 시대에 급작스럽게 부를 이룬 웨스트 에그의 사이에 있는거야. 뭐 정확히는 웨스트 에그지만, 이스트 에그가 보이는 위치니 사실상 중간이지. 중립적인 눈을 가진 관찰자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그 시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보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입장이지.
이 닉 캐러웨이라는 사람이 그의 친척 동생이자, 이스트 에그에 사는 데이지 뷰캐넌과 그 남편 톰 뷰캐넌 부부, 그리고 그의 옆집에 사는 대저택을 가진 부호, 제이 개츠비가 엮여 일어나는 일인데.... 이 이상 줄거리를 말하면 그야말로 스포일러니, 그건 자네가 음미하는게 좋을거라 생각해. 하다 끊는다고 생각하지 말아. 남이 마신 커피의 맛만 듣는게 무슨 소용이야. 얼마나 훌륭한 커피인지는 직접 보고 맡고, 마시고 음미해야지.
어쨌든 내 감상을 얘기하자면. 확실히 명작이야. 치밀하고 냉철하면서도 그 시대를 연민하는 마음이 잔뜩 느껴지지. 그 시대뿐 아니라 지금에도 충분히 시사하는 바도 있고 말이야. 그 시대가 그렇게 막나갔고 지금 우리 눈으로 봐도 이해가 안된다고 해도. 생각보다 이 시대도 별로 다르지 않거든.
개츠비는 위대하지. 정말 보통 집념으로는 해내기 힘든 것들을 해내고, 이뤄냈어. 단지 사랑때문에. 정말 숭고하게 보일정도로-닉 캐러웨이가 그렇게 말한 대목이 있을거야-개츠비라는 인물은 많은 것을 해냈어.
하지만 동시에 개츠비는 보잘 것 없어. 그가 그 위대해 보이는 모든 것을 이룬 밑바닥에는 그 시대의 어둠이 잔뜩 깔려있기 때문이지. 그 시대의 정신을 전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시대의 정신을 가진 사람을 사랑했어. 결국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안은 곯아 있는 그런 열매가 정말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곯아 있었냐고 말하면 그것도 확답하긴 힘들어. 그는 그 사회가 만들어냈고, 그 가운데서는 정말로 숭고하고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야.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하냐고 하지만, 굳이 개츠비가 아닌 어떤 등장인물을 평가해도 마찬가지일거야. 닉 캐러웨이도, 뷰캐넌 부부도. 그들 모두 덮어두고 욕을 할 수도, 그렇다고 한 없이 치켜세우고 불쌍히 여길 수도 없는 인물들이야. 입체적이다 못해 혼란스러울 정도지. 그만큼 그 시대가 혼란했던 것일까도 궁금하네.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모여서 만든 군상은 정말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그리고 마냥 덮어두고 행복하게 끝나지는 못한다는걸 알거야. 동화가 아니니까. 이 작품은 한 인물 한 인물이 무척이나 다채로운 색을 가지고 있고, 그 시대를 우리가 직접 사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미려한 문체를 가지고 있어. 소설로서는 정말 매력적이라 말할 수 있지.
줄거리를 안 말하고 책을 말하는게 이렇게 힘든건지는 몰랐네. 생각보다 내 말솜씨가 변변치 못하기도 하고. 그럼 빙빙 돌리지 말고 내 생각을 말해보라고?
내 생각이라. '위대한 개츠비'를 덮고 내가 느낀 이 작품의 맛. 솔직히 얘기해서 그저 아름다운 소설, 읽으면 그 자체로 즐거운 소설은 아닐 수 있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꼇어. 하지만, 읽고 나면, 개츠비가 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저 맹목적으로 이 시대의 가치관을 거부없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위대해지려는거 아닐까. 그 가운데 어떤 어긋난 것이라든지 내면의 곯은 면도 못보고 말이야. 지나가는 모두가 저마다의 '위대한 개츠비'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착잡하면서도 다시 한 번 나와 내가 사는 세상을 음미하게 됐지. 70년 즈음 된 소설을 읽고 나서도 그렇게 느꼈으니, 그 시대 사람들은 어땠을까 경이감도 들더라고.
마냥 즐거운 소설은 아니야. 그저 남녀들이 엉킨 로맨스도, 치정극도 아니야. 그런 것으로 단순하게 '위대한 개츠비'를 정의할 수 는 없을거야.
자네도 읽고 한 번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혹시 알아? 열심히 사는 자네가 '위대한 개츠비'로 변해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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