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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작마시기

[52권 명작마시기]4.제인 에어


나는 정말 로맨스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야. 지금껏 소설로 읽은 로맨스 소설이 거의 없으니까. 드라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철저하게 사람들의 사랑으로만 좁혀진 작품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었어.

그런 내 취향으로 보자면, 내가 이 제인 에어를 끝까지 읽은 데 대해서 정말 내 자신이 놀랍다고 생각하네. 지금부터 자네한테 내 줄 이 작품은 로맨스 소설의 정석이나 다름없는 작품이니까 말이야.

'제인 에어'. 저번에 자네에게 소개시켜준 '폭풍의 언덕'에서 얘기했듯이, 에밀리 브론테의 언니인 샬럿 브론테의 작품이지. 저번에 맛본 '폭풍의 언덕'과는 다르게, 로맨스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로맨스 소설이야.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고 하면 죄를 짓는 느낌일 정도로 충실하게,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로맨스 소설이야. 줄거리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야. 자네가 생각하는 순한 로맨스 소설, 그게 게 '제인 에어' 라는 작품이야.

플롯 자체는 지금 보면 너무 흔하다고 할 작품이긴 해. 그렇기에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폭풍의 언덕이 평가가 올라가는데 비해, 제인 에어가 평가가 내려가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 로맨스 소설이, 어떤 다른 로맨스 소설보다 흡입력 있고, 현실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 보통 요즘 로맨스를 붙이고 나오는 예술 작품들을 볼때, 그 안의 주역들을 작가가 묘사할 때 그 인물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온갖 수단을 통해 보여주고, 그로서 독자, 혹은 시청자, 관객을 설득시키지. 어느 정도 결함은 있지만 말이야. 너무 완벽하게 매력적이면 사람들이 공감을 못하기 때문에 배치한 하나의 장치로서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해. 보통의 로맨스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미 사랑받기에 너무 적합한 모습으로 완성되어져 있고, 결점 또한 어느 정도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범위로 제한해두지.

하지만 제인 에어의 주인공인 '제인 에어'와 '에드워드 페어펙스 로체스터'는 그런 인물이 전혀 아니야. 외모는 만나는 등장인물마다 '영 아니다', '예쁘다고 할 수 없다', '못생겼다', '험악하다' 등등 얼마 언급되지 않으면서도 줄곧 매력적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지. 어느 정도냐면, 서로 사귀는 사이임에도 대놓고 서로가 서로를 보고 못생겼다고 말하고도 조금의 상처를 받지 않아. 

외모만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성격 또한 독자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지. 로체스터는 돈이 많은 부자지만, 어딘가 비뚤어져 매사에 공격적이며, 독단적이고, 문제 또한 많지. 문제들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중에는 이 작품 전체를 뚫고 나가는 문제 또한 있어. 제인은 고아에, 돈 또한 없고, 교사로서의 교양은 가지고 있지만, 자기멋대로이며, 사람을 몰아붙이고, 애교나 귀여움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사랑의 표현 방법으로 보는 등 연애 하기에 좋지 않은 요소를 몰아두고 있지. 거기다 현대의 독자들이야 제인 에어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남자에 얽매이지 않는 자주적인 신여성'으로 보이고 그것이 하나의 큰 매력포인트로 작용하겠지만-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작품 내에서는 제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를 만나는 많은 인물들은 남자건 여자건 '여자답지 못하다'라고 여러 방식으로 불만을 표하고 때때로는 무례하다고도 생각한다구. 그 당시에 전혀 없던 여성상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은 주었겠지만, '내가 사랑할 수 있겠다'는 감정을 주지는 못했겠지. 

하지만 이 책은 분명히 잘 만든 로맨스 소설이야. 그 당시에는 신선한 플롯이었지만,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들과, 지금 보면 전형적인 플롯에, 조금은 더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소설에 비해 좋은 것 하나 없는 캐릭터들. 분명히 어떻게 해도 어필할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이 소설이 왜 지금까지 사랑받는 로맨스 소설인걸까.

뭘 그렇게 보나. 정말 뻔한 대답이라네. 사랑 때문이지. 너무나도 매력적인 캐릭터들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성숙한 사랑이 이 작품에는 존재하거든. 누가 봐도 멋있고, 누가 봐도 예쁜, 사소한 결점 따위 그다지 문제도 안되는 그런 사람과 하는 당연한 사랑, 누가 해도 쉬운 사랑은 전혀 흥미가 안나고 어느 우주의 먼 이야기일 뿐이지. 내가 하는 사랑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사랑도 아니고, 공감을 티끌만큼 하기도 힘든 사랑이니까.

하지만 제인과 로체스터가 보여주는 사랑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해서, 단점만 가득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런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결국 사랑을 멈추지 않는 그 모습이 가슴을 울리거든. 심지어 마지막에는 로체스터는 치명적인 단점이 무수하게 많이 생겨버려서 이전의 제인보다 훨씬 단점이 많아지는데도 제인은 그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 

심지어 그들의 사랑은 콩깍지도 아니야. 단지 내면이 아름다워서 좋아한다거나, 불꽃 같은 사랑이라 타오르듯이 좋아하다보니 그의 단점조차 장점으로 보인다던가 하는 그런 허울 좋은 말을 쓴 사랑이 아니야. 그 점이 너무나도 놀라웠어. 단순히 매력적이지 못한 것을 장점으로 보이는 콩깍지여도 충분히 울림이었겠는데, 이 작품이 보여주는 사랑은 그 이상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 그들은 그들의 단점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 단점도 충분히 멋있다느니 그런 말은 전혀 안나와. 단지 당신이 없이는 세상을 살기 힘들 것 같다는 열렬한 사랑의 고백뿐. 어디가 멋져 보인다는 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 그들의 사랑은 그저 서로가 기대고 보듬어 주고 필요로 하는 그런 완성된 남녀의 사랑이야.

그렇게 완전한 사랑이 어디있냐는 말은 하지 말게. 이상적인 사람과 쉬운 사랑은 하기도 힘들고, 하고 나서도 그다지 행복하지 못할 불길한 예감이 언제나 도사리지만, 나만이 사랑하는 그 못난 사람과의 완전한 사랑은,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사랑이지 않나? 그것을 읽고 느끼다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노력할 수 있게 되고 말이야. 보고 꿈꾸던, 현재 옆에 있는 사람에게 노력하던, 이 책이 보여주는 사랑은 그런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계단이 되어줌도 틀림없다네.

'독자여, 나는 그와 결혼했다'라는 마지막 단원의 첫 마디를 읽었을 때, 나는 정말 행복했어. 로맨스 소설을 읽고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싶었다네. 그러니 그 독자의 말을 다시 보는 자네, 오늘은 진짜 로맨스 소설 어떤가?

제인 에어 세트
국내도서
저자 :
출판 : 민음사 200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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