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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 아웃-빙봉은 하나로 족하다-

겨울왕국이 한참 극장가를 휩쓸었었다.  당시 겨울왕국은 성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플롯을 조금씩 센스있게 비틀어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비주얼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 최고 흥행을 거두었다. 그야말로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당연히 비슷한 식의 내용일 줄 알고 들어간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 '인사이드 아웃'. 이 작품을 보고 온 아이들이 적당하게 즐거워했고, 가벼운 교훈을 얻었음에 반해, 이 작품을 본 어른들은 이 작품이 건네는 말들에 큰 감동을 얻었다. 많은 신문과 잡지에서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문화칸 한 켠을 장식했다. 어쨰서 어른들은 그토록 솜뭉치를 닮은 감정들에게서 가슴 아릿한 경험을 한 것일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 번 다른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2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인사이드 아웃'을 본 이들에게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한다면 어떤 장면이 나올까? 지금이라도 좋으니, 이 이후를 읽기 전에 아직 '인사이드 아웃'을 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2시간을 투자해 감상하고 답하길 바란다.

아마 백이면 백, '빙봉'이 자신을 망각 속으로 집어 넣는 대신에, '기쁨'을 다시 기억들 사이로 보내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작품내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며, 많은 어른들의 머리에 '빙봉'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잊지 못하게 하고 눈물을 훔치게 한 장면이다어릴 적 같이 많은 추억을 쌓은 친구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그 사실조차 잊게 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효과적이며아련하고, 훌륭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 장면이 단순히 그 정도의 플롯으로 존재한다면, 많은 이들의 뇌리속에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이야기속의 플롯이고, 수많은 작품에서 변주되어 온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더욱 이 장면이 감동적이긴 힘들다. '빙봉'은 유아기적 상상을 대표하는 캐릭터로유아기적 상상을 망각하면서 인격이 새로운 지경으로 확장되어가는 것이기에빙봉은 한 인물의 성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지극히 당연하게도 사라져야만 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 이 플롯 자체는 흔하고, 원론적으로는 당연히 사라져야 하는 캐릭터로, 과한 포장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억지감동이라고 불리며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을 수 있던 장면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렇게 비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장면이라 지금도 말할 수 있다그 장면의 그 경험은, 오로지 기쁨과 빙봉만이 겪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와 같은 '상실'을 어른들은 겪었고, 어쩌면 지금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라면서 '인사이드 아웃'에서 보여주듯, 많은 것을 망각하며, 인격의 어느 부분은 무너트리고, 재정립 시키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이 중에서 빙봉이 본디 대표하는 유아적 상상만 아니라 계속 기억하고 있으면 눈에 걸리는 아픈 기억들, 딛고 일어서야 하는 기억들도 상실된다이 소중한 기억들의 망각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라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앨범을 뒤적이다 다시 찾을 수 없는 부모님의 젊음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는 것처럼, 구체화되어 보여질 때는 잊고 있던 상실감을 한 번에 느끼게 된다. 

'빙봉'이 망각 너머로 사라지는 장면은 단순히 유아적 상상만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살아가기 위해 잊고 있던 수 많은 망각한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향수와, 상실감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것이다이와 동시에 빙봉이 사라지는 장면은 어른들이 삶을 삶답게 살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과거의 추억인 빙봉마냥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장면을 포함한 작품 전체를 통해 전달한다. 

앞서서 이 이야기는 '감정들'의 이야기라 했지만, 사실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역은 '기쁨'과 '슬픔' 둘 뿐이다. 이 중 대부분은 기쁨의 독무대라고 봐도 좋다. 기쁨은 합리적으로 감정들의 리더를 맡아 감정을 제어하고 있으며,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이 '합리적이고 사고 없이 순탄한 삶'을 위해 기쁨은 다른 감정들을 사실상 없는 취급하는 이름과는 괴리가 느껴지는 행동을 보여준다. 주장은 얼핏 들으면 여전히 합리적이다. 사고 없이 순탄하기 위해서는 분노나 역겨움이나, 공포가 끼어서는 안될 것처럼 보인다. 이는 어른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화내지 마라, 피하지 마라, 무서워 하지 마라... 그 중 가장 많이 배제하는 것은 작중에서 기쁨이 하는 것과 똑같이, 슬픔의 배척이다.

울지 마라, 다 지나가면 괜찮아 질 것이다. 분해하지 마라, 뭘 그런 것으로 슬퍼하느냐..... 기쁨이 슬픔 주변에 선을 긋고 배척한 것 마냥, 어른들은 자기 자신에게, 자기 아이에게 계속해서 되뇐다. '이래서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 하니'. 라는 순탄한 삶을 위해서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이 말이 전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은 작품이 진행되면서 기쁨과 슬픔이 컨트롤 센터 밖에서 길을 잃고, 기쁨의 방식으로 계속된 실패를 겪어가는 것으로 보여준다. 기쁨이 원하는 '합리적이고 순탄한 삶'을 위한 발버둥은 더 이상 기쁘지 못하게 하고, 기쁨이 보여주는 감정들도 '가식적인 기쁨' 으로만 보여진다.

이런 흐름이 계속해서 악화되던 중 등장하는 인물이 '빙봉'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살면서 잊어야 하기에 잊었던 '빙봉'과 함께 있으며 기쁨은 정말로 기뻐하고, 그와 망각의 골짜기에 빠졌을 때, 진심으로 무서워하며, 빙봉이 자신을 다시 기억들 속으로 올려 보내기 위해 망각속으로 멀어졌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슬퍼한다. 기쁨이 합리적이고 순탄한 삶을 위해서 잊고 있었던 빙봉이 그 순리대로 사라져간 이후, 기쁨은 있어봐야 걸리적거리는 기억들, 사회생활에 도움도 안되는 감정들이 실은 기쁨을 가장 기쁨답게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완성한다는 것을 점차 깨닫는다.

사춘기의 감정의 혼란을 그린 작품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기쁨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일치한다. 그리고 빙봉의 소멸이 가져다준 상실감으로 시작해 기쁨이 자신이 쓸모 없다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모두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는 후반부의 내러티브는 기쁨과 닮았던, 그래서 그녀의 행동이 불편하게 보이던 어른들에게 주어지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명시적인 메시지다. 그렇기에 빙봉이 사라지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게 각인된다. 

자신이 지금껏 성공하기 위해, 무난히 살기 위해, 사회생활을 위해 감정과 기억들을 억압하다 못해 잊어버리는, 그것을 '어른이 되었다'고 애써 합리화하던 어른들에게 이 작품은 묻는다. '어른이 되었다'라는 말과 행동 뒤에 얼마나 많은 기억들과 감정들이 다른 빙봉들이 망각의 골짜기에서 사라지고 있는지, 당신은 얼마나 그 잊어버린 감정과 기억들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지 말이다.

물론 어느 순간은 잊어야 좋은 것들도 있다. 잠시 감정을 억눌러야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망각과 억압이 일상이 되어 무미건조하게 순탄한 삶을 사는 것이 진심으로 순탄하고 행복한 삶일까? 자신의 기쁨에게 잊고 있던 빙봉이 얼마나 많은지 물어보자. 유아적 상상으로 만들어진 빙봉만이 아닌 다른 빙봉이 당신의 망각의 골짜기에 많다면, 당신의 기쁨은 사실 기쁨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의 순탄한 삶은 이미 순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에 빙봉은 하나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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