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필립이라는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신부인 백부의 집에서 살게 된다. 백부는 그를 자신과 같은 성직자로 만드려 학교를 보내지만, 기형적 다리를 가진 그에게 학교는 자신의 장애를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그는 학교에 들어온 것을 후회한다.
그는 그의 장애를 신경쓰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맨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가고, 회계사 자리를 소개 받아 견습생활을 하기도 한다. 파리로 그림을 배우러 가기도 하며, 런던에서 의대를 다니기도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도, 사랑하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일들 모두가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유햑생활과 회계사는 그가 생각하던 일과는 많이 달랐고, 그림은 재능의 한계에 부딪혔으며, 의대 생활은 자의와 타의로 계속해서 좌절되었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특히나 그가 신앙을 버리고 인본주의를 선택한 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교제했던 파리의 사람들은 그 후로도 몇 년간 그를 계속해서 옭아맸다. 크론쇼라는 비평가와의 우정도, 밀드레드라는 여자와의 집착적인 사랑도, 몇 번씩이나 그들을 통해 상처받고 처절하게 후회하면서도 그들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그렇게 끊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후회했다.
이제는 나이가 든 청년 필립은, 그렇게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후회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이 가장 만족할만한 길을 찾다보니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계속해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의학을 배우기에는 부모님과 백부가 물려준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고, 돌아갈 집도 없었다. 노동자로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생활만이 그의 앞에 남았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후회했던 모든 것들을 뼈저리게 다시 후회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한 가지만은 후회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찾는 것. 같이 있을 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 만족할 수 있을만한 무언가를 찾는 것만이 그의 꿈이었고 그는 끝끝내 그것만은 놓지 않았다.
참 우스운 일이다. 그의 모든 후회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다 굳게 믿고 실행한 것들의 결과였다. 신학을 버리면 만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면 더 나은 삶일 것이라 생각했다. 밀드레드와 함께하면 얼만큼의 돈이 들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를 후회의 구덩이로 빠트렸다. 만족하기 위해서였는데. 단지 순응하고 자신이 싫어하던 일이나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만족하기 위해 살아온 지금까지의 필립에 삶엔 무엇이 남았는가?
그는 그 모든 후회 섞인 질문에 ‘삶에 의미는 없다.’라는 답을 내린다. 후회로 점철된 그의 삶은 분명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은 ‘의미 있는’ 삶은 아니었다. 필립 자신이 절대적으로 생각한 삶의 의미조차 없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삶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걸어온 모든 삶이 후회만 있던 것이 아니다. 필립은 그림을 그릴 때, 파리의 사람들과 세상일로 얘기를 할 때, 밀드레드와 밀월의 사랑을 나눌 때 그는 무엇보다 행복했다. 그 뒤에 뼈저린 후회가 있었지만 행복을 향한 도전과 후회를 계속하는 그의 삶 자체가 ‘큰 의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얼마나 그의 삶의 행적으로 아름답게 수놓아질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는 만족할 수 있었다.
“그는 의미 없는 삶의 무수한 사실들로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고 싶었다. 그는 가장 단순한 무늬, 그러니깐 사람이 태어나서,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음을 맞는 그 무늬가 동시에 가장 완전한 무늬임을 깨닫지 않았던가? 행복에 굴복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것은 수많은 승리보다 더 나은 패배였다.”
필립의 답이 당신에게도 하나의 해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많은 도전들. 만족하기 위해서 해야만 했다고 생각됐던 것들이 실패할 때, 지금껏 했던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마음 한 가운데서 물어올 때, 이 책을 한 번 펼쳐봤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이, 당신이 한 도전이 어쩌면 세상에선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도전하던 당신은 행복했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당신은 아름답다. 그 삶 자체가 인간으로서, 당신으로서 가장 걸맞는 아름다운 레드카펫이 됨을, 당신은 그 위에 아름답게 서있는 인생의 수상자가 됨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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